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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어 학습 일대기 (5)

영어 독학자의 기쁨

이런저런 방황 끝에 6년 만에 학교를 졸업했다. 그사이 나름의 발견이라면, 보통 내 발크기쯤으로 나온다는 첫 토익 점수가 예상 외로 괜찮게 나왔다(공부 안 하고 700대, 공부했는데도 800대 초반). 당시에 지도교수님이 취업 가능성을 발견하고 집중적으로 이런저런 취업용 과제를 내 주셨고, 그런 교수님께 '저는 음악 해야 해서 취업은 못 햅니다...'하고 장문의 메일을 보낸 기억이 있다. 답장은 안 주심.


다시는 IT 쪽은 발도 들이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딱히 음악적으로 뭘 쌓아 놓은 건 없어서 결국 카페에서 일 좀 하다가 뛰쳐 나와서 첫 회사에 입사했다. 여기서는 QA라고 소프트웨어 품질 검사를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글로벌 서비스라서 이것저것 많이 배웠다.  GMT라는 개념도 여기서 처음 알았는데(해당 프로젝트 내 모든 기준이 GMT 0시로 되어 있음), 그 몇 년 후에 진짜 GMT 0시인 도시에서 한 일 년쯤 살아 본 게 이제 생각해 보니까 제법 재미있는 기억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계속 IT 업계에서 일하면서 느낀 건 한국에 살면서 IT 엔지니어로 일할 때 '영어가 별로 필요 없다'는 거였다. 프로그래밍 언어 자체가 영어이긴 하지만, 그 외에 딱히 영어 쓸 일이 진짜 별로 없고, 심지어 개발자들도 이상한 영어를 진짜 많이 쓴다. 드라마 〈실리콘벨리〉 같은 걸 꿈꿨는데(그땐 대체 왜 이런 걸 꿈꿨을까?), 내 현실은 드라마 〈IT 크라우드〉에 가까웠다. 다만 한국어 번역 패치가 덕지덕지 붙은 버전이라고 할까.


회사 생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좀 명시적으로 느낀 것 같다. 나는 영어를 좋아한다고. 그에 비하면 내 삶에는 영어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회사로 이직한 후부터는 연봉이 좀 올라가기도 했고, 이때부터 음악가의 꿈이 자연스럽게 흐려지고 관심사가 영어로 옮겨 오면서 어떻게 하면 내 삶에 강제로, 인위적으로 영어를 들여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두 과정 사이에 하나 중요한 게 빠졌다. 첫 회사를 퇴사할 즈음에 영화 〈킹스맨〉을 보고 그해 말 무렵 생애 첫 비행기를 타고 영국에 간 일이 있었다. 아직 제주도도 못 가 봤는데, 처음 타 본 비행기가 영국항공이라는 게 좀 웃기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제주도를 못 가 봐서 그냥 영국만 두 번(한 번은 관광, 한 번은 워킹홀리데이) 가 본 사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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