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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편집 사이 "보의 난입" 편

《슬프니까 멋지게》 책 만들기 프로젝트 3-1

커버 이미지 (c) Photo by Matt Ridley on Unsplash






일명 "애나 아카나 프로젝트"였던 가위바위보 출판 프로젝트에서의 내 역할이 딱 이 단어에 걸맞는단 생각이 든다. 난입.


이 책의 계약이 최종 확정되기 전부터 번역자의 입장에서 또, 제작 및 편집자의 입장에서 책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나는 가위와도, 바위와도 친구 비슷한 사적인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초반의 참견은 순전한 선의에 기반했다.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비즈니스에 머물지 않고, 좀 더 수월하게 의견을 소통하며 매끄럽게 굴러가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내가 거기에 일종의 윤활유 혹은 무른뼈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는 어쭙잖은 생각을 했다.


위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굴러온 돌이었던 내게 가위와 바위가 별안간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그렇게 재미 삼아 얹은 뜬구름 같던 참견들에 온당한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 왔다. 가장 무거운 책임은, 영어권 원문의 영향으로 쓰이는 특유의 외화식(?) 번역투를 윤문하면 어떨까? 했던 야심찬 제안을 수습하는 일이었다. 이 제안의 취지에 관해서라면 지금도 같은 마음이지만, 이러한 내 의견을 굳이 이번 가위바위보 프로젝트에서 피력했어야 했나? 하는 데에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감히 용기 내어 같은 제안을 할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다.


편집자이자, 코믹릴리프 시리즈에서도 4권의 책을 직접 낸 가위, 작업 호흡이 긴 출판번역 분야에서 벌써 몇 권의 책을 번역한 바위에 비하면,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건 독자로서 번역서를 이리저리 사 읽은 경험밖에 없었건만, 물정 모르고 내 의견을 밀어붙였다. 한데 내가 간과한 게 여럿 있었다. 이후 다행히 이를 점차 인지해 간 덕분에 나는 "매끄러운" 번역에도 함정이 있음을 배웠고 또, 내가 한 제안에 걸맞는 대안을 제공할 능력이 지금의 내게는 없음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가위의 말처럼, 나 역시도 이때를 가위바위보 프로젝트의 최대 위기로 꼽는다. 바위와 가위의 아량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프로젝트가 어떤 노선을 걷고 있었을지 상상하기 두려울 정도다. 당시 나는 꽤 오래 악몽에 시달리다 깨는 아침을 맞이했고, 몇 년이나 공부한 번역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괜히 편집 관련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러 쏘다닌 기억이 난다.


선의를 온전한 선의로 남게 하는 것은, 그에 걸맞는 적절한 대안이다. 그러니 아무리 그럴싸한 의견이 입가를 간질거려도 이를 뒷받침할 대안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자중하는 것이 좋다는 게 이번 일을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이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가위와 바위 사이에 난입해 박힌 돌이 되기로 한 결정만은 후회하지 않는다.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들으며 겉도는 참견보다는 솔직한 소통을 통해 함께 성장을 도모하는 쪽이 언제나 조금은 더 옳으니까. 심지어 가위바위보 프로젝트 그룹채팅방은 듣기 좋은 말마저 무한대로 퐁퐁 솟아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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