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열등반의 반장과 문제집 감옥의 빠삐용

by 온지정원

언니의 인생에서 중학교 2학년은 반전의 서막이었다.
전교 최하위권 아이들을 모아놓은 소위 '열등반'에 배정된 후, 언니는 기적처럼 생애 첫 자신감을 발견했다.

반장을 시작으로 꼴찌들 틈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게 된 언니는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바닥을 딛고 올라서는 성취감은 언니를 아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입시라는 현실 앞에서 언니의 성장은 엄마의 불안에 가로막혔다. 당시엔 입시 성적이 미달하면 야간 고등학교로 가거나 재수를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외가의 사촌들이 줄줄이 야간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보며 겁을 먹은 엄마는 모험 대신 안전을 택했다. 담임선생님과 합심하여 언니를 인문계가 아닌 상업고등학교로 등 떠밀었다. 언니는 거세게 저항했으나, 규제와 집착으로 무장한 엄마의 결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어릴 때부터 맏딸에 대한 엄마의 집착과 감시를 힘겨워하던 언니는, 원치 않는 상고에 진학하는 대신 집에서 통학 시간만 한 시간이 넘는 천호동의 남녀공학 상업고등학교를 선택했다.


그렇게 자신을 옥죄는 집을 벗어나기 위해 밖으로 돌기 시작한 언니와, 자신의 질서가 흐트러질까 봐 과도하게 걱정하던 엄마 사이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엇나가는 맏딸을 향한 엄마의 욕설이 집안을 메웠다. 그 말들은 딸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반면, 나는 그 시절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학교에서 실시한 아이큐 테스트 결과가 꽤 높게 나왔던 것을 보면, 아마도 친가의 영특한 머리를 닮았던 모양이다. 고교 입학의 척도가 되던 때, 지능지수가 100을 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선생님들의 경고가 교실을 떠돌았다. 내 주변의 ‘모범생’이라 믿었던 친구들은 입시가 끝나고 커트라인을 걱정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그 풍경들이 낯설고 이상했다. 국민학교부터 중학교 내내 자발적으로 책상 앞에 앉아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쌓아 올린 ‘문제집 감옥’은 오히려 나를 공부로부터 가장 멀리 도망치게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 답지를 베끼고 아무 답이나 체크하며 빨간 색연필로 채점하는 시늉만 냈음에도, 내 성적은 중간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오로지 수업 시간의 이해도만으로 치러낸 나의 고교 입시 성적은 월등했다.
감옥에서 탈옥한 자식은 아무런 고통 없이 합격증을 거머쥐었으나, 스스로 일어서려던 자식은 엄마의 불신이라는 벽에 부딪혀 경로가 뒤틀렸다.

타고난 영특함이 무심한 행운이 되고, 간절한 노력이 독재자의 불안 앞에 무력해지던, 우리 자매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리던 열여섯의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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