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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바쁜 세상, 바쁜 결혼

설 연휴를 앞둔 설레이는 오후,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전화 한 통이 왔다.

“제식아, 나야"

“흐흐, 오빠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럼, 오빠 왠일이야”

“너 얘기 들었어?”

“뭐?”

“민준이 결혼하는 거”

“결혼한다구? 누구랑?”

“몰라 나도 오늘 전화 받았는데, 이 녀석이 갑자기 2월에 결혼 한다네”

“아,,,그래? 나도 전혀 몰랐어..”

“웃겨 정말. 얼마 전에만 해도 상욱이가 소개팅 해주고 막 그랬거든.”

“그러게, 전혀 얘기 없던데”

“계속 선은 보긴 하는 것 같던데…그래도 너무 갑작스러운데, 뻥 아니야?”

“나도 뻥인 것 같아서 라마다 호텔에 전화해봤더니, 

  2월에 민준이 이름으로 웨딩 예약 되있더라 ㅋㅋ”

“아…그래?”

“뭐, 암튼 혹시나 너는 알고 있었나 싶어서 전화해봤어. 

  이번 주 토요일에 민준이랑 민준이 여자친구랑 만나기로 했어.

  이 녀석…형을 냅두고 먼저 결혼하다니..ㅎㅎ 넌 어때, 만나는 남자는 있고?”

“그럼, 고르는 중이야”

“와우, 멋진데? 언제 얼굴 한번 봐야지?”

“응, 그래. 한번 봐야지”

“1월 안에 보자. 전화할께!”

전화를 끊은 나는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6주 전에 양재동에서 술 한잔을 같이 했는데, 결혼 얘기는 전혀 없었다. 

3주 전에는 이전에 같이 갔던 양재동 술집 이름이 뭐냐는 카톡이 왔었고,

2주 전에는 내가 네이트온으로 월간 윤종신의 좋은 노래 한 곡을 주었다.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나는 여자나 결혼할 여자가 있다면 충분히 알만한 사이였는데..이상했다.

알고 보니, 한달 전쯤 선으로 만난 광양 여자란다.

12월에 선을 보고, 2월에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3월에 미국에 간다고 한다.

Is it possible?

얼마 전, 회사 후배가 내 자리로 와 얘기했다.

"선배, 저 프로포즈 받았어요 히히"

"뭐? 지난번 선 본 그남자?"

"네, ㅎㅎ"

"엥ㅡ얼마나 됐다고. 3개월도 안됐잖아"

"그렇긴 한데, 괜찮은 거 같아서 고민중이에요"

부모님 소개로 알게 된 중소기업 대표와 만난지 3개월 만에 프로포즈를 받았다고

자랑하며 해맑게 웃는 후배에게 더이상 할말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선수, 기아 타이거즈의 이용훈 선수가 탤런트와 3개월 만에 결혼하고,

연예인 현영이 4세 연상의 금융인과 교제를 인정한지 2주만에 결혼을 발표해서

'초스피드 결혼'이라는 뉴스기사는 사실 내막이 있겠지 하며 대수롭게 보지 않았지만

내 주변에서 이런 일을 목격하게 될 줄이야.

속도위반인가? 아님 첫눈에 반했나?

이러저러한 상황을 끼워 맞춰보며 이해를 해보려 해도 쉽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민준이와 논현동에서 조개탕에 소주한잔 하며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우리 아버지 계속 내 신부감 고르고 있어. 생각보다 우리 아버지 욕심 많으시더라...

내가 치과의사인데 외모도 나쁘지 않으니까 선자리가 많이 들어오긴 하는데..

처가 쪽에서 미국 유학비를 감당해줄 수 있는 데만 고르시더라구...”

술에 살짝 취해있던 나는 '뭐야, 요즘 시대에'라는 생각정도만 하고 소주 한잔을 입에 

털어 넣었는데, 그때 좀더 구체적으로 물어 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무지기로 소문난 후배에게 물어봤다.

“만난지 3개월 만에 결혼하는 건 어떤 상황이라 생각해?”

“뭐 3가지 이유가 아닐까?”

“3가지?”

“첫째, 집안끼리 서로 결혼을 아주 원한다.

  둘째, 서로 조건이 너무 잘맞다.

  셋째, 앞에 2가지가 충족이 되는데 상대방의 외모나 성격이 나쁘지 않은 정도다.

  이러면 결혼하는 거지 뭐." “그런가… 가능한가?”  

“언니, 왜이래 촌스럽게”

갑자기 내가 세상물정 모르는, 소위 헛똑똑이라 불리우는 닭이 되버린 느낌이었다..

정말 그런건가.

내가 현실을 너무 모르는 건가.

어느 정도 조건이 맞아야 행복하고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소개팅을 할 때에도 외모, 돈, 직장, 집안 등 몇 가지 일정하게 교환하는 정보들은 

정해져 있다.

“그 남자, OO은행 다녀, 집안에 돈이 많아”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 남자, 사람 되게 착해 좋아”라는 말은 이제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속물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나는 혼자 아닌 체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서른 둘이라는 여자 나이에, 서로 교감은 없지만 집안 좋고 돈 많고 외모 나쁘지 않은 남자라는 기회가 온다면?


나쁘지 않다. 사실 교감하려고 노력을 꽤나 할 것 같다.

만나다 보면 또 애정이라는 게 쌓이고, 노력하면 되니까.

열심히 재고 따져서 여러가지 측면에서 

나에게 좋은 사람을 반려자로 만나 행복하게 살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살아왔고 그렇기 때문에 그 수준에 맞는

조건의 사람을 만나고 싶은 일종의 보상심리도 100% 이해는 간다.


앞으로 30년을 함께 할 반려자를 3개월 만에 결정하든, 3년 만에 결정하든, 

3일만에 결정하든

그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언제 뜨거워지는지 모르는 냄비에서 수영을 하다 어느 순간 뜨거워진 물에서 

죽었다는 개구리처럼

한 평생 살면서 가장 가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잊은채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한국사회에서 결혼함에 있어

가장 먼저 거론되는 '조건'이라는 족쇄에 점점 얽매여 영혼을 잃어버리고 있는건 아닌지.


내가 노력해서 성취하고자 하는 용기보다

남의 덕 좀 보려는 꼼수와 물질만능에 휘둘리는 나약한 일부 사람들을 보며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부딪힐 세상의 위선에 무뎌질까봐 겁이 나기도 한다.

상류층이 아닌 난, 그들 세계만의 룰과 정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 밥먹여주냐고 콧방귀 끼며 돈과 명예를 조건으로

노예처럼 사람을 사고 파는 그들이 진정 상류(上類)인지. 

아직도 진실한 사랑이 최고라 믿으며 열심히 내 사랑 찾는 

내가 하류(下類)인건지.

그건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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