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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Feb 13. 2016

자신감과 자만심의 경계

자기 PR 시대. 

당당한 사람은 매력적이고 자신감 있어 보인다. 그런데 또 너무 뻔뻔한 사람은 재수없다.

자기가 예쁜 줄 모르는 미녀는 호감인데, 지가 예쁜 줄 너무 잘 아는 미녀는 꼴 비기 싫다.

솔직히 자기가 이쁜데 어떻게 이쁜 줄 모르나. 거울도 있고 들리는 말도 있을 텐데.

또 우리는 잘난 사람을 닮고 친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너무 잘난 사람은 질투하고 시기한다.

호감을 줄 정도만큼 적당히 당당하고,  꼴 보기 싫을 정도로 너무 당당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문득,

자신감과 자만심의 경계는 어디일까ㅡ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이룬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자신감이고

'그걸  자랑으로 여기거나 지나치게 주제를 넘어서는 것'은 자만심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지나치다'는 기준은 뭘까.

주제를 넘는 것이 교만이라면 자기 자신의 주제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자기 스스로를 믿고 정당하게 자랑스러움을 느낀다는 것의 구체적인 기준은 뭘까.

축구선수 메시가 "전 정말 축구 하나는 끝내주게 하죠"라고 말한다면,

혹자는 "아~메시 축구는 잘하지만 은근  재수없어"라고 할 수 있지만 "메시 졸라 교만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짜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지나치다는 기준은 모두 주관적인데,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교만한 건가?

자신감이 넘치면 당연히 겸손해지기 힘든 것은 아닐까.

세상은 우리에게 자신감도 가지라고 하면서 겸손해지라고 하니 이건 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20대 후반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막내였던 나.

우리 회사의 바이어인 OO기업에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다.

당시 대기업에서 근무해본 경험이 없던 나는 OO기업과 같은 대기업에는 어떤 사람들과 어떤 회사 분위기가 있을까

약간의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갔다.

나는 8명의 TFT로 구성되어 있는 팀의 마지막 멤버로 들어가게 되었고

OO기업으로 출근한 첫날,

"안녕하세요. 미스박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모두들 환영해주는 분위기에서 키가 크고 도도하게 생긴 한 여자분이 뒤늦게 들어왔다.

바로 TFT의 팀장.

36세 세련된 외모의 그 팀장은 유명대학 박사까지 수료한 인텔리에 최연소로 팀장직을 겸임하고

특정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업계에서 꽤나 유명인사였다. 

"오잉? 누구??"

"네! 안녕하세요. OO기업에 3개월간 파견근무를 하게 된 미스박이라고 합니다"

"어~그래 앞으로 잘해보자고!!" 

그녀의  첫인상은 '자신감'이었다.

쿨하며, 자연스럽고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

잠깐이었지만 '저 사람은 참 자신감 있어 보인다'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일에 있어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내공도 갖고 있고, 프레젠테이션 능력도 탁월했으며, 

자신만의 특유한 자신감으로 일을 추진력 있게 해나가는  리더인 데다가

미소를 잃지 않고 유쾌한 스타일이라 팀원들 모두들 그녀를 좋아했다.

모든 부분에 있어 승승장구라는 단어와 참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일개 대리 나부랭이 었던 나는 그 팀장님을 존경하게 되었고, 

나도 열심히 경력을 쌓아서 저렇게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ㅡ생각을 했다.  

파견근무 3개월을 즐겁게 끝마치고 나는 복귀를 했고 시간이 흘러

나도 직장 5년 차의 슬슬 내공 풍기는 직장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대기업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좋은 포지션으로 이직하게 되었고 

업무에 대해 어느 정도 탄력이 붙은 나는 우리 부서에서 꽤나 일을 잘한다고 칭찬과 인정을 받았다.

심지어 회사 내부에서 시상하는 특별상까지 개인 수상하게 되는 등 주목을 받았다. 

대기업이다 보니 아웃소싱이 많아 외주를 주는 협력사들을 만날 일이 많았는데,

하루는 새롭게 일을 하게 된 협력사의 한 대표님과 킥오프 미팅을 했다.

미팅이 끝나고 그 대표님이 나에게 말했다. 

"박 과장님은 참 자신감이 넘치시는 것 같아요. 에너지가 넘치시네요" 

순간 나는 그때 그 팀장님을 떠올리며 어느덧 나도 나의 일에 대해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구나라는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미스박이라면 이 정도는 해낼 거야' '천하의 미스박이 그 정도도 못하겠어?' 식의

평판이  쌓일수록 나의 자신감은 점점 더 커져갔다.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이 느껴졌고, 그런 자신감은 용기와 에너지를 불어넣어주어

나의 업무 효율은 더더욱 가파르게 상승하는  듯했다.

맡은 프로젝트마다 종횡무진하며 척척 일을 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기업체의 대규모 콘서트 행사를 준비하면서

파트너사들 담당자들과 회의를 하게 되었다. 

A : 이번 행사 일자가 평일이다 보니 집객에 상당한 문제가 있을 거 같은데 좀 더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요?

B : 맞아요. 주말 집객률 산출기준과 달리 적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스박 : 후훗. 평일이지만 다음날이 연휴이기 때문에  문제없어요.

            그동안 연휴 전날 콘서트를 하면 매번 만석이었잖아요.

C : 그래도 날씨도 춥고 해서 한 번 짚어볼 문제는 있지 않을까요?

미스박 : 그러다 사람 너무 많이 와서 좌석 모자라면 어쩔 겁니까. 

             우리가 콘서트 한두 번 해본 사람들도 아니고 새삼스레 집객 가지고 문제 삼을 시간에

             공연 퀄리티나 좀 신경 쓰자고요

B : 음... 공연 퀄리티도 신경 써야 하긴 하는데...

C : 미스박님. 예상 집객 산출 한 번만 더 해보지요. 왠지 불길해요...

미스박 : 아니 C과장님 예감 가지고 일을 예측하나요? 걱정 마세요. 출연진 팬클럽도 있겠다 뭐가 문제예요

            우리 전문가 아닙니까??

A  :.................. 

내가 소위 갑(甲)의 입장에 있다 보니 좀 더 요구하고 주도하는 분위기로 회의가 끝이 나고

우리는 공연 퀄리티에 더욱 신경 쓰며 행사를 준비했다.

콘서트 당일, 약 3천 석의 좌석이 있는 콘서트 홀.

콘서트가 시작되는 7시 반이라면 일반적으로 3,4시부터는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해야 되는데

웬일인지 그날따라 사람들이 휑한 것이었다.

난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가슴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운영본부에서는 집객에 문제가 생겼다며 팬클럽에 빨리 연락하라는 무전이 시끄럽게 오기 시작했고,

스탭들은 당황하여 동분서주하며 현장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려 애썼지만,

결국 3천 석의 좌석에서 1천 석이 텅텅 빈 채로 행사가 끝났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주장했던 나의 의견이 틀렸던 것이다.

그때 함께 회의하며 집객 이슈를 제기했던 팀원들은 오히려 내가 민망할까 봐 좌석이 빈 것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지금에야 협력사 사장님들과 그 얘기를 웃으며 할 정도로 몇 년이나 지난 일이긴 하지만

그때 그 순간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은 아직도 나의 얼굴을 화끈하게 한다.

업무의 실패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심한 자신감에 빠져 남의 말을 무시해버린 나의 자만심이 화끈거린다. 

나는 그때 자신감과 자만심의 기준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남'을 대하는 태도였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자만심이 있는 사람은 남을 업신여긴다.

자신감은 내면에 존재하는 나 혼자만의 신념과 용기이기 때문에 남과 상관이 없다.

그러나 자만심은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상대적 평가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능력을 정말 믿기 때문에 오히려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

자만심이 강한 사람들은 큰 성취를 이루어도 남들이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을 경우 상실감을 겪는다. 

나는 기껏 몇 년의 직장생활을 통해 얻게 된 남들의 평가에 도취되어

진정한 자신감이 쌓인 것이 아니라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의 신념과 성실을 바탕으로 한 내적 요인이 아닌

오래가지 못할 외적 요인에 의해 우쭐해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자신감은 내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참  잘해!!라고 생각하는 평가나 

남들이 봤을 때 빛나는 쿨함이나 유쾌함이 아니다.

세상의 많은 어려움과 실패를 겪어봤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인내심과 노력으로 버텨낸 경험.

그 경험이 있기에 앞으로 겪을 나쁜 일들도 잘 극복할 수 있다는 용기와 믿음.

그것은 남들에게 티를 낼 필요도 없으며 우월함을 느끼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만심의 반대말이 겸손이고

자신감의 반대말은 열등감인 것이다. 

즉, 자신감이 있다고 해서 겸손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만하다고 해서 열등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밌지 않은가. 

이렇듯 자신감과 자만심은 근원과 결이 다른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감에서 자만심으로의 통제력을 종종 상실하곤 한다.

내가 처음에는 자신감에 열심히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주변의 칭찬과 평가에 휘둘려 자만심으로 변질된  것처럼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감과 자만심은 서로 카테고리는 다르지만  한 끗 차이다. 

진짜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들끼리 볼 기회가 많고, 그래서 세상에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 겸손하다고 한다. 


자신감과 겸손 세트.

어렵겠지만 나는 자신감과 겸손의 세트를 묶어가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묵묵히 나의 삶의 경험을 인정할 줄 아는 내면의 자신감

그리고 외적으로는 남의 의견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겸손. 

이것을 노력하면 지금보다는 괜찮은 사람이 될 것 같다. 

참!  그 36세의 자신감 넘치는 여자 팀장은 1년 전, 자신을 추종하던 몇몇 협력사로부터 로비를 받다가 발각되어 결국 잘렸다.

그렇게 쿨 해 보이던 그의 자신감도 진짜 자신감은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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