집 안의 모든 질서는 단 한 사람의 입에서 정해졌다. 엄마는 언제나 자신의 이름을 절대적인 구호처럼 내세우며 호통을 쳤다.
“이 OOO가 말이야!”로 시작되는 그 오만함 뒤에는 늘 똑같은 레퍼토리가 뒤따랐다.
배움의 기회가 없었을 뿐, 자신이 학교만 다녔어도 세상을 발아래 두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기 신화였다.
엄마는 쉼 없이 다른 집 자식들의 영민함과 착실함을 가져와 우리를 깎아내렸다. 하지만 정작 우리 입에서 다른 집 부모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엄격히 금기시되었다.
엄마는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완벽한 성역이자 치외법권이었고, 우리가 감히 다른 집 부모와 비교하려 들 때면 어김없이 으름장이 날아들었다.
“너희 고아 안 만들려고 이혼 안 하고 사는 거야. 감사한 줄 알아!”
그 말은 자식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포악함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패였다.
우리는 고아가 되지 않은 대가로 엄마라는 독재자의 변덕과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당하며 모자람을 증명해야 하는 미완의 존재들로 남겨졌다.
당시 아빠는 오토바이 짐칸에 운전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문구류를 산더미처럼 싣고 위태로운 도매 영업을 다녔다.
잦은 교통사고 끝에 중학교 1학년 무렵, 아빠는 수차례 낙방하던 자동차운전면허 필기시험에 간신히 합격해 1톤 포터 트럭을 장만했다.
파란 트럭짐칸에 천막을 씌우고서야 아빠의 영업은 안정을 찾았지만, 엄마의 비아냥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내가 필기시험만 아니면 면허는 진작 따고도 남았지. 내가 운전하면 대단했을 거다!”
자전거도 탈 줄 모르던 엄마의 이 비대한 우쭐함은 부동산 투자로 외가 식구들 중 가장 형편이 나아지며 정점에 달했다.
한때 엄마보다 앞서갔던 친인척들이 줄줄이 고꾸라지는 광경은 애초에 모두가 비슷한 빈손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자신을 신격화한 비뚤어진 우월감의 제단을 더욱 육중하고 단단하게 축조해 나갔다.
엄마는 화려한 사람이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인색했던 것처럼, 엄마 자신에게도 검소했다.
하지만 그 검소함은 미덕이 아니라, 더 큰 허영을 위한 축적이었다.
그렇게 온 가족의 입을 단속하고 고혈을 짜내 모은 돈은, 친인척들 사이에서 ‘부모 없이 자란 육 남매 중 성공한 둘째’라는 허울을 쓰는데 쓰였다.
도움을 구걸하며 베풂을 받아 가던 그들은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지만, 뒤돌아서면 엄마를 '수전노'라 부르며 손가락질했다.
돈으로 산 존경은 그토록 가벼웠고 그 오만함의 뒷면은 남루했다.
밖에서는 어려운 친척을 돌보는 ‘통 큰 여장부’인 척 생색을 냈지만, 그 생색의 밑천은 고스란히 집안 식구들의 희생으로 조달된 것이었다.
정작 제 자식들에게는 고무줄이 다 늘어나 살결에 닿는 촉감조차 척박한, 해진 속옷을 입혔다.
우리 가족은 거지같이 사는데, 대체 누굴 도와준단 말인가.
용돈 한 푼 주지 않는 메마른 가계 안에서 간식이라도 사 먹으려 지갑에 손을 대면, 엄마는 자식을 ‘구질구질한 좀도둑’으로 몰아세우며 인격을 짓이겼다.
가족의 끼니와 의복을 아껴 친척들에게 산 ‘성공한 둘째'는, 결국 우리에겐 피눈물이었고 엄마에게는 허울뿐인 전리품이었다.
특히 언니가 친구들과 어울리다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집은 광기에 휩싸였다.
엄마는 욕설을 섞어 온 동네방네 다 들리도록 고성을 질러댔다.
그 악에 받친 폭언은 언니를 향한 훈계라기보다, 자신의 질서가 흐트러진 것에 대한 포악한 발악에 가까웠다.
단역배우를 연상케 하는 작고 박색인 외모, 그리고 조선무처럼 투박했던 종아리.
엄마는 자신의 외모만큼은 잘난 체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억눌린 열등감은 오히려 가족을 향한 지배욕으로 변질되었다.
엄마는 작고 찢어진 눈을 부릅뜨며 자식들을 몰아세웠다.
그 눈빛은 곧장 폭력으로 이어졌다.
아주 어릴 때 손바닥체벌에서 시작해 고학년부터는 무릎 꿇고 앉은 우리의 발바닥에 줄넘기 줄을 감아 내리치던 그 잔인한 폭력은, 성공한 여장부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민낯이었다.
엄마는 자식의 영혼을 갉아먹으며 자신의 권위를 세웠다.
해진 속옷을 입고 용돈 한 푼 없이 지갑 주위를 서성여야 했던 어린 나의 비굴함은, 역설적으로 엄마가 밖에서 부리는 호기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 숨 막히는 곳에서 나는 형체 없이 깎여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