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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나에겐 소울푸드

by 열정적인 콤플렉스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등의 기록으로 조선의 김은 무역품으로 거래될 만큼 그 품질이 우수했음을 알 수 있다. 『열양세시기(列陽歲時記)』, 『세시풍요(歲時風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정월 상원(上元) 절식(節食)으로 채소잎이나 김을 이용해 쌈을 싸서 먹는 복쌈[福裏]을 즐겼다. 복쌈이란 ‘복(福)을 싸서 먹는다.’라는 뜻으로 대보름날의 복은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1936)에는 ‘김쌈[海苔包]’은 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과 설탕을 뿌려 석쇠에 구워서 먹는데, 요사이는 날로 구워 진장을 찍어먹기도 한다고 하였다.


김 위에 밥을 펴놓고 여러 가지 재료를 올려 말아서 싼 오늘날의 김밥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김초밥[のり巻(き) · 海苔巻(き)]’이 우리나라 방식으로 토착화된 음식이다. 당시의 기록으로 보아 김밥은 첫째 김에 밥을 싸서 먹는 형태, 둘째 김부스러기를 밥에 섞어 성형한 주먹밥 형태, 셋째 촛물로 간을 한 밥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말아서 둥글게 만든 형태 등이 있었다. 하지만 1939년 이후의 자료에서 김밥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화하였다.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学)』의 저자 홍선표(洪善杓)가 쓴 1939년 조선일보 기사에는 제철에 잘 보관해 둔 조선김에 밥, 장조림, 김치 등을 넣어 말아 싼 김밥이 도시락으로 제격임을 소개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울푸드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오늘 먹었는데 내일 또 먹어도 좋고, 그다음 날도 투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면 머릿속에는 국밥과 김밥이 떠오른다. 그중에 김밥은 언제부터 좋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모두들 그렇듯 어린 시절 소풍 도시락이 시작이지 싶다. 농사짓는 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쌀과 채소는 넉넉했지만, 김밥 재료 중에 단무지, 어묵이나 햄을 사려면 시장이 열리는 곳까지 가야만 했다. 늦둥이 막내아들 소풍 도시락을 위해 농사일에 바쁘셨던 모친은 장이 서는 날이면 미리 가서 재료를 사 오셨을 테다. 그렇게 비슷한 환경 속에서 자란 친구들과 똑같은 장날에서 파는 재료로 만든 김밥을 하나씩 서로 나눠 먹으며, 그럼에도 조금씩 다른 맛을 나름 비교하지 않았을까.



천국과 나라 김밥이 생기기 전에는 장터와 학교 앞 분식집 김밥이 대세였다. 라면과 찰떡이지만, 떡볶이 소스에 찍어 먹기도 하고 어묵 국물과 곁들여도 맛있다. 시간이 흐리고 김밥도 프랜차이즈가 생겨나고 독특한 개성과 맛을 자랑한다. 당근기름으로 조리해 당근향이 좋은 김밥, 계란말이를 잘게 썰어 넣어 부드럽게 만든 김밥, 고기가 들어가기도 하고 돈가스가 들어간 김밥도 있다. 밥알이 밖으로 나온 누드김밥도 신기하고 참치와 치즈로 만든 김밥까지. 오직 김밥이란 이름 하나로 세상에 나온 색다른 맛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어느 해 제주도로 여행 가서 특색 있는 김밥집을 검색해서 이동경로를 거기에 맞춰 '김밥 투어'를 하기도 했다.



김밥은 시간을 쪼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주말에 딱이다. 물론, 쿠킹 포일에 싼 김밥을 운전 중에 '마시는 행위'에 가깝게 먹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긴 하지만, 밥 먹을 시간을 따로 내기 애매한 경우에 유용하다.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끼니를 때운다.'는 느낌을 받지만, 다행히 끼니를 때우는 것이 김밥이라 다행이다. 장소를 이동하기 전 미리 김밥을 주문해 놓고 빠르게 픽업. 그리고는 이동. 몇 개월을 그렇게 하면 사장님이 '안녕하세요.'라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소리에 '두 줄 포장이요?'라고 먼저 물어볼 정도가 된다.



두 녀석이 꼬맹이 시절에 저녁으로 '뭘 먹으로 나가볼까?' 진지한 가족회의 중에 '김밥 하고 라면이요.'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김밥은 빼고 하자. 차 안에서 김밥 먹는 걸로 충분한데, 오늘만 다른 걸로 하자.'며 김밥을 배신(?)한 적이 있긴 하지만, 김밥은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가까운 시일에 다시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다. 요즘은 접는 김밥이 바쁜 화, 목, 토에 저녁을 대신해준다. 돌돌만 김밥보다 먹기에도 편하고 간단한 요기에 적격이다. 묵은지를 씻어서 햄, 계란과 함께 먹으면 금세 다시 일할 힘을 얻는다.



김밥은 일 할 수 있는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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