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2번 3악장 '라 캄파넬라'
18세기 중엽부터 공공 연주회가 발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직접 연주회에서 연주자들의 연주를 즐기기 시작하였죠. 19세기 이후, 청중들은 음악 감상과 더불어,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기교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현란한 연주를 보여주는, 이른바 ‘비르투오소(Virtuoso)’라 불리는 연주자들의 초월적인 기교에 사람들은 열광하였죠. 특히 ‘악마의 바이올린’이라 불리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연주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파가니니는 이탈리아의 제노바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파가니니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지만, 음악을 좋아하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파가니니는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였죠.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파가니니는 당시 자신을 가르쳐주던 바이올린 선생님들의 실력까지 뛰어넘었다고 전해집니다. 11세부터 연주회를 열게 된 파가니니는 연주 여행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고, 20세가 되기 전 부와 명성을 다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자와 도박에 빠져 빚에 쫓기는 삶을 살기도 하였죠.
1801년, 도박 빚에 쫓겨 다니던 파가니니는 칩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쉬는 동안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을 손에 놓지 않았고, 새로운 연주 기법들을 개발하기 시작하였죠. 현에 손을 올려 배음으로 소리를 얻어내는 ‘하모닉스’와 둘 이상의 현을 동시에 누르는 ‘중음 기법’, 활의 탄성을 이용해 활을 현 위에 떨어뜨리면서 연주하는 ‘리코셰’ 등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다양한 표현들의 개발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칩거를 끝내고 다시 청중 앞에 나타난 파가니니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의 초월적인 연주 실력에 사람들 사이에서 ‘파가니니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죠. 그의 독특한 외모와 신들린 연주 모습에 사람들은 소문을 진실처럼 받아들였습니다. 나폴레옹의 여동생인 ‘엘리자 보나파르트’는 그의 연주를 듣고 실신하기도 했다고 전해지죠.
1828년 빈에서 열린 연주를 시작으로, 파가니니는 베를린과 독일, 폴란드, 프랑스, 런던 등 유럽 전역에서 성공적인 연주를 펼쳤습니다. 슈만과 멘델스존. 브람스. 쇼팽 등 당시 활동했던 작곡가들도 파가니니의 연주를 보기 위해 연주회장을 찾아가기도 하였죠. 특히 ‘프란츠 리스트’는 파가니니의 연주를 보고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아,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6개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베토벤과 멘델스존 등 바이올린 연주자를 위해 협주곡을 작곡한 다른 작곡가들과는 달리, 파가니니는 본인의 연주를 위해 협주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본인 말고는 연주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협주곡들은 어렵게 적혀있죠.
1827년 6월 26일 피렌체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이 발표되었습니다. 파가니니는 여러 연주회에서 이 곡을 고정 레퍼토리로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기교를 과시했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작은 종’이라 불리는 3악장 ‘라 캄파넬라’는 넓은 음역의 변화와 활의 도약, 이중 주법, 트릴, 리코셰 등 그의 협주곡 중에서도 어려운 테크닉으로 표현됩니다. 이 곡은 후에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크라이슬러’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곡으로 편곡하였고, ‘리스트’는 이 곡을 이용해 <파가니니 연습곡>을 작곡하였죠. 파가니니가 어떤 연주를 보였기에 ‘악마의 바이올린’이라는 얻게 되었을까요? 현란한 연주를 눈으로 감상해보시면서 파가니니의 생전 모습을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2번 3악장
https://youtu.be/zfn_DgmEavw
*크라이슬러 편곡 - 파가니니 라 캄파넬라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전악장
https://youtu.be/tLOciQwraZ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