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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hms Apr 11. 2021

운명은 찬란한 꽃을 피운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Beethoven - Symphony No. 5 in C minor, Op. 67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율리우스 슈미츠의 <산책하는 베토벤> 출처. Wien Museum


 1796년, 26세의 베토벤은 자신의 귀에 이상이 생긴 걸 감지하게 됩니다. 자신의 병을 숨기기 위해 사람들을 피하기도 했었죠. 음악가로서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 베토벤은 다양한 약초를 귀에 발라보거나, 배에 문질러보는 등 귓병을 고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병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베토벤의 주치의는 그에게 소음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요양을 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1802년, 빈 근교의 작은 도시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요양을 시작한 베토벤은 자신의 병에 대해 비관적인 상관에 사로잡혀 급기야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두 명의 동생들에게 유서를 작성하였죠.

 ‘세상과 단절된 채 외롭게 지내야 했다. 잘 안 들리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사람들에게 내 귀가 먹었으니 좀 더 크게 말해달라고 부탁할 수 없다는 사실도 괴롭다. 아, 다른 누구보다 더 완벽해야 할 청각에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출처. wienmuseum.at

 
 하지만 죽음을 생각했던 베토벤은 음악이 자신의 삶의 이유이고, 자신의 음악들을 다 만들기 전까지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베토벤은 일기에 ‘너의 감각이 절반 정도로 제한적이니, 오직 예술의 세계에서만 살도록 하자. 그것만이 너를 위한 유일한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남기며 다시 한번 음악에 대한 강인한 정신과 숭고한 이상향을 내비쳤습니다. 


 <운명> 교향곡의 첫 시작은 베토벤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따 따 따 딴-’로 시작하는 4개의 음표의 동기는 흔히 ‘운명 동기*’라고 불리고 있죠. 이는 베토벤의 제자이자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가 베토벤에게 ‘이 곡의 주제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베토벤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는 유명한 일화에서 시작된 이름입니다. 거짓이 가득한 쉰들러의 이야기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신뢰되지 않지만, 운명의 일화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쉰들러의 이야기보다 베토벤의 제자였던 ‘카를 체르니’가 말하는 일화를 믿곤 합니다. ‘그 작은 음형은 베토벤이 빈의 프라터 공원을 지날 때 들은 노랑 촉새의 노랫소리에서 나왔다.’  

 ‘운명 동기’라 불리는 4개의 음표의 이 음형은 전 악장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어 나타납니다. 동기는 더 큰 모습으로 확대되기도 하고, 더 작은 음가들로 축소되어 표현되기도 합니다. 또한 다양한 화성과 리듬으로 변화되죠. 베토벤은 작품의 통일성을 위해 이 동기를 전 악장에 사용하였으며, 이를 ‘순환 동기’라 부릅니다. 음악 속 ‘운명 동기’는 추진력과 더불어, 점차 거대한 구조로 전개되고 발전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 모습을 통해 치밀한 계획으로 음악을 작곡한 베토벤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죠. 또한 순환구조로 교향곡을 작곡한 최초의 인물이 베토벤이라는 것도 잊을 수 없습니다.

운명 동기와 운명 동기를 주고받는 현악기들. 


 단조로 시작하는 ‘운명’ 교향곡은 극적으로 장조로 변화되며 장대하게 승리를 맞이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음악은 고통과 두려움의 세 개의 악장을 지나, 모든 것을 해소하고 창대한 승리를 만끽하는 피날레로 찬란하게 꽃을 피우게 됩니다. 특히 베토벤은 마지막 악장에서 당시 교향곡에서 거의 쓰이지 않았던 피콜로와 트롬본, 콘트라 바순을 사용하여 피날레를 더 장대하게 표현하였죠. 

<운명>교향곡 마지막 악장에 쓰인 피콜로, 트롬본, 콘트라바순 / 출처. wikipedia


 이 곡을 들은 ‘괴테’는 이 곡의 풍부한 음향에 “굉장하군, 집이 무너질 것 같지 않는가?”라는 재밌는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또한 음악가이자 문학가인 E.T.A. 호프만은 1년 동안 이 곡을 연구한 후, ‘베토벤의 기악 작품은 우리에게 장엄하고 측량할 수 없는 영역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섬광이 밤의 어두움을 뚫고 나오고 우리는 동요하며 우리에게 점점 가까이 오는 거대한 그림자를 깨닫게 되는데, 이 그림자는 무한한 갈망의 고통을 제외하고 우리 안의 모든 감정을 파괴한다. (중략) 베토벤의 음악은 경외, 두려움, 공포, 고통의 감관을 움직이고 낭만주의의 본질인 무한한 갈망을 일깨운다.’라는 이야기를 남기며, 베토벤 음악이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이야기 남기기도 하였죠.

혹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신가요? 해결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일들에 대한 소망을 오늘의 운명 동기에 담아보세요. 점차 거대한 구조로 발전되는 모습을 따라가 보면, 곧 다가올 쾌감 가득한 승리의 감정과 함께 찬란히 꽃피는 순간을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동기(機) : 음악 형식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


https://youtu.be/NWWbA5H5pEs

정명훈 지휘, 원코리아오케스트라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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