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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기 센 여자들의 함정

                                                                                                                                                                                                                                                                                                                 

며칠 전 회사 선배들과 모임을 가졌다.

그 중에 개인적으로 아주 친하지는 않지만

종종 모임에서 함께 보는 철수 선배.

그는 39세. 유명 럭셔리 브랜드 마케팅팀 팀장.

꽤 오랜 기간 여자친구가 없었던 그는 

곧 불혹의 나이를 맞아 초조했던지

여자 후배들에게 질문공세가 이어진다.

 

철수 : 여자인 너네가 봤을 때 어떤 점이 문제인지

          솔직하게 얘기해 줄래?

          소개팅으로 만나서 사귀게 되더라도

          오래가지를 못해..

여후배 1 : 어우 오빠 알아서 해요. 

누가 누굴 평가해ㅎㅎ

철수 : 에이 그러지말구 말해줘. 

여자들의 시각이 필요하다니까??

여후배 2 : 음..정말 솔직하게 말해줘요? ㅋㅋ

철수 : 응..허심탄회하게. 문제진단이 필요해

여후배 2 : 뭐 제 말이 정답은 아니지만...

여자들이 보통 키작고 뚱뚱한 남자 안좋아해요

(솔직한 년...ㅋㅋ 

 이때부터 철수는 이미 표정관리 안됨)

 

여후배 3 : 보편적으로 그렇긴 하죠.

오빤 외모로 매력 어필하면 안돼~

여후배 1 : 맞아맞아.

여자들이 다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선배 성격이나 인품, 매력으로 어필해야죠

철수 : 후우....그래. 그건 인정!!

여후배 2 : 그리고 이건 추가 팁인데..

스타일도 좀 바꿔보는게 어때요?

여후배 1: 맞어맞어. 

선배가 키가 작아도 풍채가 있으니까

옷도 깔끔하게 입으면 괜찮을꺼에요

철수 : 지금은 뭐가 문젠데??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

여후배 3 : 예를 들면 오빠가 주로 꽃무늬나 

화려한 패턴이 들어간 옷을 많이 입잖아.. 

오늘도 봐요. 셔츠 포켓과 소매에 화려한 무늬..

주렁주렁 팔찌하며..

여후배 2 :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패션에 너무 신경 쓴 

티가 나는 남자 스타일 별로 안좋아해요.

여후배 1 : 그건 맞는 거 같아요. 

나도 깔끔하고 단정한 스타일이 좋아.

여후배 2 : 그냥 깔끔하게 단색 셔츠로 

양 팔을 걷어서  클래식한 시계랑 

심플하게 매치하는게 좋지 않을까..

철수 : 야야, 그건 인정 못해!!

이건 나만의 스타일이고 취향인데

내가 여자 때문에 이런 것까지 포기해야 돼??

여후배 1 : 아니 뭐 꼭 그런 의미는 아닌데...

여후배 2 : 제가 봤을 땐 스타일이 

좀 과하다는 느낌이..

철수 : 야야 됐어. 너네가 패션을 아니??

          이 셔츠랑 팔찌가 얼마나 비싼건데..참..

          너네한테 물어본 내 잘못이다 내잘못.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솔직한 내 속마음은 이랬다.

문제는 패션이고 뚱뚱이 아니고,

본인이 조언해달라고 부탁해놓고,

정작 상대가 말한 것을 수용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당황하게 만드는 

그 고집과 애티튜드가 문제야!!

(물론 말은 안했다...ㅋㅋ)

 

이벤트 기획사 근무 중인 35세 여성 미영.

그녀와 이자카야에서 맥주를 한잔 하면서

들은 얘기가 있다. 

"나 얼마 전 소개팅했던 남자랑 호감 있어서

  몇 번 만났는데 결국 나가리 됐어. 

  글쎄 어이없게 나보고 기가 센것 같다고..

  부담스럽다고 그러는거야.

  

  내가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면 웃기겠지만,

  나 대학교 때는 정말 인기 많았었거든.

  근데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부터

  나에게 호감을 느끼던 남자들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지거나

  사귀어도 많이 틀어지드라구. 

  싸움도 잦고...

  몇 번 반복이 되길래 

  스스로 왜 이럴까 생각을 해봤어.

  

  알고 봤더니 내가 연애를 했던 게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드라구.

  회사생활을 하다보니 기준, 원칙, 책임, 역할, 논리

  이런게 중요한데 그걸 연애를 하면서도

  강요하고 있었드라구...

  니가 맞냐 내가 맞냐. 따지면서 말이지

 

  학교를 다닐 땐 서로 이해관계가 아니니까

  왠만한 일에는 웃어 넘기고 이해하는 여자였는데

  회사에서는 그게 너무 중요하고 예민하잖니

  잘잘못을 따지는 업무 성향을

  이해관계가 없는 연애에서도 했던 게

  문제였던 것 같아 "

철수의 고집을 목격하고, 

미영의 이야기를 들으니 

3년 전 내가 만나던 남자친구가 나와 헤어질 무렵,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넌 어쩜 한번을 져주지를 않냐"

나는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논리적으로

잘잘못을 따지고

책임여부를 정리하려 했다.

그래서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내가 잘못했다면 논리적인 근거아 있어야

사과를 했다.

그러한 면 때문에 남자친구 뿐만 아니라

주변의 남자동료들은 나를, 

기 센 여자라고 종종 말했다.

(무서워서 얘기를 안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ㅋㅋ)

그때 마다 나는 생각했다.

기 센 여자?

이 말 자체에 유치한 성차별 의식이

포함되어 있는거 아닌가

여자는 기 세면 안돼?

논리적이고 자신의 의견과 소신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을 기가 세다라는 부정적 인식으로

치부해버리는 것 아닌가.

성숙한 사람이라면 서로 입장을 분명히 해서

충분히 대화하고 때론 논쟁도 하면서

합의점을 도출하는게 정상 아니냐고.

왜 자신의 생각에 솔직하는 안되는거지.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이슈에 대해

죽 고민을 해봤다.

물론..나의 생각이 틀리다고 생각은 안했지만

너무 자로 잰 나의 원칙과 이성 속에

다양한 사람들을 꾸깃꾸깃 집어넣으려는

나의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건

대화나 원칙에 대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나의 방어기제와 오만이라는 점이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자신만의 견고한 기준과 원칙이 생긴다.

그리고 때론 그걸 방어기제로 써먹는다.

꽤 많은 경험을 해봤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스스로 내공이 있다고 판단하여,

내가 틀렸다는 인정을 하기는 점점 더 어렵다.

그래서 욕먹지 않을 정도의 행동을 한 뒤,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나를 방어하기 위한 철벽을 쌓아

내 말이 다 맞다는 오만을 부릴 때도 많았던 것 같다.

그 방어기제와 오만 때문에

우리의 논리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말빨은 점점 더 강해진다.

함정은 바로 여기 있었다.

점점 견고해지는 원칙과 기준들 때문에

나의 이해심과 유연성이 딱딱해지고 

있다는 점을 알아채지 못했다.

남자들은 단순해서

화를 내거나 잘잘못을 따지는 여자들을 보면

겁을 먹고 아예 회피를 하는 경우가 많다.

보편적으로 늘 여성의 말빨과 논리에 지는 남자들이 

이해심 많은 여자를 운운하는 것은

혹시 자신이 조금이라도 덜 혼날만한 여자가

필요하다는 의미 아닐까.

난 기 센 여자들이 좋다.

여기서 기가 세다는 것은 공격적이고

목소리가 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분명히 말할 줄 알고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똑똑하고 용기 있으며 색깔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에서 논리정연하고 똑똑하다는 얘기를 듣는

그 성향을 연인과의 관계까지 적용시켰을 때

그것까지 매력을 봐줄 수 있는 괜찮은 남자는

많지 않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이것은 남녀관계를 떠나서 친구,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기준에 상대의 말이 명백하게 틀렸다하더라도

잘한다 잘한다 칭찬하고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라는

이해를 주면 상대도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주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즐겨 보았던 이솝우화 하나.

햇님과 바람이 땅 위에 걸어가는 

행인의 옷을 벗기기로 내기를 한다.

바람이 먼저 거센 바람을 일으켜 옷을 벗기려 하자

행인은 바람이 세게 불수록 더욱 위옷을 움켜잡아

벗길 수 없었다.

햇님은 행인에게 따뜻한 햇살을 내려주었고,

행인은 스스로가 옷을 벗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람과 같은 강한 논리와 공격이 아닌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감정과 여유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똑똑하고 명민한 여자들에게

자신의 논리나 색깔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상대의 잘잘못과 책임이 있더라도

아주 가끔은 져줄 수 있는 센스와 아량이

우리를 더욱 매력적인 여자로 만들 것이라는 것. 

 

최근 인기 드라마에서 나왔던 대사처럼..

누구나 처음 사는 인생, 

처음이라 서툴고 

처음이라 실수할 수 있는 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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