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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우울증 시대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깔깔거리며 웃던 소녀시절.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메고, 친구의 한마디에 배잡고 웃던 그 시절에는

내가 우울증에 걸릴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대학교 2학년 방학 때 용돈이라도 좀 벌자싶어 3살 적은 여동생의 친구<수민>의 수능과외를 해주게 되었다.

조증이 의심스러울 정도 까부는 내 동생과는 달리, 동생의 친구 <수민>의 첫 인상은 참 차분했다.

얼굴이 하얗고 눈이 큰 아이었는데, 그 나이 또래와는 달리 잘 웃지도 않는 무표정.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나 또한 활동적이고 무지하게 까부는 성격이었는데

그런 내가 아주 반갑게 "수민아~!!! 우리 수민이 잘 있었니?" 큰소리로 반갑게 집에 가도

그녀는 무거워보이는 눈꺼풀이 반쯤 감긴 채 무표정으로 "안녕하세요..."하며 맞이하곤 했다.

수업을 할 때에도 듣는 둥 마는 둥.

지금 생각해보면 좀 무섭기도 하지만 무슨 몽유병 환자인마냥 

눈꺼풀도 무거워보였고 왠만한 일에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또래 나이의 아이들에 비해 너무 무기력해뵈는 수민이 무슨 사정이 있나 싶어 

내 동생에게 물어보니 아무 생각없이 해맑게 얘기하는 내 동생.

 "아~ 수민이 걔 우울증 있어. 병원도 다니고 약 먹어 걔" 

 (빨리도 말한다 이년...ㅡㅡ;)

내가 수민이 집에 과외를 하러 갔을 때 항상 뵌 분은 어느 대학 교수라는 수민이 어머니였다.

수민이는 외동딸로 어머니와 단둘이 60평이 넘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수민이가 초딩때 아버지가 바람을 펴서 두 모녀를 버리고 가버렸단다.

충격을 받은 수민이 어머니는 자존심이 상해 이혼사실에 대해 인정을 못하다가 홧병이 나서

정신병원에 들락날락했었고 가끔 수민이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수민이가 학교도 잘 안나가고 밖으로 나돌자, 

딸까지 자신을 버리는건 아닌지. 엇나가는 건 아닌지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힌 수민이 엄마는 

수민이에게 개인 보디가드를 붙여놓았고 수민이는 고등학교 1학년때 그 보디가드를 남자로 보았단다.

둘이 잠까지 잔 사실이 밝혀지자 수민이 엄마는 그 보디가드를 해고했고,

마치 오빠처럼 때론 아빠처럼 의지했던 남자와 헤어지게 되자 그때부터 수민이는 우울증을 겪게 되었다.

ㅡ 왠 막장 드라마얘기..하겠지만 모두 사실이다. 

수민은 병원에 자주 갔다왔고 약을 먹는 중이라고는 했지만 과외를 하러 갈 때마다 줄어들지 않는 약봉투를 나는 자주 보았다.

그 이후로 수민은 내 동생의 권유로 교회를 나가게 되면서 많이 건강해졌다고 전해 들었다.

과외를 그만둔 뒤 1년 반만에 동생의 연주회에서 수민을 처음 봤는데 난 그녀가 웃는 모습을 그때 처음 봤다.

우리 엄마도 잠시지만 우울증에 힘들어했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하루종일 안방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화장대에 가서 거울을 보면서 한숨만 꺼져라 쉬기도 했다.

식탁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엉엉 울지를 않나

어느날은 나이에 안어울리는 어린 여자들이 입는 스타일의 옷을 

(예 : 한참 유행했던 엉덩이 글씨 새겨진 핑크색 트레이닝복. ㅡㅡ;) 입지를 않나.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면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지르거나 아예 대꾸를 하지도 않았다.

우린 "아 왜저래ㅡ"하면서 엄마의 변화를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더 큰 원인이었나보다.

자식들이 다 크고 학교니. 친구니. 일이니 바쁘며 남편도 바쁘니

집에만 있던 엄마는 자신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소싯적 자랑하던 미모도 온데간데 사라진 채 주름만 가득한 한 중년여성의 모습에  갑자기 모든 게 허무해진 것이다.

지금은 자신의 새로운 일을 하면서 우울증의 기미는 거의 사라진 듯하지만

그때 약까지 먹었다던 엄마의 뒤늦은 고백에 많이 미안해졌다.

내 친구 준이의 엄마의 우울증 때문에 요즘 가정의 평화가 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준은 치과의사로 아빠. 엄마. 여동생. 지ㅡ 이렇게 사이좋은 네 가족이 잘 살고 있는데

딱히 문제점이 없는데도 엄마가 우울증 때문에 몸까지 쇠약해지시고

가족들과 대화가 단절되면서 나머지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한다고 했다.

빨리 병원에 모시고 가야될 것 같은데 "정신병원에는 갈 수 없다!!" 라며 몸부림치는 엄마 때문에 준이는 많이 힘들어했다.

엄마들 뿐이 아니다.

나의 대학동기 원이의 아버지도 심한 우울증을 앓고 계신다.

젊을 때는 꽤 규모 있는 지방에서 활발한 활동으로 꽤나 이름 날리던 유명 인사이셨는데

원래 꿈이었던 화학연구원을 접고 쌀가게. 음식점을 전전하시다가

지금은 세남매 남부럽지 않게 키워놓았는데도 무언가 큰 상실감에 우울증을 앓고 계신다고 한다.

10년 넘게 치료를 받으시고, 약도 드시고 계신대도 원의 아버지는 차도없이 하루종일 집에 누워계신다고 한다.

우울증이 심하면 약간의 치매와 같은 증상처럼 말귀도 잘 못알아듣고 

손님이 방문하면 관심을 끌기 위해 갑자기 뒤로 쾅- 쓰러지는 것과 같이 어린아이처럼 행동하실 때도 있다고 한다.

원이는 자기가 어릴 적 든든하기만 했고, 때론 무섭기도 하던 그 큰 존재, 아버지가 이렇게 우울증을 겪으며

아파하시는 모습을 보니 우울증이라는 병이 정말 무섭구나ㅡ라는 말을 했다.

이력서의 자기소개란 가운데 자신의 장/단점을 쓰는 항목이 있다.

2007년 나는 이력서의 그 항목의 장점에 당당하게 이렇게 썼다. 

"저의 장점은 성격이 활발하고 긍정적이라 대인관계가 좋고 주변사람들을 유쾌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이력서를 내고 합격한 회사에 입사한지 딱 1년 만에 나는 우울증에 걸렸다.

우울증도 정도가 있기 때문에 내 상태가 심각한 치료의 상태라 함부러 말은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스스로 느꼈다. 내 성격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 추측으로는 직장생활에 대해 갖고 있던 엄청난 환상과 이상을 보기 좋게 와장창 깨줘버린 직장생활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칭찬은 커녕 맨날 혼이 나며 동기유발 전혀 안되는 상사의 지시.

개인생활과 주말이 없는 과도한 업무량, 

그런데 이것을 또 버티려고 참는 내 자신의 마음.

싫은 소리 듣기 싫어하는 유난히 자존심 강한 성격에 조금이라도 실수를 안하려는 완벽증과 조바심. 

그래도 버티자 버티자 하는 마음으로 있었는데 어느날 내가 담당한 전시회의 오픈 전날

이유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는 내 자신의 모습에 내가 더 당황했다. 

슬플 일이 없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는 나의 바보 같은 모습에 내가 더 화가 나 나는 병원 정신과로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항상 밝게 웃고 떠들던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 자취를 감추고, 

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신입사원의 사회생활 속 홍역을 심하게 치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우울증에 대한 자료들과 책을 많이 읽었다.

나는 우울증은 단순히 마음의 병이라고만 생각 했었다.

그래서 우울증 걸리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이고,

마음이 소심하며, 성격이 예민해서 그렇다ㅡ라고 치부해버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육체와 정신은 연결이 되어 있더라.

육체에 문제가 있으면 정신이 아프고, 정신에 이상이 있으면 육체에 신호가 온다.

물론 우울증은 마음의 부정적인 생각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대머리가 되는 것처럼 유전적인 이유도 있을 수 있고 

과도한 체력소진이나 수면부족 등으로 인해 육체의 밸런스가 깨워졌을 때 우울증을 유발하는 호르몬이

뇌에서 분비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전날 밤에는 남자친구한테 완전 빡이 쳐서 당장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가

한숨자고 다음날 일어나면 내가 왜그랬지. 별거 아닌데ㅡ하며 진정되는 행동이 설명이 된다.

참 재미있다.

정신으로 온갖 안좋은 생각을 하거나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몸에 해로운 물질을 분비해서 아픈 경우가 많고

(실제로 질병의 90%는 정신적인 문제라고 한다)

잠을 잘 못자거나 육체를 과도하게 무리시키면 나도 모르게 정신이 우울해지니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어찌 이리도 신비롭게 연결되어 있을까.

여튼 우울증은 꼭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무서운 건 본인이 우울증에 걸려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더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스스로 괜찮다 괜찮다 참기만 하다가 나중에 폭발하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처럼 여겨질까봐 쉬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 우울증을 경험해본 유경험자로써 제안하기를,

이렇게 생각해보는건 어떨까.

세상에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없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우울증 환자이다. 각자 정도의 차이일 뿐.

음악을 듣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운동을 통해서 우울한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가벼운 정도의 환자도 있고

특별한 상황 때문에 몸과 정신이 함께 녹다운되어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정도의 환자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넘어져서 무릎에 빨간약만 발라도 되는 사람이 있고

교통 사고가 나서 다리 깁스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넘어지거나 큰 사고가 나는 것이 각자의 잘못은 아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중요한건 자신이 교통 사고가 났는데 빨간 약을 처바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나중에 다리를 절단해야되는

극단의 상황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 때문에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의 경우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나.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의 우울함을 잘 살피고 신경써야 한다.

특히 우리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의 경우는 나 스스로를 잘 살펴야 한다.

일반적으로 내 몸과 내 정신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나도 잘 모르는 나의 몸 상태와 정신 상태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나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제 3의 사람인 것처럼 귀기울여 듣고 손을 써야 한다.

살다보면. 그리고 혼자 살다보면 더더욱 

생각이 많아져서 그렇기도 하고

외로움. 고독 등의 여러가지 감정 때문에 

강도 높은 우울증을 경험할 위험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마음이 괜찮은지. 너무 나 스스로를 몰아부치는건 아닌지. 아니면 너무 방관한건 아닌지

좋은 몸. 건강한 육체 만들기 못지않게 

나의 마음을 스스로 매니지먼트해야 한다. 

내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

내 마음의 탄력을 만들면 왠만한 일에도 우울하지 않고 호쾌하게 웃어 넘길 수 있다.

즉, 생각도 습관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일부러. 습관처럼 해놓으면 위기 상황에도 나의 생각 근육. 마음 탄력이 

'우울증 요요현상'을 불러오지 않는다.

이게 진정한 건강이다.

이 말도 귀에 안들어올 정도로 우울하다고??

그렇다면....

사람들은 차이가 조금씩 날 뿐 우울증을 모두 앓고 있으며

강한 우울증을 겪고 있는 당신은 머리가 너무 좋아서 그럴 수도 있다! 

(이건 책에서 읽음. 머리좋은 사람일수록 우울증 걸릴 확률 높다고.ㅋㅋ)

그러니 우울하다고 우울해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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