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수전노의 예외

by 온지정원

우리 네 남매는 같은 유전자를 공유했다. 미남인 아빠의 유전자는 박색인 엄마의 유전자와 치열하게 다투며, 언니에게는 굵은 쌍꺼풀을, 나에게는 오뚝한 콧대를 물려주었다. 다행히 큰 눈만큼은 네 남매 모두에게 공평하게 전해졌다.

고운 외모보다는 거친 삶을 버텨낼 기질을 우리에게 물려주려 했던 것일까. 엄마를 닮은 작은 키, 현명하지 못한 거친 성격, 큰 목소리, 그리고 두꺼운 종아리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늦둥이 남동생은 동네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여동생만큼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 귀여운 외양 아래 흐르는 기질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수전노급의 절약 정신으로 무장한 엄마가 유독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대상은 여동생이었다. 동생은 자라면서 콧날이 낮은 막내이모의 외모를 볼 때마다 지적하며 못생겼다고 했지만, 정작 본인의 콧대도 납작했다.
그럼에도 동그란 눈망울에 애교가 넘쳤던 어린 시절의 동생은 엄마의 유일한 보석이었다. 엄마는 동생에게 피아노, 에어로빅을 시키더니 급기야 집으로 피아노 개인 교습 선생까지 불러들였다.

​일찌감치 예쁘다는 찬사를 듣고 자란 탓인지 동생은 연예인이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국민학교 입학 후 연기학원에 보내달라는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동생은 주먹으로 책상 상판을 내리쳐 구멍을 낼 정도로 폭력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엄마는 그 기세에 못 이기는 척, 유명 배우가 운영하는 여의도의 연기학원에 동생을 등록시켰다.

​나는 종종 엄마의 심부름으로 그 학원에 수업료를 내러 가곤 했다. 나에게는 인색하기 짝이 없던 엄마가 동생에게 쏟아붓는 막대한 투자와 애정을 보면서도, 나는 신기할 만큼 질투하지 않았다.
내가 선한 것인지 혹은 무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동생의 몫을 시기하기엔 나의 허기가 더 본질적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나만 빼놓고 먹거나 남겨두지 않는 사소한 박대에는 소심하게나마 항의하곤 했다. 돌아오는 챙김이 없었을지라도, 그것이 내가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표현이었다.

​여동생 역시 외가의 기질을 닮아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으나, 예고 진학이라는 목표가 생기자 무서운 집념을 보였다.
언니가 중2 열등반 시절 스스로 공부법을 터득했듯 동생도 새벽까지 책상을 지켰다.

예고 입시가 다가오자 연극과 실기입시를 위해 엄마는 다시 거액을 투자했다.
동생의 입시 해부터 예고의 문턱이 인문계 가까이 높아졌지만, 동생은 그 벽을 넘어 예고 연극과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엄마도, 그리고 그 소란을 지켜보던 우리도 여동생이 아주 유명한 배우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배우를 꿈꾸는 아이치고는 낮은 콧대에 통통한 체격이었다. 그럼에도 동생의 합격은 현실이 되었고, 그 화려한 기대로 집안의 질서는 동생을 중심으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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