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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명절, 그리고 가족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어렸을 때 설날은 추석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즐거운 명절이었다.

세뱃돈을 받으니까.

빳빳한 신권으로 용돈을 받는 느낌이란...

엄마한테 맡겨두라고 하더니 결국 자취를 감춰버린 기억도 많지만. 

친척 오빠들과 윷놀이를 하며 스릴 넘치는 시간. 말 많은 고모 옆에 찰싹 붙어 방금 만든 전을 얻어먹는 맛.

가족들이 많아 북적거려 활기가 넘치고 연령대 별로 삼삼오오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어린 마음에 참 재미있기도 했던거 같다.

그런데 이제는 세배를 하고 용돈을 받기가 애매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즉, 사회생활을 하고 경제적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 

나이 지긋하신 조부모님. 점점 늙어가는 아빠 엄마에게 세배는 해도 세뱃돈 받기는 멋쩍다.

세배는 세배대로 하고 용돈은 우리가 챙겨드려야하는 나이.

까불어대는 어린 조카들이 세뱃돈 달라며 점프해서 방바닥에 대충 엎드리더니 돈 내놓으라고 난리다. 

어째든 명절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도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 한 해의 첫 명절을 함께 시작하고

떡국 한그릇 먹고 한살 더먹었다고 너스레 떨기엔 어른들이 결혼하라고 잔소리할까봐 겁난다.

요즘에는 명절의 긴 휴일을 이용해서 가족들끼리 해외여행을 가는 등 즐기는 부류도 꽤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명절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못봤던 가족. 친척들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음식을 해먹으며 티비에서 하는 온갖 특집 방송에 시선을 맡기기도 하고,

보통 때 자지도 않던 낮잠을 늘어지게 자는 그런 연휴이다.

시댁가서 빈둥대는 남편에게 독기를 품은 채 눈치보며 일을 거들어야 하는 며느리에게도 명절은 끔찍하겠지만

여기 명절이 끔찍한 몇몇의 사람들이 또 있다.

민아는 어릴 적부터 다소 시크한 스타일이었다.

그녀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가 이혼을 하고 3학년 무렵 '새엄마'라는 존재를 만나게 된다.

새엄마는 어린 민아에게 잘 해주는 편이었지만 당연히 자기 자식처럼 똑같이 하기는 힘든 법.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던 민아는 

"친엄마가 아니니까 이러는거야"라는 색안경을  최근까지도 벗을 수가 없었다.

원래 친엄마도 더 모질거나 심하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조금이라도 서운한 일이 있으면 "친엄마가 아니니까 저러지"라는

마음을 품은 채 그녀는 성장했고,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지금 내가 결혼할 나이가 되보니, 내가 미혼녀인데 애가 딸린 이혼남이랑 결혼하는 건 정말 대단한 선택인건 확실해.."라고

민아는 얘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새엄마' ....이제는 20년도 더 되어 새엄마가 아닌 '엄마'라고 부를법한데도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래서 민아는 명절이 되면 집에 가긴 했지만 하룻밤을 채 보내지도 않고 자신의 집으로 와버렸다.

새해 당일 느즈막히 가서 밥만 한끼 후다닥 먹고 용돈 적당하게 챙겨드리고 집으로 와선 근처 사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혼자 드러누워 미드만 주구장창 보던가.

건우는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는 36살 미혼남.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를 준비중에 있다.

생각보다 취업 준비기간은 오래되었고 그 동안 집안의 가세도 기울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업이 망하여 친척분의 도움을 받아 한 가방공장에 관리인으로 취직하여 주말없이 일을 하시며

건우에게 매달 100만원을 넘게 붙여주신다.

월급의 3분의 1을 건우에게 붙여주시지만 그가 취업하기를 마음속으로 소원하며 열심히 일을 하시는 것이다.

이번 명절에 언제 내려올거냐는 아버지의 카톡에 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최종시험에서 떨어진 걸 아직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수는 1남 2녀의 맏딸이다.

그녀는 어릴 적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악바리같이 살아왔다.

알바란 알바는 다하며 대학 등록금까지 스스로 해결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재작년에 엄마가 집안을 일으킬 마지막 기회라며 그녀 이름으로 대출을 받았는데

그만 실패를 하고 말았고 지수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압류되는 일을 겪었다.

통장도 압류되어 계좌이체가 되지를 않아 전화통을 붙들고 울고 불고 했던 기억이 난다.

어찌어찌해서 그녀의 퇴직금으로 일부를 때우고, 그녀는 직장을 옮겨 남은 대출금을 매달 조금씩

빠듯하게 갚아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전에 엄마가 또 전화가 왔다. 남동생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는데 돈 좀 꿔줄수 없냐고.

지수는 폭발했고 단 하나뿐인 엄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가족간의 연을 끊자는 말까지 하며 격분했다.

엄마는 울먹이며 동생 위해서 하는 일인데 이럴수 있냐며 지수에게 '이기적인 년'이라고 했고,

지수는 구정때 집으로 갈 KTX 티켓을 취소했다.

명절이 되면 다른 때보다 서울은 더욱 한적해진다.

거리에 넘치던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고 시끄럽던 자동차소리도 잠잠하다.

줄을 서있던 택시도 거의 보이지 않고 옆집의 재잘대는 소리도 안들린다.

매일 배달시켜먹던 한식집도 전화를 안받고, 집앞 커피숍도 문을 닫는다.

북적이던 도시는 많이 조용해진다.

우리가 명절마다 매력적인 장기휴가를 활용해서 교통체증을 극복하고 만나려는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마더 테레사는

ㅡ 사랑은 사장 가까운 사람, 가족을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라고 말했고,

H.G 웰스는

ㅡ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만약 그런 가정과 가족이 더 고달프고, 괴로움의 시작점이라면 어떨까.

내 생활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가족 때문에,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거나

내가 충분한 무언가를 주지 못하는 죄책감때문에 마음이 어두워지는 이유라면...?

물론 완벽한 가정도 없고, 서로 의지와 힘이 되어 화목하게 잘 지내는 가족도 셀수 없이 많다.

하지만 나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한다는 이유를 앞세워 서로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또한 가깝지 않는 친구에게 털어놓을 만한 것도 가족들에게 이야기하거나 의지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때로는 잘알지 못하는 사람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들 때문에 골치가 아픈 경우가 있다.

특히 우리는 부모님을 사랑하면서도 부모님과의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나는 아주 어릴때 받았던 상처들과 억울한 일에 대하여 아직까지 마음을 풀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있겠고, 부모를 사랑하는 자식이 어디있겠냐마는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외부적인 상황에 따라 우리는 떠밀려가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그 과정 속에서 서로에게 씻기 힘든 상처를 많이 주고 받는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참고 인내하고, 이해하는 척 모르는척 넘길 때가 많다.

나는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더 잘알고 아낄수록 이기적으로 행동할까.

우리는 어려운 사람에게 잘 부탁하지도 못하고 막 행동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친한 사람들에게는 쉽게 행동한다.

가족 뿐만 아니라 친구도 친한 친구한테 좀더 막 할 수 있고, 

회사에서도 거리가 있거나 까칠한 동료는 어려워하며 심지어 비위를 맞춰주려고 노력하기까지 한다.

그러면 우리는 '가깝고 편한 사람'이 되어 상처받아 너덜너덜해지기보다는

'어렵더라도 까칠한 사람'이 되어 피해를 받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일까?

'가족'이란 가장 기본적인 조직으로, 앞으로 만나게 될 이러한 사회의 생리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진 예고편인걸까? 

아니면 나에게 주어진 면죄부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유토피아인 것일까.

작년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5만원 주고 산 가방이 있고

명품샵에서 70만원 주고 산 가방이 있다.

그런데 1년이 넘도록 나는 5만원짜리 가방을 더 자주 쓰고 있었다.

5만원짜리 가방은 고기집에 가서도 바닥에 턱턱 편하게 내려놓고 험하게 쓰고 있었다.

왜그랬을까 생각해보니 더 만만하고 편했기 때문이다.

명품가방은 특별한 날에만 매기위해 애지중지하며 고이 모셔놨더란 말이다.

가방 하나에도 우리는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애지중지하는데 

하물며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족의 소중함은 왜 모른채 5만원짜리 가방 취급하듯이 할까.

만만하고 편하기 때문일까.

가족을 어렵게 대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 가치를 알았으면 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나의 하나뿐인 가족들.

가족이 없는 자의 아픔을 알고 가족이 있음에 감사할 줄 알기를. 

그리고 너무 큰 것을 주려는 욕심으로 얼굴도 보기 힘든 사람이 되지 않기를. 

만만하게만 생각해서 이것저것 요구하거나 뭐라도 하나 얻어먹을 생각만 하지말기를. 

편하다고 막말하고 내 감정을 화풀이하지 않기를.

서로 간의 매너와 배려는 지키기를.

조건 없이 서로 위로해줄 수 있기를.

가족은 조건없이 존재만으로 감사하고 위로하며 사랑해야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럴 수 있는 존재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모른척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명절이란 명품가방을 고이 모셔놨다가 그 가치를 자랑하고 표현할 수 있는 그 특별한 날이 아닐까.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지 못하는. 또는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여.

그들의 마음 속의 명절은 더더욱 큰 외로움과 서글픔으로 사무칠 것이다.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는 말라.

지금 고독하게 보내는 이 시간은 ㅡ 가족이란 조건없이 존재만으로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ㅡ을 깨닫고

내가 가족을 만들었을 때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지혜를 쌓는 시간일 뿐이다.

며칠전 일본의 혐한 시위기사를 보고 서운한 마음은 가득 들지만,

그래도 일본의 한 사상가가 한 말을 아니 쓸수가 없다.

가정은 행복을 저축하는 곳이지 캐내는 곳이 아니다. 

얻기 위해서만 이루어진 가정은 반드시 무너지고, 주기 위해 이루어진 가정은 행복하게 된다. - 우치무라 간조 

모두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더욱 사랑을 표현하고 배려하는 행복한 구정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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