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님의 스스로 학습법
대한민국 엄마들에게
상상을 해보자. 내 자녀가 드디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운전면허를 취득해서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조수석에 앉아 있다. 무서워서 헬멧을 써볼까, 쿠션을 안고 타볼까 고민했지만, 자녀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자, 출발. 부릉! 앗, 엑셀을 너무 깊게 밟은 것 같다. 이 운전자 믿어도 되는 것인가.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을 한다. 총체적 난국이다. 본인도 긴장했는지 이대로 직진만 2시간 할 기세이다.
초보운전자의 조수석에 앉으면 항상 불안하다. 운전면허학원의 차량이라면 조수석에 브레이크라도 있지, 일반 차량은 대신 브레이크를 밟아줄 수도, 대신 핸들을 잡아줄 수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아서 덜덜 떨고 있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오히려 초보운전인 만큼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서 운전한 모양이다.
자기주도학습도 초보운전과 비슷한 것 같다. 운전대를 잡는 것도,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고, 때에 따라 깜박이를 켜는 것도 정신없는데 내비게이션에 맞게 길까지 찾아야 한다. 대혼돈, 아노미 상태에 빠진다. 하지만 잠시 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이내 다른 길을 찾아내어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고,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운전이다.
자기주도학습도 처음에는 내 방이라는 공간에서, 널럴한 오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무슨 과목부터 어떤 방법으로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면 본인만의 방법을 찾아 본인의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목표를 향해 그저 묵묵하게 다가가기만 하면 된다. 엄마는 자녀가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게, 교통법규를 위반하지 않게 믿고 가면 된다. 자녀 대신 운전대를 잡아줄 필요도,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아줄 필요도 없다. 믿고 탑승하면 알아서 잘 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옆에 앉아서 졸면 수면파가 전해져서 운전자도 졸음운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동반자가 되어주어야 한다. 자녀의 이동에 날마다 돈 주고 택시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운전해서 어디든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고, 엄마는 승객이 아닌 협력자, 동반자가 되어 주라는 뜻이다.
딱 2년 전의 일이다. 아이가 6학년이었던 그 해의 10월 중순, 예술중학교 입학전형을 위해 3일 간 새벽부터 아이를 데리고 학교로 갔다. 교문 앞 수많은 학부모 차량들로 인한 극심한 정체를 예상해서 아이와 함께 러쉬아워 지하철을 타고, 긴장으로 차가워진 손을 호호 불면서 갔던 기억이 난다. 3일 간 학교 정문 앞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고 새롭기도 하고, 내가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날의 광경을 여태 잊지 못한다. 첫날에는 필기시험이기 때문에 무용하는 아이들만 마른 몸매나 헤어스타일 덕에 눈에 좀 띄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미술과 음악 하는 아이들이 섞여서 각자 공부했던 노트를 보며 중얼중얼 외우고 있었다. 2002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이래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만 12세, 아직 초등학생인 이 어린 아이들에게 입시라는 것이 얼마나 혹독한 전쟁이었을까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졌다.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아이마다 어느 전공을 준비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무용 지원 아이들은 타이즈를 입고 간간히 스트레칭을 하며 교문 앞에서 대기를 했고, 음악 지원 아이들은 자신의 악기를 들고 있거나 반주 선생님과 함께 있었다. 승합차가 와서 트렁크가 열리면 아이의 몸집보다 훨씬 큰 악기가 보이기도 했다. 우리 아들을 비롯한 미술 지원 아이들은 4B연필과 지우개, 물감 등을 넣은 아트키트를 손에 들고 부모님께 시험 전 마지막 격려를 받으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차가워진 손을 풀기 위해 핫팩을 감싸 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아이들의 상기된 얼굴만 봐도 얼마나 떨리고 긴장하고 있는지. 그 긴장이 나에게까지도 온전히 전해지는 듯했다.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신선한 충격은 부모님의 손에 억지로 끌려 온 듯한 아이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체능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시간 아껴서 실기에 매진하며,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아이 스스로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예술중학교 입학전형 날 정문 앞에서 긴장감 가득한 얼굴로 대기할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 아닌가. 노는 것이 가장 재미있을 초등학생 시기에 스스로의 목표를 정해 집중력 있게 몰입한 아이들, 스스로의 꿈을 붙잡고 달려온 아이들이 내 눈 앞에 이렇게나 많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내가 반드시 하고자 하는 꿈, 내가 정한 목표와 그것을 향한 나의 노력이 뚜렷할수록 나의 의지는 나를 자연스럽게 목표를 향해 이끌어준다.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주도하는 힘이 가진 선명한 특징인 것 같다.
요즘 AI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할 일이 점점 없어진다고 우려 섞인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있다. 난 이런 이야기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진다. AI가 발전하면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기는 했다. 대부분의 음식점에 키오스크가 설치되었고, 오프라인 마트보다는 마켓컬리나 쿠팡이 훨씬 편하다. 핸드폰만 하나 있으면 해외 직구도 단시간에 할 수 있으니, 인간이 나가서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일자리 자체는 거의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제부터 인간이 이런 단순 노동만 했다고 AI가 사람을 대신한다는 걱정을 할까? 인간은 원래 깊이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며 공감하는 존재로서 AI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글의 1장에서 언급했던 것을 상기하자면, 아이가 그린 동그라미 아래에 직선을 하나 붙여 그려서 ‘꽃’이라고 했을 때, 사람은 깊은 공감과 유연한 이해 능력으로 ‘예쁜 꽃’이라고 해줌으로써 ‘아이의 참’을 ‘진실한 참’으로 만들어 주었다. 만약 그 그림을 보고 AI가 ‘거짓이야. 그것은 꽃이 아니야.’라고 단정 지었다면 아이는 어떤 기분을 느끼고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을까?
AI가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지금을 기회 삼아 우리 인간은 인간 고유의 영역을 확장시키면 좋겠다.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가슴 깊이 공감하는 인간만의 능력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탐구하는 인간만의 매력으로 말이다. AI의 발전과 챗GPT의 등장, 또 어떤 신기한 기술이 나올지 모르는 우리의 가까운 미래. 앞으로 더욱 빠르게 변화할 시대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은 스스로 학습을 개척하고 주도하는 힘에서 나온다. 자기주도학습은 성적의 향상을 넘어 스스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힘을 길러주는 과정으로써 우리 사춘기 자녀들에게 장기적인 역량을 키워주고 누구보다 리더십 있게 성장하는 핵심적인 발판이 되어 줄 것이다. 맞벌이 부부라서 아이의 자기주도학습을 도울 여력이 없다거나, 사춘기 아이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차라리 학원을 선택한 케이스의 가정이라도 마음의 부담은 없었으면 좋겠다. 학원 보내고 과외시켜도 좋다. 그것도 부모가 자녀의 학업을 존중하고 지원하는 귀한 방법이다. 다만 자녀의 학습 상황에 늘 관심 가져주고, 결과가 아닌 과정 가운데 함께 하며, 가끔은 교과서도 함께 읽어보는 여유를 가져 보시기를 추천한다. 부모의 작은 관심이 자녀와의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주고, 나아가 자녀의 학업 성취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자기주도학습은 학습의 방법이기도 하지만 결국 인간이 자신의 삶을 이루는 성장 과정 중의 일부이기도 하다. 인생을 살면서 개인의 인격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학령기, 특히 사춘기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의 힘에 의한 수동적인 인생을 살 것인가, 내 인생을 내가 정한 목표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주체적으로 살 것인가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창의적으로 해결하며, 상황에 맞게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나가는 힘, 이 전부를 아우르는 자기주도학습이야말로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