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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바람아 멈추어 다오

                                                                                                                       

성수는 키도 훤칠하고 눈웃음이 매력적인 32세 안동 남자.

그는 유머러스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에 여자들에게 꽤 인기가 많았고

그러던 어느 날 대학동기와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동기놈의 새 여자친구가 함께 데려온 한 여성에게 꽂히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윤경.

윤경과 전화번호를 주고 받은 성수는 매일밤 그녀와 통화했고 가끔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먹고, 그러다 잠까지 자게 되었다.

그렇게 2개월 정도를 행복감에 젖어있던 윤경이 어느 날 씩씩대며 전화가 왔다.

윤경 : 아 글쎄. 알고 봤더니 걔 여자친구가 있었더라구. 참내.그것도 7년이나 사귄!!

         고향 안동에서 사귄 여친인데 심지어 결혼까지 생각해서 성수따라 서울까지 와있고 

         아 열받어!!!

윤경은 원래 페북을 안했었는데 회사 일로 억지로 가입을 하게 되었고

성수의 페북에 가보니 자신의 이야기나 관계에 대한 전혀 언급하지도 않은 채

자신과 함께 갔던 레스토랑, 펜션 등을 마치 친구와 간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글을 올린 것을 본 것이다.

촉이 이상했던 윤경은 성수의 노트북을 뒤지다 여자친구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고

추궁 끝에 7년동안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결국 윤경은 성수에게 이별을 통보했고 성수는 예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있던 참이었다며 윤경에게 매달렸다.

수정은 31세 직장인 여성.

남자친구 경수와 사귄지 2년이 되었는데 둘다 다혈질이라 하루가 멀다하고 싸웠다.

극단적인 면이 있었던 그들은 싸울 때마다 "헤어져!!" 해놓고 금새 또 화해를 하는 사이.

그러던 어느 금요일.

수정은 그녀의 집에서 경수와 달달한 밤을 함께 보낸 후 피곤에 쩔어 잠에 일찍 들었는데

새벽 3시. 경수가 자고 있는 그녀를 깨웠다.

경수 : 너...정말 안되겠구나. 진짜 쓰레기같이 사는 구나.

수정은 자다 일어나 눈을 비비적거리며 경황이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책상 위 노트북 속 일기 파일이 열려있고 그 옆에서 남자친구인 경수가 담배를 연속으로 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기 속에는 그녀가 어떤 남자와 잠을 잤고 그때 기분이 어땠으며 등등 디테일한 19금이 모조리 들어있는 파일.

순간 당황과 분노 사이 어디쯤인지 모를 곳에서 그녀는 벙 찐 채로 노트북을 응시하였고

남자친구 경수는 그녀를 벌레 쳐다보듯 바라보았다.

후에 그녀는 그것들은 모두 경수와 싸워 헤어져있을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경수는 그게 무슨 헤어져있는 상황이었냐. 싸워서 연락안하는 상황이었지라며 윽박질렀고

아무리 그래도 홧김에 그렇게 아무 남자와 자는 여자와 더이상 만날 수 없다며 상처줄 수 있는 모든 말은 다 한채

그녀를 떠나버렸다.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앤디오빠와 만나 술한잔을 하는데 한 얘기를 들었다.

자기 사무실에 아주 친한 동료가 있는데 어느날 아주 심각한 얼굴로 둘이 술을 먹자고 했다는 것이다.

얘가 회사를 관두려나. 돈을 빌리려나. 했는데

술을 급하게 먹던 동료의 고민은 다름아닌 와이프의 바람이었다.

둘 사이에는 6살 난 예쁜 딸이 있었고 둘은 맞벌이 부부.

동료의 누나가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앤디도 한번 와이프를 본 적이 있는데 장례식장에서 펑펑 울며

남편을 위로하던 청초한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 난다고 한다.

어째든 앤디오빠의 동료 왈,

작년 말인가부터 와이프가 칼퇴하는 직업인데도 불구하고 퇴근을 늦게 하고

딸래미는 근처 언니 집에 늘 맡겨두고 술 취해서 들어오는 일이 많아져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다 엊그제 이 남자가 와이프에게 전화를 해보니 딸과 함께 집에 있다ㅡ라고 해서 큰 의심없다가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일찍 퇴근해 집에 가보니 와이프는 없고 

집에 덩그러니 딸래미 혼자 있드라는 것.

눈알이 뒤집힌 남자는 와이프에게 전화를 했는데 

술에 꽐라가 된 와이프 왈 

ㅡ OO씨~ 지금 어디야? 나 지금 OO씨랑 같이 있고 싶어. 

오늘도 같이 자고 싶어. 일로 오면 안돼?ㅡ라며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부르더라는 것.

다음날 와이프를 추궁해도 OO는 친구일 뿐이고 아무일 없었다. 

니가 잘못 들은거 아니냐며 발뺌.

남자는 그러고보니 작년말부터 와이프가 

헬스장 트레이너와 과하게 카톡을 주고 받는 것과

헬스장이 종료하는 밤 12시에 맞춰 10시 반쯤 운동을 하러 간다고 했다가 

술에 취해 3.4시에 들어오는 사실들이 주마등 같이 지나갔다.

나는 궁금했다.

상대방이 바람을 핀 것을 과연. 정말. 리얼리 우리는 용서할 수 있을까.

여자든 남자든 상대방의 외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여자친구들과 이런 질문을 많이 주고 받았던 것 같다.

"만얀 결혼했는데 남편이 바람 피면 어떻게 할거 같니?"

ㅡ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맞바람 피면 되지 

ㅡ 딱 한번은 용서해줄수 있을 거 같은데..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잖아.

ㅡ 모른척 하고 있다가 현장 잡아서 위자료 왕창 뜯어내고 이혼이야

ㅡ 아이가 있으면 또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만큼 끔찍한 경험이겠지만 누구나 다 한번씩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내 주변에 바람을 폈다가 용서받은 이도 있고 용서를 받지 못한 이도 있으며

용서를 한다 말은 했으나 서로를 계속 괴롭히는 불행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봤다.

용서를 한다는 것은 정말 이 사람의 죄를 다시는 들추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았다.

잊기는 힘들겠지만 그것을 자신의 보상심리로 이용한다거나 

계속 쑤셔댄다거나 한다면 더 최악의 결과를 이끌어오는 것을 많이 보았다.

용서라는 것은 그 어떤 죄악도 인간으로서의 연민을 가지고 덮어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더 큰 그릇과 사랑으로 용서하려면 진정으로 큰 노력과 용기가 필요한 듯 하다.

왠만한 사람은 힘들어 보였다.

실수를 한 사람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한 사람도 진심으로 용서하여 뒤를 돌아보면 안되는 듯 하다.

얼마전 친구가 커피숍에서 얘기해 준 예전가수 클론의 강원래 얘기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와이프 김송이 한 교회에서 간증을 한 이야기.

강원래가 결혼 전에도 그렇게 여성 편력을 보여 김송의 속을 뒤집어 놓았지만

강원래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이후에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하는 마음으로 결혼했다고 한다.

그런데 장애인이 되고 나서도 김송의 절친을 집으로 불러들여 성관계를 했다는 것. ㅡㅡ;

-너 때문에 내 인생 포기하고 네 똥 치워주고 살았는데 어떻게 그럴수 있냐-며 고액의 위자료를 청구하여 이혼을 요구했다고 했지만

어째든 그녀는 또 한번 그를 용서하고 아직까지 함께 살고 있다.

이 정도로 정신병이 있어 보이는 케이스를 제외하면 

현재 짝과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이 사람과의 관계가 자신이 없을 때.

또는 큰 충격이나 술로 인한 순간적인 충동. 더 매력적인 상대의 감정적, 육체적 유혹 등등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래서 바람을 핀 사람의 피해자는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고 상처를 크게 받는다.

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가 바람을 폈더니 그 이후로 어머니가 화장. 옷 등에 대하여 급격하게 관심을 보이며

외모치장에 미친듯이 집착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관계에 있어 상대방을 두고 바람을 핀다는 것은

참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희한한 것은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이 남에게 상처를 쉽게 준다는 것이다.

마치 부모님에게 폭력을 당한 아이가 밖에 나가서 친구를 쉽게 때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바람을 핀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이 상처투성인 나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가 더 있다.

바람을 핀다는 것은 남보다도 나 자신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 상처를 치유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바람을 핀 사람은 그 사실을 평생 가지고 간다.

자신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며

남을 속이고 상처 준 사람이며

자신이 상처받을까봐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기억이 뇌 속에 평생 남는다.

그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스스로 한 선택이 비열했다는 것.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나의 기억 속에 인식으로 박히게 된다.

그래서 내가 남에게 한 것처럼 누군가 나에게 그럴까봐 노심초사하게 된다.

결국 나 스스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고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된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하기가 힘들다.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생겼다 하더라도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과의 약속. 의리. 상식을 지키는 것이 옳은 일이고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한다.

사람은 본능에 따르는 - 동물- 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 - 사람- 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믿고 좋아하는 - 사람-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위해서.

우리는 

선선하게 부는 바람이든

미친듯이 부는 바람이든

멈추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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