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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외로우신가요?

                                                                                                                                                                                                                                                                                                               

친구 <경>은 경상도 출신의 30대 중반 여자친구이다.

그녀는 대학을 서울로 오게되어 지방의 불알(?) 친구들과 점점 연락이 뜸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과대표를 하면서 사람을 좋하하고 리더십 있는 자신의 성격을 그런대로 충족시켰다.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친구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모임을 주기적으로 가졌고,

선후배간의 끈끈한 관계도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술자리. 저런 술자리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며 인맥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고향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친구들과 사람들이 생기긴 했지만

어릴적 나누었던 찐한 우정을 찾기가 어려웠다.

1, 2학년때야 부어라 마셔라 함께 어울리며 놀면서 으쌰으쌰했는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들이 바빠지는 것이다.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는 친구,

남자친구 생겼다고 얼굴도 보기 힘든 친구,

연락을 아예 끊어버리고 고시공부를 하러 들어간 친구,

일찍부터 취업준비를 하겠다며 공모전 찾아다니는 친구,

예전처럼 우루루 몰려다니던 무리에서 친구가 하나씩 사라졌다.

그냥 각자 바쁘겠거니...했지만 왠지모를 불안함을 느끼는 그녀.

그러던 그녀도 취업을 하게 되었고 사회생활하느라 친구만날 틈도 없었다.

바쁘고 척박하게 사회생활을 하던 어느 날,

늘 야근이 많았던 그녀는 모처럼 일찍 퇴근을 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친구와 술한잔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가장 가깝게 지내던 친구 서너명 중에 두명은 이미 결혼을 했고,

싱글인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나 남친이랑 제주도 왔는데??"

"나 엄마랑 백화점이야~ 담에 보자!!"

휴대폰을 바라보던 그녀.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할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결국 회사 선배랑 술한잔을 했지만 대화는 온갖 회사일에 대한 얘기뿐.

알싸하게 취한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털썩 앉아 생각해보았다.

수십명에게 둘러싸여 시끌벅적하게 놀던 그녀의 화려한 인맥은 모두 어디갔을까.

이 쓸쓸하고 외로운 기분은 뭘까..

샤워를 하고 취한 기분에 침대에 누웠는데 괜히 눈물이 주루룩 났다.

이후 그녀는 더욱 모임에 매달리게 되었다.

대학 과모임. 대학 동아리 모임. 대학 동기모임.

성당 모임. 재수학원 모임 등.. 

그녀는 동기들에게 우리 계모임이나 하는 건 어떨까 라며 제의를 했고

가까스로 계모임을 하기 시작했지만 결혼을 해서 멀리 이사를 가는 친구들은 하나둘씩

계모임을 못하겠다며 통보를 해왔고, 그녀가 나서서 매월 곗돈을 챙겨 돈 안넣은 사람에게 일일이

전화하는 것도 꽤나 수고스럽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게다가 모은 곗돈으로 분기별로 모임을 했는데 참석율은 50% 미만.

시간을 조율하고 또 조율해서 잡은 날짜인데도 그날 참석한 사람은 단 두명이었다.  

그녀는 그 쌓인 돈으로 친구와 고급 참치를 먹고 왔다.

고급참치를 먹었지마나 공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는 그녀.

그래도 아직 그녀는 부산. 대구 등 모임이 있으면 단 한번도 빼먹지 않고 

주말과 차비를 반납하고 모임으로 달려간다.

근대 유럽에서 처음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이로 인한 여러가지 영향중에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기계가 막 발달하고 공장이 세워지니까 거대한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사회는 급격하게 발전했지만

이로 인해 사람들의 정서가 많이 바뀌었다는 해석이다.

좁은 울타리 내에서 가능했던 혈연관계가 파괴되면서

집단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독립성을 주장할수록 개인은 소외되고 외톨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단다.

예를 들면 가문이나 마을은 개인에게 매우 중요한 조직이었고, 경우에 따라서 내가 질병을 앓거나

먹을 것이 없는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되면 한 동네 사람들이 함께 걱정하고 조금씩 도와주며 후원역할을 했단다.

정신적으로 기댈 곳이 있다는 사실로 사람들도 정서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산업 사회에서는 한 개인이 성공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에게 달렸고,

책임을 지는 것도 모두 나의 몫이 되면서 정신적인 중압감과 불안감이 급속도로 커진 것이다.

또한 이런 감정적 고립감과 개인주의 성향은 직업집단에 대한 지나친 집착 이나

학교 동창에 대한 관심 등으로 채워졌고, 때때로 권위주의적 집단이나 특정 개인에 대한 숭배 등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소속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나는 흥미로웠다.

소속되어 있는 회사에 대한 지나친 집착

현대와 같이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는 '스타의 시대'에서 그들에게 열광하는 사람들.

한번을 놓칠새라 동에번쩍 서에번쩍 모임을 챙겨 나가는 친구 <경>의 모습.

어쩌면 우리 모두 감정적으로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 모두 지독하게 외로운 것은 아닐까.

친구 <경>은 어쩌면 어릴적 자신이 경험했던 산업화 이전의, 

'아무리 바빠도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여

너를 위해 소주한잔 기울이겠노라 말해주는 의리'를 갈망하는 것은 아닐까.

나도 그랬다.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고 내가 서운함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몇 번의 장기 입원을 하면서 인간관계와 고독에 대해 깨달은 점이 하나 있어

그녀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우리는 어릴 적 친구를 위해 놀라운 배려와 희생을 발휘한다.

세상이 그리 심각하지가 않다. 

어릴 때에는 마음의 여유가 있기 때문에 남에게 충분히 나의 물질과 시간을 베푼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점점 자기 중심적으로 되어간다.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체감하고 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삶에 포커싱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지게 된다.

그러한 자기중심적 삶의 방향전환은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왜냐면 우리는 자기가 이 삶이라는 여행에서 잘 살아남고 잘 성장해야 친구와도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고

내가 일정한 외로움과 싸움하기도 하고, 치열하게 무언가를 노력하지 않으면

나의 삶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와 갖고 놀던 인형을 내려놓고

정들었던 무리에서 떠나기도 하며, 

매일 함께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나의 시간과 목표를 위해 때론 친구. 가족을 서운하게도 하는 것이다.

나를 외롭게 만드는 주변인들에게 서운해 할 필요 없다.

사람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있고,  

내가 그 사람의 평생의 경제적,정신적 책임을 져줄 것이 아니라면

그의 바쁨을 그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격려하고 존중해주어야 한다.

친구의 예전 생활을 생각하며 "새삼스레 너 답지 않게 왜 그러냐"라며 

발목을 붙잡는 건 좋은 행동이 아니다. 

남자친구가 없어 외롭거나..

혼자 서울에서 자취를 해서..

지금 내 옆에 가족이 없어 외로운가?

또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외로움에 징징대고 싶을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우린 누군가가 옆에 있어도 외롭다.

마음 속 뚫린 구멍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 구멍을 내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나의 구멍을 채워달라 구걸하며 쏟는 나의 시간과 열정을

내 삶을 돌아보는데 써보는 것은 어떨까.

말은 쉽지 않겠지만 내가 좀더 즐길 수 있는 것. 내가 목표로 하는 것.

내 삶을 좀더 개선할 수 있는 것에 몰두해보자.

그렇게 나의 삶에 집중을 하다보면 어느날,

친구에게서 전화한통이 올 것이다.

소주한잔 하자고.

그럴 때 나의 시간을 그 친구에게 선물하느냐. 나 자신에게 선물하느냐는 자신의 선택이며 

어떤 선택이든 그것은 삶이고 아름다울 뿐이다. 

얼마전 밑도 끝도 없이 지독히도 외로움에 치를 떨던 어느 불금.

거리에선 삼삼오오 술을 마시는 사람들. 옆집에서는 깔깔거리는 가족의 웃음소리,

나는 혼자 우수와 센치에 젖어 외로움을 심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날따라 친구들도 모두 바쁘거나 선약이 있던 상황.

결국 나는 외로워서 분당에 있는 가족들에게 갔다.

반가운 마음과 촉촉히 젖은 나의 마음에 찬물을 얹는 엄마의 잔소리, 정신 사나운 동생들, 개 짖는 소리..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집으로 와버린 내 모습이 기억난다.

한밤중에도 화려한 불빛이 감도는 이 곳 서울에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외롭다.

기억하자. 우리는 모두 외롭다.

외로움은 단지 주변의 사람을 더 아끼고 사랑하라고, 인류에게 내려진 가혹한 축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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