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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속궁합

                                                                                                                                                                                                                                                

며칠 전 , 이전 회사에서 친했던 '정애선배' 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사냐. 어떻게 지내냐. 안부를 묻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의 나이는 36세.

2년 정도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양가간의 트러블도 큰 문제였고 

그 둘도 성격적으로 자주 부딪히는 면이 많았다고 한다.

둘은 싸우거나해서가 아니라 연애는 하더라도 결혼을 하기에는 서로 맞지 않다라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 좋은 사람 만나자라고 얘기하며 끝을 냈다고 한다.

몇달이 지나자 그녀는 소개팅도 하고 다른 남자도 열심히 만나보았는데 3년 사귄 남자친구가 아직도 자꾸 생각이 난다고 한다.

미스박ㅡ 자꾸 생각이 나는 거면 미련이 남은거 아닐까요?

             다시 만나보는 건 어때요.

정애ㅡ (단호하게) 아니. 걔랑은 결혼할 마음 전혀 없어.

          둘이 정말 안맞고 걔랑 나랑 만나면 행복하지가 않아.

미스박ㅡ 근데 왜 생각이 나는 걸까요?

정애ㅡ 사실..걔랑 속궁합 하나는 정말 잘 맞았거든.

          감정적으로는 전혀 미련 없는데, 가끔 속궁합 잘 맞았던게 떠오르는거지.

          좀 민망한 얘기긴 하지만 속궁합 잘 맞았던게 이렇게 미련으로 남을지는 나도 몰랐다.

          그 정도로 잘 맞는 남자는 앞으로도 못만날거 같기도 하고..

속궁합.

나는 궁금했다.

감정이 없이도 속궁합은 좋을 수 있는 것일까.

정애선배처럼 속궁합은 너무 좋은데 다른 것들이 맞지 않는다면 헤어져야 하는 것일까.

반대로 다른 것들이 너무 잘 맞는데 속궁합이 최악이라면 헤어져야 하는 것일까.

속궁합이라는 것은 우주의 미스테리나 운명처럼 정해져있는 것일까.

아니면 서로 맞춰갈 수 있는 것일까.

속궁합은 관계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아라'는 32세 직장여성.

'아라'는 이직을 하느라 새로운 회사에 면접을 보러갔고 거기서 본 인사팀 직원남자에게 살짝 호감을 느꼈다.

'음...괜찮네..'정도.

'아라'는 결국 그 회사에 최종합격을 했고, 출근한지 3일째 되는 날 '아라'의 입사를 축하하기 위한 회식자리.

면접 때 본 직원남자도 함께 있었다.

단체 회식때 주는 술을 다 받아마셔 취한 '아라'는 술용기가 생겨 그 남자직원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며

따로 한잔을 더 하자고 했고, 결국 그날 '아라'는 그 남자직원과 본지 3일째 되는 날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아라' 말로는 자기가 경험한 것 중 손꼽을 정도로 좋았다고 한다.

술 먹고 즉흥적으로 한 실수이긴 했지만 그 날 이후 '아라'는 그 남자직원이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더욱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한다면 그때 너무 좋았던 속궁합의 기억때문에 그 남자의 다른 면들도 다 괜찮아보였다고 한다.

'민수'는 28세 여성.

그녀는 우선 감정적으로 좋아지고, 친밀도가 있어야 섹스도 좋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오래 사귀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안정감이 들어야 섹스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섹스가 육체적으로는 그다지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남자친구가 하고 싶어하니까 하긴 하는데

빨리 끝냈으면 좋겠고 때론 아프기도 했다.

껴안고 만지는 따뜻한 스킨십 자체는 즐겼으나 섹스 자체를 통한 쾌락은 알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민수'는 시간이 지나 어떠한 이유로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고 

싱글녀로 배회하던 어느 날.

친구들과 나이트에 가서 씐나게 놀다가 부킹한 남자와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고 

그녀 인생 처음으로 원나잇을 했는데

그때 그녀는 처음 오르가즘을 느꼈다고 한다.

솔직한 성격의 '우영'은 남자친구와 처음에 속궁합이 너무 맞지 않아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남자의 유머와 배려심이 좋아 계속 만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남자친구와도 점점 가까워지자 

섹스를 할 때 솔직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를 시도하기를 원하는 그녀 때문에 처음에는 남자친구가 버거워하는 듯 보였으나 ㅋㅋ

결국 그들은 노력을 했다.

남자친구와 속궁합이 안맞다며 툴툴거리던 우영이 최근에 한 말은

"남자친구는 관계를 가질 때 나 스스로를 되게 섹시하게 느끼게 해줘. 이힛" 

남자 동기 놈이 언젠가 한 말이 기억난다.

"감정은 끝내기 힘들지만,  몸정은 끝내기 더 힘들다"

인간은 아마도 동물적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육체적인 쾌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래서 우리도 속궁합. 속궁합. 하나보다.

그런데 그 속궁합이 단순히, 둘 중 하나가 대단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문제만은 아닌거 같다.

경험이 많고 화려한(?) 기술을 가진 사람과 잔다고 해서 아주 좋거나 그걸 속궁합이 맞다ㅡ라고 하지는 않는다.

여자와 남자가 느끼는 만족감의 요인이 다를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육체적 매력과 스킬이 중요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감정과 친밀감이 중요하다.

사람마다 속궁합의 조건이 다 다른 것이다.

때로는 익숙함에 안주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술이 떡이 되서 에라이~하고 자는게 아니라면

맨정신에 어떤 남자와 관계를 가진다는 상상을 해보면

사람은 참 좋은데, 그 사람의 알몸을 상상했을 때 입맛이 확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또 한편으로 몸매에 아주 자신감이 있는 케이스가 아니라면 새로운 사람에게 내 몸을 보이고 만지게 하는 것이

두렵고 싫을 때도 있다. 그래서 이미 내 몸을 보고 익숙한 사람과 지속하고 싶은 정서가 엮어있는 걸수도 있다.

육체가 잘 맞다보니 감정이 발전한 '아라'처럼

감정이 좋다보니 육체가 발전한 '우영'처럼

때론 순수한 육체적 쾌락을 마주한 '민수'처럼

속궁합은 감정과 함께 

때론 감정과는 상관없이 

우리를 감정적인 인간으로. 때론 본능적인 동물로 만드나보다.

그러나 나는

이성과 감성처럼

육체는 영혼과 100%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속궁합은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그것이 다라고 볼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생식기관을 가진 육체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영혼이 분리된 사람은 죽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재미가 있는 것이다.

속궁합에서 '속'을 뺀 궁합은 영어로 marital compatibility.

즉, 공존가능성. 호환성이다.

파트너와의 육체적 공존. 육체적 호환성.

그야말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정신적 공존.

무엇이 몇대 몇의 비율로 중요한지는 각자의 몫인 것 같다.

속궁합.

육체적인 호환성.

이렇게 고도로 IT 기술이 발전하여 온갖 디바이스의 호환성이 가능한 이 시대를 보며

모든 것에는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는 야한 희망을 다시 한번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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