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성보다 작은 불안에 대하여

by 브레인캔디

오늘 아침, 당신의 불안은 어떤 크기였나요? 발표 전날의 불안이라면 아마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정도. 첫 면접을 앞둔 불안이라면 에베레스트산 만한 크기. 대본을 넘기고 모니터링을 앞두고 있다면, 하... 아마도 태양계 모든 행성들을 일렬로 세워놓은 길이만큼 거대해졌을 거예요. 하지만 재미있게도 우리의 불안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크기는 아니었습니다. 마치 눈덩이처럼, 우리가 굴리고 굴릴수록 덩치를 불려 왔죠.


매일 아침 저는 같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합니다. 원두는 항상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인데, 어제의 불안은 다크 초콜릿처럼 쌉싸름했고 오늘은 설탕이 가라앉지 않은 티라미수처럼 달콤 쌉싸름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같은 자리, 같은 맛인데 내일의 불안은 이상하게도 매일 다른 맛입니다. 마치 바리스타가 모르는 사이 불안이라는 원두를 매일 다르게 로스팅해서 내 텀블러에 불안이라는 시럽과 함께 넣는 걸까요?


천문학자 친구가 술자리에서 북극성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저 별은 지구 1,400개를 일렬로 세워야 할 만큼 큰데, 우린 그걸 하늘에서 반짝이는 핀 헤드라인만큼 작게 보지."

그는 유리잔을 돌리며 덧붙였죠.

"네 불안도 남들에게는 그냥 반짝임일 뿐이야. 사실은 네가 키운 거대한 별인데."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참 많은 새로운 우주를 만나게 됩니다. 첫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신입사원의 굳은 표정, 입시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의 깊은 한숨, 은퇴를 고민하는 중년의 잠든 얼굴. 그들의 불안도 각자의 우주만큼이나 크고 깊겠지만,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처럼 아득히 작아 보입니다.


불안이란 감정은 참 이상합니다. 봄에는 벚꽃처럼 팝콘처럼 터지다가도, 여름이 되면 후텁지근한 장마처럼 질척이고, 가을에는 낙엽처럼 조용히 쌓이다가, 겨울이 되면 꽁꽁 얼어붙어버리죠. 하지만 자연이 계절의 변화를 견디듯, 우리도 이 감정의 계절들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지난주, 조카가 첫 피아노 발표회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건반을 매만지던 조카에게 물었죠.

"지금 네 불안은 무슨 색이야?"

조카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습니다. “

"까만색... 근데 안에 별이 반짝여요."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습니다.

"엄마가 까만 밤하늘일수록 별이 잘 보인대요."

그날 밤, 떨리는 손가락으로 연주한 쇼팽의 녹턴은 어쩌면 조카가 지금까지 쳤던 것 중 가장 아름다웠을지도 모릅니다. 잘못 누른 음계조차 별처럼 빛났을 테니까.


예술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나 봅니다. 불안이라는 감정의 힘을. 뭉크는 자신의 불안을 '절규'라는 그림으로 표현했고, 반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으로 승화시켰죠. 데이비드 보위는 우주인 메이저 톰의 불안을 노래했고, 카프카는 거대한 벌레가 된 인간의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그들은 불안을 예술의 화로에 던져, 잿더미 속에서 별을 창조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던 걸까요? 불안이란 결국 창조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초신성도 폭발하기 전에는 가장 불안정한 상태를 겪는다고. 그리고 그 폭발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관을 만들어낸다고요. 블랙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두려운 존재지만, 그 주변에는 가장 화려한 빛의 띠가 형성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불안도 어쩌면 그런 걸까요? 가장 찬란한 순간을 예고하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제 책상엔 어릴 적부터 쓰던 낡은 만화경이 있습니다. 불안할 때마다 들여다보는 물건이죠. 만화경 속 조각들은 늘 제멋대로 흩어지고 다시 모입니다. 마치 우리의 불안처럼요. 하지만 그 불안정한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모습은, 언제나 하나의 예술이 됩니다.


도시의 밤풍경을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수많은 빌딩의 불빛들, 그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불안을 품고 있겠죠. 마감에 쫓기는 디자이너의 모니터 불빛, 시험공부에 매달린 학생의 스탠드 불빛, 뒤척이는 새내기 직장인의 휴대폰 불빛. 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 모든 불안한 불빛들이 모여 하나의 황홀한 야경을 만들어냅니다. 마치 우주의 암흑 물질이 보이지 않게 은하를 지탱하듯 말이죠.


당신의 불안도 그럴 겁니다. 지금은 거대한 혼돈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당신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무늬가 되어있을 거예요. 오늘 밤, 잠들기 전에 창밖을 바라보세요. 저 멀리 반짝이는 별들처럼, 당신의 불안도 사실은 빛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내일, 당신이 마주한 불안이 또다시 거대해진다면, 살짝 웃어주세요. 어차피 우주에서 보면, 북극성보다도 작은 불빛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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