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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뇌오리 Nov 15. 2020

회고록

지나간 10년을 돌아보며

돌아보니 4B연필로 꾹꾹 눌러쓴 일기같은 삶이었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회화처럼 살고 싶었던 거 같다. 뭘 어떻게 해야하는 지도 모른 채 힘만 잔뜩 들어가지고는 예전부터 쥐고 있던 방법대로만 살았다. 쥐고 있는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관성적으로.

여러 시간들로 꽉꽉 채운 일기였다. 오랜만에 펼쳐보니, 일기들은 시간과의 마찰로 대부분 번져있어 알아볼 수 없었다. 처음과 끝 몇 문장씩은 겨우 알아볼 있었고, 다행히 그 정도만으로도 기억이 났었다. 상상에 가까운 일이긴 했지만.

다시 읽어볼 수 없는 일기장을 가지고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겠거니 싶어 버리려했지만, 막상 버리자니 그 상상마저도 잃어버릴까봐 무서웠다. 이미 잊어버린 기억이지만, 뿌예져버린 일기장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붙잡지 못 한 것들을 다시 붙잡는 심정으로.

미화여도 좋으니 내 곁에 남기고자, 한 장면, 한 장면을 회화로 여기기로 했다. 일기장이든 회화든 어짜피 내 몫은 상상으로 더듬어가는 일이다. 아주 옅어져버린 느낌들을 그렇게 때마다 되살리기로 했다.

결국 나는, 그때의 내 삶이 회화같다고 겨우 합리화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살고자 한대로 살았다고.

남은 일기장에 어떤 일기를 써 봤자 어떤 그림을 그려봤자 꾹꾹 눌러 같이 새겨진 자국들이 낭자하여, 모두 덮어내지는 못 할 거 같다. 더 진하게 눌러쓰지도, 꼼꼼하게 색을 채워내지도 못 할테니.

그래서 다행이다. 일기장의 남은 부분을 어떻게 채우든, 그때의 나는 여전히 지금일테니. 뭣도 모르고 안간 힘을 들이며 산 나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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