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 첫날 생존기: 냉면, 매트리스, 물난리

덤터기 맞은 매트리스와 에어컨 물바다 사건

by 지혜

(이전 편에서 이어서)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준 선배들이 짐을 집까지 올려주었다. 미리 열쇠도 다 받아주셨고 푸톤과 같은 몇몇 짐도 넣어주셨기에 내 집을 먼저 본 선배들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유닛 뽑기를 잘한 것 같다고 말해주셨다. 가전들이 새 거라며.


‘여기가 내가 살 곳이구나.’


카펫이 깔려있는 집이 낯설었다. 오래된 집의 느낌이 났지만, 그래도 스토브와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가 새것이었으니 나름 운이 좋았다. (여기서 말 안 한 가전이 하나 있다. 나의 속을 썩였던.. 그 가전. 조금 이따 등장한다.)


선배들이 점심을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날이 더우니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별명이 ‘랜싱의 압구정 현대아파트’였다고 말했던가? 현대아파트라는 별명답게 한국인들이 많았고, 우리 과 선배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밥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외출했다 돌아오는 2년 차 선배 부부를 만나서 선배들도 태워서 같이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그렇게 정해진 메뉴는 냉면.


‘냉면이요?’


미국에 오면 한식을 잘 못 먹을 줄 알았는데,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바로 냉면이라니.


물론, 냉면집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미국의 중소도시에서 대체로 그러하듯 온갖 한국 음식을 다 같이 파는 곳이었다. 김밥천국은 저리 가라 수준이다.


한국에서 갓 온 내게 미국 냉면은 '오.. 식당 냉면이 이렇구나...?'싶었고, 그 뒤로도 다시는 미국 식당에서 냉면을 시켜 먹은 적은 없다. (한인마트에서 사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밥을 먹는 동안 나도 모르게 다음 일정들이 정해졌다.


“매트리스는 어떻게 할 거예요?”

“이제 알아봐야죠.”

“그럼 나온 김에 같이 보러 가요.”


"핸드폰 개통은 했어요?"

"아니요. 아직이요."

"어디가 좋지?"

"버라이즌을 갈까? AT&T를 갈까?"

"둘 다 가봐."


"그러면.... "

어디에 뭐가 있고, 어디에 뭐가 있으니 여차저차 이렇게 저렇게 가자고 이야기가 정리가 됐다.



그렇게 선배들 넷과 어리바리한 신입생 한 명이 매트리스 투어와 유심을 사러 나섰다.


유심이 더 간단했으니 먼저 말하자면, 아직 SSN도 신용도 아무것도 없어서 일반 요금제는 못하고 선불폰 prepaid를 썼어야 했다. 당시 버라이즌은 프리페이드가 없어서 AT&T에서 프리페이드로 결정했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미국 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그냥 prepaid 요금제를 쓰면서 살았는데, 큰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다.)


문제는 매트리스였다. 매트리스는 두 군데 정도 돌아봤는데, 개인취향의 영역이라 선배들이 도와줄 수가 없었다. 예산 안에서 너무 푹신하지는 않은 약간은 단단한 매트리스를 골랐다(고 생각했다^^...)


매트리스 시세도 하나도 모르고, 아직은 어려운 선배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선배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빨리 골라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영어도 어리바리한 나는 덤터기를 씌우기 쉬웠나 보다. 얼마 쓰지도 않고 매트리스는 푹 꺼져버렸고, 앞뒤로 돌려가면서 쓰다가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버렸다. 나중에 이사할 때 도와주시던 분이 ‘이걸 매트리스라고 썼어?’라고 한 손으로 슝 들고 들고 가셨다... 읽으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리고 고가의 매트리스를 사실게 아니라면 온라인으로 매트리스를 사는 걸 더 추천드리고 싶다.


그렇게 어른 다섯 명이서 우르르 돌아다니고 나서는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아주 잠시간.


아무것도 없는 집을 채워야 했다.

집 코 앞에 '마이어'라는 홈플러스 같은 대형 마트가 있었는데, 그 마트조차 처음에 혼자 가는 게 뭔가 무서웠다.


그리고 자취은 처음이라 사실 뭘 사야 할지도 모르겠었기도 하고.

나의 그런 막막함을 알았는지 과 방문학자(visiting scholar)로 있던 언니가 흔쾌히 같이 가주셨다. 혼자 들고 오기엔 짐도 많을 거라며.


그 큰 마트를 어떻게 다녔는지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일단, 마트가 단층이라는 게 꽤 놀라웠다. 식료품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온갖 종류의 것들이 다 있는 마트가. 나중엔 이 마트 코너코 너를 다 외울 정도로 자주 다녔지만, 학교 운동장보다 넓어 보이는 곳에 있는 마트에서 나 혼자 생필품을 사려고 했으면 아마 한참을 돌아다녀야 했을 거다.


이미 살림을 꾸려본 언니가 '이것도 필요할 거야'라며 이것저것 추천해 줬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짐이 카트 가득이었다.


"언니, 우리 둘이 이거 다 어떻게 들고 가요..?"

"걱정 마. 방법이 있어."


다행히도 마트 주차장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아파트였기 때문에, 카트 그대로 끌고 가서 짐을 다 올려놓고 카트를 다시 돌려두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나는 또 언니에게 카톡을 하게 되는데... (진짜 선배들 도움 없이 살아남지 못했을 나..)



"언니, 에어컨을 껐더니 물이 떨어지는데.. 원래 그래요?"


... 에어컨에서 원래 물이 떨어지냐는 내 질문이 다소 멍청하게 들릴 수 있지만, 마루의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그 아파트에 있는 에어컨은 시스템 에어컨도 아니었고, 한국에서 흔히 보던 스탠드 형도 아니었다. 윈도 에어컨이었다. 처음에 보곤, "이게 에어컨이라고요?"라고 물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구글에 "old brown air conditioner"이라고 검색해 보면 나오는 그렇게 오래된 에어컨이다. 어쩌면 내 나이쯤 혹은 그보다 더 많았을 그 고동색 창문형 에어컨은 아주아주 시끄러웠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헬기가 이륙하려고 준비하는 것 같았달까?


여하튼, 태어나서 창문형 에어컨은 처음 보았고, 그러니 꺼본 것도 처음이었다. 물이 떨어지는 것도 처음이었다.


물이 뚝뚝 뚝뚝 떨어져서 수건을 흥건히 적시고도 남았다. 결국, 이게 원래 이런 건 아닌 것 같아 언니한테 다시 카톡을 보냈다.


"물을 빼줘야 하는 건가요..?"

"아니, 물은 안 빼도 되는데 밖으로 빠져서. 끈 지 얼마나 됐어?"

"네 시간 정도..?"

"음... 뭔가 문제가 생겼나 보다. 이머전시 전화해 봐."


카펫도 이미 상당히 축축해진 상태라 결국 계약서에 쓰여 있는 이머전시에 전화를 했다.

이 정도는 이머전시가 아니었는지, 월요일에야 온다고 했다.


'에어컨은 당분간 틀지 말아야겠다.'


앞으로 더우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 함께..

길고 길었던 미국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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