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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Feb 28. 2021

번역과 편집 사이

《슬프니까 멋지게》 책 만들기 프로젝트 3

지금까지는 책을 만들 때 혼자 모든 과정을 직접 하다 보니 일반 출판사에서는 분담되어 있는 일들 사이에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기획-번역-편집-디자인-제작-유통-마케팅


이렇게 해놓으면 순차적인 작업 같지만 사실 마케팅이 기획 단계에서 같이 시작되기도 하고 번역과 편집은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진행된다. 디자인도 편집하는 과정 사이, 사이에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진행된다. 


특히 번역과 편집의 경계란 아주 미묘하다. 정해진 경계선이 있다기 보다는 각각 번역가와 편집자의 작업 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그 경계선이 조정되는 듯하다. 


예시 1) 번역가가 번역 원고를 넘기면 편집자가 표기법을 통일하고 어색한 문장도 알아서 수정하고 편집자 주도 달고 윤문한 후 출간 거의 직전에 번역가에게 교정지를 한번 보여주고 출간한다. (이 과정에서 본문의 장제목을 바꾸거나 한국어판 제목을 어떻게 하는지에 관해서는 번역가에게는 통보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예시 2) 번역가가 번역 원고를 넘기면 편집자가 오역으로 생각되거나 사실확인이 필요한 곳, 번역자 주가 들어갔으면 하는 부분을 표시하여 번역가에게 넘기고 번역가가 피드백을 하면 편집자가 다시 살펴본 후 교정/교열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조판 디자인을 한 후 1차 교정지를 번역가에게 보내서 번역가 교정을 받아 반영하고 2차 교정지도 번역가에게 확인 받은 후 출간 과정에 들어간다. 한국어판 제목이나 내용 중 각색을 한 부분에 대해 번역가의 감수를 받는다. 


모든 출판사의 경우를 다 알 순 없지만 아마 '예시 1'과 '예시 2'의 사이에서 일을 하는 비율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시를 읽으면서 짐작했겠지만 하나의 텍스트를 책으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번역가와 편집자가 하는 일의 경계는 겹친다. 당연하겠지만 겹치는 경계에서 번역가와 편집자가 얼마나 합리적으로 소통하느냐가 책의 품질에 큰 영향을 끼친다. 


내가 이 소통하는 과정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계기는 바위가 번역한 원고에 대해서 보가 약간의 윤문을 하고 싶다고 제안을 해서였다. 나 같은 경우에는 편집자로서 일할 때 번역문을 많이 고치는 스타일이 아닌데, 아마도 보는 현재의 번역문을 보다가 조금 더 읽기 좋은 문장으로 수정하고 싶다는 욕구가 든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바위의 의견을 물었다. 아무래도 보가 편집자 경력이 없고 같은 번역가이다 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친구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감정이 상할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되돌아 보기로 이때가 개인적으로 가위바위보 프로젝트의 최대 위기가 아니었나 싶다. 둘 사이에 끼어서 가위 구실(?)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오직 신뢰로만 이루어진 이 관계가 박살날 수도 있으니까.


바위의 말을 들어보니 번역문을 고치는 것보다는 고친 후에 다시 자신이 일일이 수정된 원고를 다시 살펴야 하므로 일이 늘어나고 보에게도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 될 테니 걱정되는 눈치였다. 내가 수정된 부분을 표시해서 확인하면 어떴겠냐는 의견을 냈지만 그것은 서로 너무 품이 많이 들 것 같아 반려되었다. 긴 대화 끝에 결국 보가 윤문을 시도해 보고 정식으로 책의 판권에 보의 이름을 편집자로 올리기로 했다. 


결국 보는 전체 원고를 다시 보며 윤문을 했고 바위가 그 원고를 다시 보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렇게 하기로 한 게 잘했던 선택일까? 알 수 없다. 그저 나는 가위, 바위, 보가 함께 만드는 책이니 원고를 더 낫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관여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고 싶었다. 


혼자 일을 했다면 이런 식으로 마음 졸일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했다면 그 책을 완성했을 때 성취감을 느낄 사람은 나 혼자인 반면 이번 책은 적어도 세 사람은 될 테니까. 협동이란 조금 귀찮은 대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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