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선택적 통증과 김치 국물

by 온지정원

엄마의 통증은 지극히 선택적이었으며, 그 효율성은 놀라울 정도였다.

디스크 치료를 위해 침술원과 한의원을 일상적으로 드나들었다.


집안일은 당연하게도 ‘아픈 엄마’를 둔 자식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복덕방에서 항상 하는 고스톱 판이 깔리거나 명절날 화투패가 돌아가는 순간, 엄마의 척추는 대들보처럼 곧게 펴졌다.


침술원의 장침도 고치지 못한 만성 통증이 붉은 화투패 앞에서는 기적처럼 소멸했다.


양반다리 앉은 자세로 몇 시간을 버티며 화투패를 내리치는 엄마의 손끝에는 생기가 넘쳤다.

엄마에게 통증이란 삶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가장 요긴한 '무기'였고, 그 무기를 휘두르는 동안 우리 자매의 일상은 방치되었다.

이 기만적인 통증의 뿌리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그곳엔 열등감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내세우던 ‘근거 없는 본인 천재설’은 우리의 머리가 굵어질수록 역겨운 비명이 되어 돌아왔다.


강원도 평창의 깊은 산자락에서 자랐으나 은행 지점장을 지낸 사촌부터 반포 주공아파트에 거주하는 화이트칼라 친척들까지, 아빠의 친인척들은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기품이 묻어났다.

반면, 엄마의 친가 쪽은 외모부터 거칠고 투박했다.

작고 찢어진 눈, 걸걸한 목소리, 노상과 일용직을 전전하던 그들. 어린 나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는 것은, 내가 이미 엄마의 기준으로 세상을 읽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불협화음 속에서 나는 엄마가 차라리 이혼해 주길, 제발 이 지긋지긋한 연극을 끝내주길 간절히 소망했다.

​엄마의 기세는 아들을 낳고 복덕방 중개인으로서 부를 쌓으며 정점을 찍었다.


과거 시아버지에게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멸시받았던 상처는, 이제 타인을 압도하는 거만함이 되었다.

밖으로 도는 성공한 여장부에게 자식의 도시락은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도시락통에 맨밥과 대충 담긴 김치는 가방 안에서 기어이 사고를 쳤다.


교과서와 가방을 적시며 진동하던 그 시큼한 김치 국물 냄새는, 어린 내 자존감을 밑바닥부터 갉아먹는 악취였다.
​겨울날 학급 조개탄 난로 옆에서 흉측하게 녹아내린 플라스틱 도시락통은 내 가난한 정서의 기록이었다.


친구들의 화려한 반찬을 부러워하는 내게 엄마가 내민 것은 생김을 넣어 비릿하고 얄팍한, 성의 없는 계란말이였다.

딱딱한 콩자반, 내장을 제거하지 않아 쓴맛이 나던 매운 멸치볶음과 생선을 통째로 갈아 밀가루와 버무린 가끔 가시가 나오던 무미건조한 동그랑땡은 냉동실에 산더미처럼 쌓여 매일 아침 기계적으로 공급되었다.

​언니는 그 부끄러운 도시락을 당당히 열어 먹었다는 말로 엄마의 위선을 만족시키며 친구들 무리에 끼려 애썼지만, 나는 차마 그 뚜껑을 열 용기가 없었다.


다 먹은 척 쓰레기통에 쏟아버린 빈 도시락통만큼이나 내 허기는 깊어졌다.

지금 내가 요리에 그 어떤 재능도, 흥미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 시절 엄마가 제공한 무신경한 식단들이 내 미각이 아닌 자아를 먼저 마비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밥상은 내게 영양을 섭취하는 곳이 아니라, 무관심과 수치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 허기와 수치심은 지금의 나를 다른 길로 이끌었다.


요리 자체에 흥미는 없을지언정, 타인에게 내보이는 상만큼은 정갈하게 차려낸다.


대외적인 식탁 위에서 나는 결코 엄마처럼 굴지 않는다. 내가 겪었던 그 비릿한 멸치 냄새와 김치 국물의 얼룩을 타인의 생에 묻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흥미가 아닌 의무감으로, 재능이 아닌 보상 심리로 차려내는 그 이쁘고 먹기 좋은 음식들은, 어린 날의 나에게 바치는 뒤늦은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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