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빨랫비누

by 온지정원

문방구 시절의 겨울은 유독 길었다.

지금처럼 수도꼭지만 돌리면 온수가 콸콸 쏟아지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우리에게 온수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궁이 앞에서 고단한 노동 끝에 얻어지는 귀한 것이었다.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백열등 하나가 방 안의 유일한 빛이었던 그때, 우리는 연탄아궁이 위에 커다란 양은솥을 올리고 물을 데웠다.
성냥불을 그어 켜는 석유곤로가 있긴 했지만, 절약 정신을 가진 엄마에게 비싼 석유는 금기나 다름없었다.
따뜻한 물 한 대야를 쓰기 위해서도 엄마의 눈치를 보며 연탄의 열기가 솥 안의 물을 달구길 기다려야 했다.

​엄마의 인색함은 세숫비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엄마는 어린 우리에게 세숫비누 대신 빨랫비누로 얼굴을 씻으라고 했다.
거품도 잘 나지 않고 쿰쿰한 냄새가 나는 그 뻑뻑한 비누로 씻는 게 싫어 대충 물만 묻힌탓인지, 겨울이면 내 얼굴은 엉망이었다.
코밑은 헐어서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손등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하게 터서 피가 맺히기도 했다.

​국민학교 들어가고서야 '다이얼 세숫비누'라는 것이 우리 집 세숫대야 옆에 놓였다.
하지만 그 비누 향을 맡을 때조차 "아껴 써라"는 엄마의 엄한 주의가 뒤따랐다.

우리에게 씻는다는 건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는 개운함이 아니라, 가난의 냄새를 빨랫비누로 덧칠하며 추위를 견뎌내는 일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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