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단어 시리즈 2
나에겐 여러 친구들이 있다. 이 친구들은 짧게는 일주일에서부터 길게는 십 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다. 그래서 그들을 대할 땐 뜨겁게 타오르기도 하고, 미지근한 평온함이 느껴지기도 하며, 차갑게 식다 못해 지겨울 때도 있다. 때론 캄캄한 방에 혼자 누워있으면 잊었던 모습들이 떠올라 그리운 순간도 있다. 이제부터 친구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만난 지 한 다된 아직 어색한 사이 - 생각 없이 휘파람 불기, 글쓰기, 운전 (면허딴지는 1년 전인데 아직도 다가가기 어려움)
만난 지 일 년이 지난 좀 아는 사이 - 임장 다니기, 새벽기상, 이불 개기,
만난 지 3년 지난 친한 사이 - 커피 마시기, 자기 전 핸드폰하기
만난 지 10년 지난 알 거 다 아는 사이 - 입술/ 손 물어뜯기, 팔자걸음, 양반 다리 하기
오래 알고 지냈지만 요즘 멀어진 사이 - 향초피우기, 향수, 쇼핑하기, 일기 쓰기, 만화 보기, 멍 때리기, 낙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부터 1년 정도 된 따끈따끈한 사이는 아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잠깐 방심할 때면 어김없이 원래의 나로 되돌아오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긴장감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사이이고, 추구하는 방향성이 반영되어 오랫동안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게 나의 현재 목표다.
만난 지 3년에서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는 너무 익숙하고 편하지만 그래서 더 경계해야 하는 사이다. 오래 알고 지낸 녀석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어째 변변치 않기도 하다. 주로 불안할 때나 피곤할 때 내 마음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안타까운 감정도 든다. 친한 사이 못 볼 꼴 다 보여준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요즘은 소원해진 사이는 어떠한 계기로 인해 멀어지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종종 추억이 떠올라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나에게는 이렇게 다양한 친구들이 공존한다. 이 친구들은 분명 내가 아니지만 때론 나를 표현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요즘 친한 친구들은 누구인지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에게 여전히 힘든 나를 맡기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