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년간 사진을 찍지 않았다.
여행을 가서도, 맛있는 걸 주문하고서도.
완전히 하나도 안 찍은 건 아니지만 안 찍으려 했다.
놓쳐버리는 순간들을 회복하고 싶었다.
찰나의 순간을 기록한다는 안도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순간을 지나치더라도 놓치진 않고 싶었다.
향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상상으로 떠올릴 수 없는 감각이지만
그런 향기가 있었노라. 좋았었노라.
향기는 떠올릴 수 없지만, 아련히 남은 존재만으로도
마음 한 켠에 피어나는 뭉게거림을 간직하고 싶었다.
순간을 붙잡으려 하지 않으니 내 차례가 보였다.
한 발짝 물러서 있으니 내 위치가 보였다.
이 정도의 사람이었고, 이 만큼의 사람이었다.
순간을 좀 지나쳤을 지라도 나는 지나치지 않았다.
나로서 온전히 순간에 임할 수 있었다.
이제 나에게 순간은 그런 것이 되었다.
올 한 해도 어영부영했고 어리석었던 해였지만,
살아가는 이유는 모르지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알게 된
한 해였지 않을까
행복하길 바라진 못하겠다.
억울한 생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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