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돌벽 집 이전, 문방구 시절로.
나의 문방구 시절 첫 기억은 빼곡한 주택가 사이, 좁은 도로를 낀 상가 골목길에서 시작된다.
문방구는 주택가 오르막길과 상가 골목 교차로 코너에 자리 잡은 2층 건물에 있었다.
1층에는 네 개의 상점이 각각 작은방 하나와 연탄아궁이가 딸려 있었고, 아궁이를 지나 그 안쪽에는 백열등이 없으면 빛 한 점 들지 않는 동굴 같은 공동 수도 공간이 있었다.
우리는 그 어두운 곳에서 씻고 빨래를 했다. 화장실은 건물 외부 맨 우측에 있는, 자물쇠 있는 작은 문이 달린 푸세식 공동화장실을 사용했다.
주인집은 오르막길 덕분에 2층이면서도 건물 좌측에 출입문을 가진 구조였다. 그 아래 다닥다닥 붙은 네 개의 상점 위층을 주인이 통째로 썼는지는 어린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 시절, 우리 집에도 드디어 검은색 다이얼 전화기가 생겼다.
손가락을 둥근 회전구멍에 넣고 드르륵 소리를 내며 돌리던 전화기는 신기한 장난감이자 세상으로 통하는 창구였다.
엄마는 검은 다이얼을 돌려 강화도 외가와 소식을 주고받았다. 수화기를 붙들고 고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엄마의 모습은, 문방구의 소란 속에서 엄마가 가졌던 몇 안 되는 위안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방구 출입문 옆에는 십 원짜리 동전을 넣는 녹색 공중전화가 비치되었다.
밤마다 엄마는 그 전화기의 동전통을 수거했다. 쏟아져 나온 동전들을 세어 신문지에 넣고 돌돌 말아 금고 지폐 서랍 칸 아래에 층층이 쌓던 엄마의 손길은 성실했다. 십 원짜리 동전 묶음이 늘어갈수록 우리 집의 가세도 단단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을 짓누르는 공포도 있었다. 수시로 울려 퍼지던 민방위 훈련 사이렌 소리였다. 사이렌이 울리면 동네는 순식간에 죽음의 도시처럼 적막에 잠겨야 했다.
양철판에 각목을 덧댄 문 네 짝을 문방구 유리문틀에 꽉 맞물려 끼우고, 그중 한 짝 하단에 작게 난 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 안쪽에서 잠갔다.
불빛은 절대 허용되지 않았다.
우리는 군용 모포로 미닫이 방문의 틈새를 꼼꼼히 막고 방 안에서 촛불 하나만을 켠 채 숨을 죽였다. "불 꺼!"라고 소리치며 돌아다니는 감시원 아저씨들의 거친 목소리가 들릴 때면, 혹시라도 불빛이 새어 나갈까 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촛불 주위에 모여 앉아 그 공포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간절히 빌던 밤들. 문방구 안채의 어둠은 동굴보다 깊고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