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과 교수의 삶 1
태국을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태국의 삶이 언제 끝날지
그 끝을 모를 삶을 막연하게 준비하는 것이
극 P의 성향에서는 정말 힘들었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태국의 방콕으로만 사람들이 놀러 가는 것이지
다른 지역으로
어떻게 정착하는지에 대해서는
정보를 많이 얻을 수가 없었다.
(태국의 삶에서 전기장판은 한국인에게 김치보다 중요한 것)
그리고 태국에 일을 하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정식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태국 대사관에서 비자 발급
그동안의 비자는 발렌티어 비자나 관광 비자였는데
역시 초청 + 일하는 비자는 일사천리로 나왔다.
그리고 비행기표 끊기
사람이 돌아올 날을 모르다 보니
비행기표를 끊게 되었는데
그때 타이항공의 특가 기간으로
비즈니스를 타고 태국에 갈 수 있는 표까지 구할 수 있었다.
(덕분에 라운지도 이용해 보고 입국 심사도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 D-Day를 발판 삼아
가족들이랑 급히 여행을 다녀오고
친구들이랑 마치 다시는 못 만날 사람처럼
작별 인사를 했었다.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시간은 흐르고
그렇게 아무 생각도 없이 태국 콘깬에 도착하고
태국이 태국처럼 느껴지지 않은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 1년 살기가 아닌
태국에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 신분이 변화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었었다.
집 구하기
교통수단
워크퍼밋 발급
집 구하는 것에서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서
다음 화에 기록하는 것으로 한다.
우선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feat. 대학교수)은
교통수단이 중요했다.
처음에는 썽테오라고 하는
태국의 미니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이동을 했다.
(그때는 grab이 없었음…. )
그러다 보니 오토바이로 10분 만에 가는 거리를
갈아타고 가다 보니 30~40분이 걸리게 되고
약간 늦으면 택시를 타고 다녀야만 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오토바이를 직접 운전하는 것!
그때만 해도 태국 주마다 운전면허 교환에 대한 것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나는 2종 보통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으로서
태국 오토바이 면허가 나온다 안 나온다 말이 많았다.
확실한 정보가 그 어디에도 내 능력으로는 찾기 힘들었다.
근데 나 누군가
의지의 한국인
애매한 정보는 모르니
직접 가서 오토바이 면허를 따기로 하고
영어로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실기시험도 통과했다.
물론 필기시험 2번 떨어졌다. 3번째 만에 붙었다. 영어 싫다…..
한국이랑 다른 것은 오토바이 면허를 따기 위해서
자신의 오토바이를 대부분 가져와야 하는 것이고
실기시험도 시험이기에
옷을 잘 갖춰 입어야 하는 것
그리고 매 순간 매 회 확인 도장 혹은 합격 도장을 받아야 하는 것
(아직도 이해 불가는 면허가 없는데 오토바이를 직접 가져와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렇게 태국에서 오토바이를 구입하게 되고
내 이름으로 등록을 하게 되고 (워크퍼밋 덕분에)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태국에 와서
태국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태국의 하루의 삶에 차여사는 그 한 학기가 흐르니
나의 정신 건강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삶의 밸런스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때는 알지 못했다.
이 조금의 균열이 어떤 상황을 불러올지는….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