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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파는 일, 잘 사는 일


오늘 웃긴 일이 있었다.


요즘  누굴 만날 목적으로 외출을 할 때면 좀 웃긴 생각이지만, 스키니진 입는 게 너무 올드해 보일까 봐 좀 멈칫하게 되는데, 오늘  만날 (트위터) 친구가 나랑 거의 열 살 터울은 나는 듯하여(실제 나이는 모름ㅋㅋㅋ) 다 입은 바지를 괜히 또 벗고 옷장에 있던  통이 넓고 낙낙한 동생 바지를 입고 나갔는데, 너무 황당하게도 버스에 타서 자리에 앉자마자 바지가 아주 부드럽게 스스르 실낱이  풀리며 찢어졌다(감촉이 아주 생생했음). 그래서 결국에는 도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집에 돌아가 벗어놓은 스키니진을 생각할 새도  없이 얼른 주워 입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나는 바지라는 건 시트콤에서만 찢어지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어차피  이날 중으로 찢어질 바지였다면 타자마자 찢어진 건 운이 좋았다.


바지를  입을까 말까 고민할 때만 해도 스키니진이 너무 의식돼 어쩔 줄을 모르겠더니 막상 급하니까 시장이 반찬이라고(이게 적절한  비유인가?) 가릴 정신이 없고, 막상 입고 나오니 아까처럼 바지가 딱히 의식이 되지도 않았다. 이래서 예전에 스티브 잡스가 옷  고르는 데 시간 안 쓰려고 맨날 비슷한 옷만 입고 그랬던 건가?


이  일을 겪고 저녁 때 돌아와서 텀블벅 펀딩 마감을 7일 남긴(자정을 넘었으니 이제 6일) 애나 아카나의 에세이 《슬프니까 멋지게,  애나 언니로부터》 책 뒷표지에 들어갈 서문을 손보는데, 문득 그동안의 펀딩 과정을 돌이켜보았다. 구체적으로는, (또다른) 트위터  친구가 이 책의 펀딩 전략에 관해 장문으로 조언을 해 주신 내용을 되새김질 해 본 것인데(이 DM을 받은 후로 하루 걸러 하루  정도는 그 내용에 관해 생각해 본다) 요지는 좀 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전략을 바꿔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메시지가 아주  상세하고 구체적이어서 이 한 줄로 요약하자니 좀 섭섭한 생각이 들 정도다.


어디까지  했더라? 아, 되새김질. 어쨌건 질근질근 또 멍하니 되새김질을 하고 있으려니 예전 생각이 났다. 우리 집 구성원은 한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진절머리 나게 선비 기질을 타고 난 사람들인데, 사실 그래도 균형이 괜찮았던 게, 예전부터 사주 같은 거 보면 다들  현실적인 한 명한테 나머지가 잘하며 살면 된다고 그랬다(?????). 당시 그 말을 유독 새겨들은 탓인지 나는 성인 즈음부터  열심히 "탈 선비"하려 애썼다.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나 구해도 무조건 돈 잘 줄 것 같은 대기업, 직영 체인으로만 갔고(떼이는  경험을 해 보기 전부터 이미 떼인 돈을 달라고 할 자신이 없었다), 심지어는 나중에 굶어 죽을까봐 고등학교도 이과반으로 진학해  학부에서 컴퓨터 공학을 배우고 개발자로 월급 밀리지 않고 월급날 아침에 딱딱 주는 회사도 몇 년 다녔다(은행 이자 때문에 월급을  아침에 안 넣어 주는 회사도 있다). 물론 지금은 텀블벅 번역서 펀딩이 될까 못될까 전전긍긍하며 치사하기 짝이 없는 요율로 영상  번역 일을 하고 있지마는 아무튼 내 20대는 선비가 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아등바등으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내가 제법 "탈 선비"에 성공했다고 자만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으니 충격의 파급력이 몇 배는 더 셌다.




두 번씩이나 이 선비 같은 섬에 버려지다니…….




원상복귀의  구체적인 기점이 언제부터였는지를 반추하는 과정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전부 영국 탓이다. 첫 직장 퇴사 후 영국으로 생애 첫  국외 여행을 갔을 때부터 슬슬 기미가 보였다. 그전까지는 지독한 영어 울렁증에 사람을 봐도 도망만 가던 내가 갑자기 입이  근질근질해지면서 자꾸 아무한테나 영어로 말을 걸고 싶어지게 됐다. 그 열망이 잦아들지 않았고, 결국 나는 YMS 비자를 발급 받아  한 번 더 영국행을 감행했다(아무렇게나 과정 축약). 영국에서도 "탈 선비"의 가능성을 열심히 노리며 이력서도 내고 채용 행사도  다녔으나 아무도 나를 가엾이 여겨 엔지니어로 채용해 주지 않은 탓에 집구석에서 강아지들만 껴안고 온라인으로 그나마 산업 번역  일이라도 하며 푼돈을 벌게 됐으니 내가 선비로 회귀한 것은 정말 순전히 영국 탓이다.


영국에서  지낸 나날은 제법 행복하기도 했고(강아지가 있어서) 여전히 그립기도 하지만(강아지 때문에) 그렇게 살 걸 미리 알았으면 아마  워킹홀리데이 같은 건 영영 이루지 못한 바람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매일 하루도 돈 생각을 안 한 적이 없었고, 돈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게 울어본 날도 손으로 다 꼽을 수가 없다. "선비"와 함께 쓸 때 가장 참혹해지는 연어(collocation)는 바로  "가난하다"라는 수식이다. 한국에서는 풍족하진 못해도 밥 굶고 잠잘 곳 걱정할 정도로 그야말로 가난하게 산 적은 없었는데(운이  좋았지), 영국에서는 내 경제 상황을 적당히 가릴 수도 없게 아주 노골적으로 쪼들렸다. 비유하자면, 대학 입시에 문 닫고 들어가는  성적이 있는 것처럼, 나도 워킹홀리데이 출국이 가능할 수 있게 딱 문 닫는 수준으로 잔고를 맞췄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는  천운이기는 했다. 문 닫고 들어가는 건 거기가 감옥만 아니라면 어딜 들어가든 승자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문 닫고 들어온 런던에서, 밥 먹고 사는 건 제법 괜찮았지만(맛있는 걸 못 먹어서 그러지, 식재료는 전략만 잘 짜면 무지하게  싸게 확보할 수 있는 도시다. 타임 세일로 몇 백원에 식빵 한 봉도 살 수 있다) 일상에는 생각보다 필요한 게 많았다. 생필품  특히 세안 용품은 함께 사는 친구와 반반으로 나눠 샀는데 그 친구가 양치할 때마다 훅훅 줄어가는 2파운드짜리 치약 튜브를 보면서  '친구가 양치를 아주 조금만 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한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양치도 치약을  아주 소량으로 아껴가며 한두 번만 했다(좀 더럽군). 요즘도 화장실에서 양치하려고 치약 짤 때마다 가끔 행복하다. 화장실에 치약이 있고 그걸 아까워하지 않고 쓸 수 있어서.


그래도  "가난한 선비"가 된 덕분에 하나 얻게 된 기질도 있었다. 너무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마침내 같이 사는  친구에게 자금 사정을 털어놓고 또, 정말 고맙게도 친구가 내 편의를 봐 준 덕분에, 번역 정산 대금이 들어오기까지 며칠 월세를  연체하거나 가끔은 한 달치를 반으로 쪼개서 2주로 낼 수 있게도 해 줬다. 그럼 열심히 푼돈을 모아서 월세를 만들었다(그게 정 안  될 때는 가족에게 SOS를 치면, 가족이 열심히 돈을 모아 이따금씩 보내 주었다. 나는 정말 호랑말코 같은 피붙이였다). 이제  대강 상황을 알게 된 친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끼니마다 맛있는 것도 먹여주고 거기에 든 식재료 값을 강아지 산책으로 대신 갚는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는 제도도 마련해 주었다. 정말 살면서 또 있을까 싶은 행운이었는데 친구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옴이 붙어도  단단히 붙은 셈이었겠지.


런던에서  내 인생관 자체가 달라질만큼 실감나게 배운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인간은 절대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것과, 여행에서 남는 게  사진뿐이라면, 삶에서 남는 건 무조건 사람이라는 것(앗, 두 가지네…). 선비도 맞들면 낫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보낸 2020년은 어딘지 좀 그동안과 달랐다. 오프라인으로 적극적으로 사람을 만났고, 코로나19 상황으로 여의치  않을 때는 온라인으로도 열심히 사람을 만났다. 이건 무조건 소셜미디어 등을 이용해서 아무에게나 마구잡이로 들이대며 말을 걸고  직접 교류했다는 뜻만은 아니다. 대신 좀 더 일방통행적 친밀감 형성을 병행했다. 특히 유튜브를 의욕적으로 봤고, 뭔가 콘텐츠의  주인공에게 뾰족한 할 말이 떠오르면 그걸 댓글로 남기기도 했다(나는 작년에 유튜브 댓글을 거의 처음 써 봤다. 유튜브 댓글을  남기려면 해당 계정에 채널이 생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그즈음에야 알았다). 이제는 진짜 화면 속 사람들이 일종의 친구처럼  느껴졌다.


내가  작년에 사귄 친구(?) 중에는 젊은 무속인 분도 하나 있는데(대충 그 채널을 구독하고 가끔 댓글을 남긴다는 말), 무엇보다  그분이 신의 제자가 되어 수양하면서 깨달은 것들을 전해 주는 말씀이 뭔가 명상이라도 하듯 머릿속으로 잘 스며서 자주 감동했다. 1년쯤 이 채널을 제법 열심히 봤더니, 무속신앙적으로 설계된 이 세계의 구조와 형태가 어떤 느낌인지 대강 이해하게 됐는데 그런 상태에서 이 채널의 "돈을 좇아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요지의 영상을 보고 나니 이 조언을 내게 적용해서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마음 무겁게 곱씹어보던 DM 내용도 한결 산뜻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아주  납작하게 그냥  '돈을 좇는 사람' 자본가라본다면, 대척점에는 '선비' 있다. 이를 다시, 구체적이고 맥락 전달에  도움이  만한 대명사로 바꿔 보겠다. 자본가는 '투자가' 바꾸고, 선비는 '창작자' 바꾸자. 능력있는 투자가는 돈의 흐름을   읽고, 따라서 돈이 벌리는 곳에 투자한다. 이런 투자가에게 소모재인 《슬프니까 멋지게, 애나 언니로부터》를 팔면 적어도 자본  투자의 목적으로는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냥 가엾게 여겨  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반면, 창작자는 열심히 창작물을  만든다.  책의 번역을 맡은 번역가(닉네임: 번역가 H 또는 바위) 1 번역을 하고(초벌번역 아님), 그걸 편집 경험도 없는  내가(닉네임: 번역가 Y 또는 ) 편집이랍시고 무자비하게 원고를 들쑤시듯 다듬는다. 역자는 애써 인내심을 발휘하며 이를     손본다.  과정을, 역자  편집자 경력 둘 다를 보유한 출판사 대표(닉네임: 가위) 중재하고 지휘한다. 우리 셋은 창작의  과정에 적극 가담하며, 책이 많이, 적어도 일정 수익 이상으로 팔려야  과정을 지속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책이   팔리리라는 낙관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책이라는  그렇다.  팔려야 하지만, 그것과는 결이 조금 다른 가치를  자양분으로 움직이는 산업이라서. 만일  팔리는 책만 만들었다면 지금쯤 ''이라는 매체는 극소수의 부유층만 향유할  있는  무언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비교적 많은 사람이 책을 읽을  있고 심지어 활발히 책을 직접 만들기도 하는 현재의  상황은 나름의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이런 위안에도, 텀블벅에서 주어진 기한 내에 일정 금액 이상 책을 판매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은 꿈이 아니라  수도 없다.  그래서 남은 6일은 철판 깔고 뻔뻔하게    홍보를 열심히   생각이다.  초기 아이디어가, “많이 팔리면 좋기야  하겠지만 어쨌건 코어는 "애나 아카나" 널리 알리고, 애나의 매력에 반한 이들이 독자가 되어 주면 좋겠다,  범위를 아주아주  넓혀 보자!” 하는 거였다면, 펀딩 막바지에 이르니, 어차피 그냥   권인데,    나처럼 줄어드는 치약 때문에 울어야  하는 분이 아니라면야 ,     샀다가 생각보다 취향이 아니라서 실망하는 정도의 구매 시나리오는 판매자인 우리가 제어할   없는 선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말하자면, 앞서 스키니진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일과 동류의 자의식 과잉인 것이다.


가난한  선비에서, 도움을 구할 줄 아는 삶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또 하나, 지갑 사정이든 뭐든 내 처지를 최대한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숨기지 않는 법을 배웠다. 제 고뿔보다 위중한 남의 병은 없다고(이게 적절한 비유인가?22), 인간은 풍족하든 빠듯하든, 태어나길  무작위로 세상에 왔고, 환경은 내 의지로 택한 것이 아니다. 자원의 제약이 본인에게야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불편하고,  자주 서글퍼지는 현실이라고는 해도, 이걸 부끄럼으로 여기지는 않으려 한다. 이런 마음을 먹고나니 자연스럽게 고친 내 고질적인  습관이 있는데, 바로 중간고사 기간에 기말고사 걱정하는 버릇이다.


초월  번역에는 이렇다  소질이 없지만, 적어도 어릴 때부터 단순(?) 초월과 비약 분야에는 제법 탁월한 재능이 있었는데, 그래서 시험 기간이면   다음 시험 준비를 향한 의지를 다지곤 했다. "기말 때부터 열심히 하면 !"라는 자기 합리화  번이면 거짓말처럼 당장   앞에 놓인 시험에 대한 부담이 달아났다.  초년은 그렇게 조악하게 쌓아올려졌고,  손에   회피와 합리화라는 나사못뿐이었다.


애나  아카나 책 관련 비공식 회의실이 된 카페와 동명인 소설 《플랫랜드》의 세계관처럼, 이미 지나온 시간들을 어설프나마 절대자  흉내내며 더 높은 차원으로 들여다 보는 노력을 해 보니, 런던에서 어느 기점으로 한번 내 삶의 어떤 부분이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그  잔해 속에서 이번에는 이걸 좀 더 탄탄하게 다시 쌓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비유를 하자면, 최근에 '캔디 크러시'를 다시  깔아 플레이 기록이 전부 초기화된 상태로 1탄부터 시작했는데, 안정감도 기록도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2020년부터 내  일상이 딱 이런 기분이었다. 나한테 딱 하나 있던 아이템을 소진해 일생일대의 '초기화' 기능을 쓴 느낌이다. 매일 만나는 삶의  모든 요소가 어딘지 좀 더 생생하게 소중해졌다. 작년에 내가 자막을 맡은 영화 〈카조니어〉도 주인공 올드돌리오가 멜라니와 함께  캄캄한 화장실에 갇혀 잠시 지진을 겪고 밖으로 나오면서, 내가 겪은 것과 비슷한 종류의 초기화를 경험하는 장면을 아주 코믹하게  그리는데, 나는 올드돌리오의 그 마음이 뭔지 알 것만 같아서 괜히 좀 뭉클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인간이  살면서 이런 감정적 초기화를 겪는  제법 손에 꼽을 보물 같은 행운이라 믿는다(나는 진짜 운이 좋은 인간인가 보다). 그리고  진짜 보물을 만나 봤으니, 더는 "기말부터 열심히!" 같은 가짜 초기화, 가짜 보물은 내게 의미가 없다. 사실 아까 설거지하면서  아주 잠깐, "텀블벅 펀딩, 다음에    하면 진짜 잘할  있을  같다…"  같은 유사 '기말부터' 신호를 아주 잠시 수신하긴 했으나, 뽀득뽀득  씻은 그릇을 건조대에 착착 배열해 설거지를  끝내고  나니, 당분간은 기말고사고 나발이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당장 중간고사나 집중 하자! 의지가 솟아올라 별안간 이런 우스꽝스러운  잡문을 빙자한 홍보 글을 쓴다.








2021년 3월 16일 화요일 자정에 끝나는 제 중간고사(?) 결과를 응원해 주실 소중한 후원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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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 애나 아카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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