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오르는 이유
유명하신 성철스님께서 종정에 취임하시면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법어를 하셨다고 한다. 범인에 불과한 내가 그분의 말을 이해할리가 없지만, 실은 저 말은 나한테 딱 맞는 말이다. 나에게 맞게 살짝만 바꾸면 '산은 산이고, 나는 나다.'쯤 될 터이니 나를 위해 해주신 위로의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강이 흐리고 뒤로는 산들이 둘러친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랐으니 대나무를 끊어 낚시를 하고 활을 만들어 새를 잡겠다고 하루 종일 산으로 들러 뛰어다니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설 명절에 마을 뒷 산 공동묘지까지 온 친지가 줄을 서서 오르고 성묘가 끝나면, 만화를 보겠다는 일념하나로 사촌형제들과 산길을 내달려 집에까지 왔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지금은 그렇게 뛰면 119로 실려 도망간 무릎 관절을 찾아 수술대에 올라야겠지만, 여하튼 그때는 누가 누가 빨리 집에 가나 내기라도 하듯 험한 산길을 쉽사리 뛰어다녔다. 솔직히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동산'에 가까운 높이와 지세를 지녔지만, 그래도 한때는 뛰어다녔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스물이 넘어갈 때부터 산이 싫었다. 도무지 왜 저 산을 올라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영국인이 '거기 산이 있으니 오른다.'는 망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 사람 힘들게 한다고 원망도 했다. 대학 MT로 찾은 어느 산에 '동기사랑'이라는 지금 들으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유를 들며 시골 놈의 솜씨를 뽐낼 때도 '왜 오르지?', '어차피 오르고 나면 다시 내려가야 할 산을 왜 오르냐?'를 백만번은 중얼거렸다. 그만큼 산이 싫었다. 나에게 산은 그저 '차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그리고 '차에서 내리면 시원한 계곡과 맛난 음식이 있는 곳'까지만 가면 충분히 즐거웠다. 지리산도 성삼재 휴게소에 주차를 하고 가락국수 한 그릇 먹으면 행복했다. 피약골 초입에 늘어선 곳에서 야채비빔밥을 먹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곱디고운 단풍을 보면 내가 신선이 된 듯했다. 백양사 애기 단풍도 포장 잘되어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며 내장산 종주를 위해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곳에서 뒤돌아와도 아쉽지 않았다.
꽃과 단풍이 좋아 슬며시 나들이를 시작하면서 산이 아닌 능선을 걷기 시작했다. 풍경이 좋은 곳, 고즈넉한 산사가 있는 곳을 찾아 산책하듯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선암사와 송광사 사이에 있는 전설의 보리밥집을 가보겠다는 근거 없는 호승심이 생겨 길을 나섰다 내 숨이 깔딱거리는 신박한 경험을 하고서 땅을 치고 후회를 했다. 머릿속에 강하게 다시금 각인이 되었다.
'산은 산이고, 나는 나다.'
'산아!! 너는 거기 있고, 나는 여기에 있다.'
여전히 산은 나에게 멀기만 한 '존재.'다. 하지만, 짬이 나면 나도 모르게 생수 한 병들고, 오이 두 개 챙기고 챙모자를 눌러쓰고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곳을 다녀보기 시작한다. 누가 그랬다. '살라고 산에 오른다고.' 그렇겠지? 건강, 건강, 건강하는 나이가 되면서 좋아하던 공을 쫓아다니는 운동은 이제 도무지 할 수가 없고, 작대기 하나 들고 작은 공을 맞추는 운동에는 도통 관심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살아보려고 하는 운동으로는 산 타기만 한 게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나 보다.
하지만, 춥다고, 덥다고, 얼굴 탈 것 같다고, 오늘은 혼자 가기는 싫다는 이유로 '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예전처럼 질색팔색하면서 싫어하지는 않으니 반은 성공이다. 이제는 성삼재 휴게소에 주차하고 노고단까지 오른다. 여전히 산책하듯 산이 아니라 완만한 구릉지를 걷지만, 산을 오르기보단 꽃과 단풍이 보려고 그저 꽃과 단풍이 예쁜 곳이 우연히 산이여서 산책을 하는 것이지만, 오르긴 오른다.
하지만, 여전히 산은 산이고, 나는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