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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삶의 이유

                                                                                                                                                                                                                                                                                                                 

풋풋한 대학교 1학년때.

2000년도 여름방학이 끝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어느 날,

2학기 개강을 한지가 얼마 안되고 오랜만에 만난 동기. 선배들과 한참 술을 마시고 집에 와서

피아노 있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나.

동기놈 한명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마 새벽 4시경 정도였을 것이다.

비몽사몽에 전화를 받았고 보통 때 장난기가 심하던 녀석인데 목소리가 심상치가 않았다.

미스박 : ..여보세요...(해롱해롱)

동기놈 : 미스박... 놀라지 말고 잘 들어.

            기혁이가 어제밤에 죽었어. 

미스박 : 뭐??

동기놈 : 기혁이가 어제 하늘나라로 갔다고.

미스박 : ............

기혁이는 우리 동기 중의 한명이었고 종종 함께 술을 마시던 착하고 순진한 친구였다.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고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간 나는 눈물범벅이 된 친구들을 보았고

원래 기혁이가 간질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어제밤에 포장마차에서 우동을 먹다가 간질이 왔는데 기도가 막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죽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얘기를 들었다.

동기친구들은 꺼이꺼이 울고 있는데 나는 눈물이 나지가 않았다.

슬픈건지 놀란건지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상했다.

그냥 멍하니 장례식장에 앉아 친구들이 하는 얘기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기혁이는 우리를 떠나갔고 그 일이 내가 주변 사람의 죽음을 처음 경험한 일이다.

기혁이의 죽음은 한동안 친구들을 슬픔에 잠기게 했지만

시간은 또 흐르고.

사람들을 점점 그를 잊었고.

어느새 또 사람들은 술자리에서는 또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왜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이 나지 않았는지 계속 궁금했었다.

감정이 메마른건지. 그 친구와 쌓은 추억이 그닥 없어서인지.

그 이후로 다행스럽게 나는 주변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다.

부모님. 동생들 모두 다 건강하시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정정하셨으며

친구들은 어찌나 잘 사는지.

가끔 친구의 조부모님이나 부모님 장례식에 간 적은 있었지만 

정말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어떠한 마음일까하는 두려움은 늘 마음속에 숨겨두고 있었다.

어짜피 사람은 죽고 모두 헤어지게 되어있지만 

그저 나에게는 아주 멀고 먼 이야기 같았으니까.

그러던 2008년도. TV를 보는데 탤런트 최진실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났다.

게다가 자살이었기 때문에 꽤나 충격적인 사건으로 한동안 떠들썩했다.

연예인의 자살은 슬프게도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고, 대한민국이 사랑했던 한 여배우가 자살을 했다는 그 사건은 

그때까지만해도 나에게 그저 씁쓸한 감정까지였다.

그런데 2년 뒤 2010년도에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도 자살.

얼마전 최진실이 사망하고 나서 최진영이 그녀의 딸과 아들을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다큐멘터리를 보았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었고 안타까웠다.

그에게도 말못할 마음의 병이 컸구나..

그런데 작년 1월. 최진실의 전 남편이었던 야구선수 조성민의 자살 뉴스를 접했을 때 나는 공포감을 느꼈다.

 혹시 우리가 감기 바이러스가 옮듯이 

'자살'이라는 이 끔찍한 단어도 사람의 마음속에 전염병처럼 옮기는 것 아닐까..

그렇지 않고는 한 가족의 연이은 자살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여하튼 당시 조성민의 기사를 접하고 나서 나는 반사적으로 한 명의 친구를 떠올렸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 멤버 5명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친구인 정혜.

왜 그녀를 떠올렸냐면 그녀에게도 비슷한 아픔의 가족사가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 치열한 입시로 전쟁과 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어느날 밤.

정혜는 며칠동안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군대에 있는 하나뿐인 오빠가 자살했던 것이다.

정혜는 오빠와 각별한 사이었고, 명문대를 다니고 있던 오빠사진을 보여주며 종종 자랑을 하곤 했다.

그런 그녀의 오빠는 무엇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군복무 중 자살을 했다.

자살을 결심했어도 두려움이 있었던지 철로길에서 기차가 오는 소리가 무서워 담배꽁초로 귀를 막고 누웠다고 한다.

너무 끔찍한 일을 겪은 정혜를 위로해주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되기도 전, 졸업을 하고 각자 합격한 대학을 축하하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정혜의 엄마가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당시 나는 무서웠고, 공포스러웠다. 

마음이 어떨지 상상조차 안되는 그녀의 담담하려는 표정이 너무 가슴 아팠던 기억이 있다.

오빠와 엄마를 떠나보냈지만 정혜는 세상을 잘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열심히 알바해서 대학도 졸업하고 남자친구도 만나 잘 사귀고 

예전 원래 그녀의 모습처럼 명랑하고 푼수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각자 사는게 바쁘자 우리는 연락이 뜸하게 되었고

가끔 카톡으로만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조성민의 사망기사가 났을 때 나는 그녀를 떠올리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래도 괜찮겠지. 괜찮겠지.

워낙 밝은 아이니까 괜찮을꺼야.

정말 정혜이는 괜찮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남편은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스포츠맨인데 아주 다정한 사람이었다.

이제 새로운 가정을 꾸려 잘 살아가는 그녀가 대견했다.

만난지가 너무 오래됐는데 오랜만에 결혼한다고 꼭 와달라는 그녀의 전화에도

해외 출장때문에 정혜의 결혼식에 못가게 된 나는 미안한 마음에 점점 더 그녀와 멀어졌고

이후 5명의 멤버 중 한명과 크게 싸우면서 그 무리와도 서서히 멀어졌다.

그렇게 시간은 각자의 삶에서 흘렀다.

그녀를 본지 5년도 넘었다.

이번주 수요일.

치과예약이 있어 갔다오는 길에 그 5명 멤버 중 한명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다.

사실 그 무리와는 다들 소원해있던 터라, 미안했었는데

먼저 연락온 것이 참으로 반가워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보자마자 전화를 했다.

오랜만에 연락한게 최대한 어색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반갑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최대한 큰 목소리로 난, 

미스박 : 희정!!! 야!! 진짜 오랜만이다 잘살고 있었어?? 얼마만이냥 ㅋㅋㅋ

그런데 희정의 대답이 들리지가 않았다.

액정을 잘못 건들었나 싶어 화면을 봤는데 통화는 되고 있었다.

미스박 : 엥?? 여보세요? 희정아?

그런데 내가 그때 들은 건 희정이의 오열이었다.

말을 못하고 희정이는 꺽꺽 울기만 했다.

희정이가 아무말도 안했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느꼈다.

미스박 : 정혜...일이니?

희정 : 미스박.. 어떡해  정혜 이년이...

전화기 너머로 오열을 하는 친구는 말을 잇지 못했고

나는 정지상태가 되었다.

소름이 돋았고 온몸이 경직되었다.

한참만에 진정한 친구에게 들은 내용은

정혜가 산후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어젯밤 집에서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아기가 이제 6개월.

오후 4시쯤에 아이를 맡기고 장례식장으로 온다는 친구들.

그런데 나는 4시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나는 바로 경기도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갔다.

장례식장은 아주 작았고,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이 나가보이는 듯한 정혜의 남편.

영정사진은 정혜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었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몸이 파르르 떨렸고 조용히 있다가 밥도 안먹고 그냥 나왔다.

이번에도 눈물이 나지가 않았다.

슬픈데 눈물이 나지가 않았다.

설마설마 하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는 믿을 수 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병원 밖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결국 친구들의 얼굴도 보지 않은 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그 버스 안에서 나는 '죽음'을 생각해보았다.

인간이 신보다 위대한 한가지는 바로 '죽음'이라고 한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유한함 때문에 한정된 삶을 가치있게 살고 싶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왜 '자살'이라는 선택으로 죽음을 앞당기려는 사람이 있을까.

참 무섭고 생각도 하기 싫은 단어이긴 하지만

나는 그날 직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희정에게 들은바로는

정혜가 예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짜피 사람은 모두 빈손으로 죽고 사라지는데,

 뭐하러 이 삶이라는 것을 이토록 치열하게. 이렇게 아둥바둥. 뭔가를 노력하고. 행복해지려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공수래 공수거. 사람의 인생은 짧고 참으로 고통스럽다.

누가 그걸 모르나.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죽을 걸 알면서도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조건이나 목적이 있어야 행동 하지만

삶. 사는 것 그 자체에대한 이유와 목적은 정확하게 없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끊임없어 물어보고 그 진리를 탐구하려고

성인이나 종교인, 철학자 등이 되기도 한다.

나는 믿음이 신실한 종교인이거나 철학에 해박한 지식인도 아니지만

'산다'라는 것이 꽤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정확히 알고 있다.

존재만으로 나는 가족의 삶의 이유가 되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의 사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내가 있기 때문에 부모님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또 내 사랑하는 동생과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야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존재의 이유를 하나 없애버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의 이유다.

정혜는 남은 삶을 살아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의 삶의 이유가 되었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병들었는지 한번 돌아보지 못했던 나.

그깟 결혼식 못갔다고 연락을 미루다 결국 얼굴 한번 못본채 하늘로 보내버린

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뼈속 깊이 반성했다.

그녀의 남겨진 남편. 아이 또한 서로의 사는 이유가 되어 잘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참으로 밝고 사랑스러웠던 내 친구 정혜.

나중에 하늘에서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유에서라도 니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꼭 증명하기 위해

나는 내일도 

나를 사랑하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이 잘 살기 위해

감사하게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좋은 곳에서 가서 

꼭 나를 질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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