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단어 시리즈3
어린이집을 하원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주 들리는 곳이 있다. 눈을 한참 떼지 못하는 아이는 "엄마. 저기 갈래." 라며 생떼를 부리곤 한다. "오늘은 가는 날 아니야." 단호하게 대답하지만 받아들이는 건 그녀의 선택이기에 날마다 옥신각신이다.
편의점에 들어선 아이는 해적이 애타게 찾던 보물이라도 발견한 표정이다. 달달한 초코 과자, 바삭 바삭한 감자칩, 딸기맛 사탕, 무지개 곰돌이 젤리까지 좋아하는 것이 가득한 섬. 아이 입장에선 "세상에 이렇게 보물이 가득한 곳이 있다니! " 감탄을 불러일으킬만도 하다. 나는 그 곳에서 몇 십년동안 혼자 보물을 지킨 전사처럼 냉정하고 엄격하다. "오늘은 하나만 고르는거야. 그건 안돼. 이빨에 안 좋아. 사탕은 어제 먹었잖아. " 편의점에 들어가서도 진땀을 빼다 가까스로 협상을 마친다.
'지이이이이잉. 2500원 결제완료.' 핸드폰의 진동이 울린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동네에서 편의점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자리엔 작은 슈퍼 혹은 문방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엄마랑 시장에 갈 때면 돌아오는 길에 문방구에 꼭 들리고 싶어했다. 지금 나의 아이가 그랬듯 그 곳에 들어서면 눈빛이 어느 때보다 반짝거렸다. 펄이 들어있는 펜, 케이크 모양의 지우개, 금발 머리 인형과 다마고치,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 정말 갖고 싶은것들이 가득했다. 나는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스티커를 내민 후 엄마의 대답을 기다렸다. 문방구에 있었던 난 어느때 보다 말랑말랑했다. 지금 나의 아이처럼.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더니 그게 딱 나였다. 작았던 아이는 반짝반짝 공주를 열망했고, 귀여운 캐릭터를 사랑했다. 단지 지금 너무 커버린 나에겐 그 물건들은 더 이상 설렘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지나간 연인과의 사랑이 차갑게 식어버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의 아이는 지금 열렬히 공주를 좋아한다. 또 이빨에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초코과자도 사탕도 너무 달콤하다. 그 말랑말랑한 마음을 이해해주면 어떨까? 오늘은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