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불순물 09화

콘크리트 창자: 속도와 정체의 변주곡

by 브레인캔디

그들은 말한다.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라고.

고층빌딩의 강렬한 심장박동, 지하철의 분출적 호흡, 네온사인 위장액.

우리는 그 내부에서 미네랄과 섬유소로 빚어진 현대인형 소화기관.

아침 7시 34분, 다이어트 커피 한 잔이 식도를 타고 추락할 때마다 플라스틱 위장이 경련을 일으킨다.


1. 디지털 변기의 역설

스마트폰 화면 속 무한스크롤은 대변보다 점성이 높다.

알고리즘이 쌓아 올린 데이터 변은 매일 아침 무거움으로 복부를 누른다.

우리는 화장실에서도 LTE, 5G, 와이파이를 삼키며

가상 신호로 굳은 현실을 뚫으려 애쓴다.

배변 앱이 알람을 울릴 때마다 우리의 창자는 유동성 위기를 선언한다.


2. 스피드의 신화가 만든 슬로우 모션

열차는 시속 300km로 질주하지만

장내 미생물 군집은 석기시대 속도로 분해한다.

아침 회의 전 삼킨 프로바이오틱스가

회색 카펫 바닥에 흩뿌려진 키보드 먼지와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효율"이 새긴 타이머 소리가 장운동을 마비시킬 때

우린 드라마 속 2배속 장면처럼 삐걱대는 소화음을 무시한다.


3. 퇴적된 시간의 지층학

편의점 김밥이 척추 사이를 맴도는 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야간작업 크레인이

우리 내장의 수직구조를 닮았다.

7일째 쌓인 음식물 찌꺼기가

증발한 대화 기록보다 더 깊은 층위를 형성한다.

변비는 물리적 장애가 아니다.

응축된 현대의 크로노스가 배꼽 아래에 설치한 미니어처 시한폭탄이다.


4. 배설의 신학을 위한 변주

생리적 리듬이 교향곡에서 프리재즈로 붕괴된 시대.

유산균 광고의 웃는 여성이 손바닥 위 유리관을 들어 올릴 때 우린 신화 속 금단의 과일을 연상한다.

배변은 더 이상 자연의 리듬이 아니다.

SNS에 공유할 수 없는 마이너 한 신체서사,

디톡스 주스보다 쓰디쓴 존재론적 잉여.


5. 해체된 리듬을 위한 인터루드

한 의사가 처방전에 라틴어 대신 릴케의 시구를 쓴다면:

"목마른 땅이 돌들로 가득 차도 강은 흐른다"

화장실 벽면 그래피티가 속삭인다:

"너의 대장은 미개척 은하수다"

공원 벤치에 앉아 뜨거운 현미차를 마시는 노인이

철학자처럼 중얼거린다.

"변비는 몸이 보내는 하이쿠야"


에필로그: 유동성 회복을 위한 몸부림

자정, 편의점에서 데우는 즉석 누룽지가

미세하게 탄 각질 사이로 증기가 피어오를 때

창자 깊숙이 잠든 무언가가 으스러진 속삭임으로 응답한다.

우리는 핸드드립 커피처럼 천천히 걸러지는 시간을 기억해 내 잃어버린 장내 세균의 포엠을 복원한다.

아스팔트 틈새 돋아난 민들레가 콘크리트를 뚫는 그 순간

우리 내부의 강도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모든 경직은 유동을 꿈꾼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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