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첫 발을 디딘 날

by 지혜

짐도 싸고, 친구들도 열심히 만나다 보니 어느덧 떠날 시간이 되었다. 내가 가겠다고 결정해 놓고도 막판엔 싱숭생숭해서 그런가. 친구들을 만나는 데 자꾸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그때는 1년에 한 번쯤은 한국에 들어올 생각이었고, 사실 한국에 있어도 친한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1년에 한 번 정도 보는 경우도 많은데- 뭐가 그렇게 왜 그렇게 속상했을까. 아마도 그 인연들이 달라질 것을 어렴풋이 느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빠 차에 이민가방, 수화물캐리어, 기내용 캐리어, 백팩을 가득 싣고 가족들과 함께 공항에 갔다. 공항에서도 왜 이리 눈물이 나던지. 참 이상했다. 출국심사 게이트에서 "본인 외에는 더 같이 갈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해 주신 분의 말을 듣고 속상해하는 엄마를 보며 나도 같이 울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도 기숙사 생활을 해서 타지에 살았었다. 그 시절에도 초반에는 한동안 눈물이 났다. 고등학교 1학년, 아파트 현관 앞을 나서는 데 왜 눈물이 나던지. 그때도, 부모님이 원해서 보내신 건 아니었고, 내가 가겠다고 했다. 그래놓고도 집을 떠나는 건 어쩐지 뭔가 슬펐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들었지만, 엄마는 나를 보내놓고 많이 우셨다고 했다. 통화로 내가 적응하느라 힘들어할 때, 성적이 안 나와서 속상해할 때, 내색은 못하고 밤에 그렇게 울었다고 했다.


그 말이 기억이 나서, 또 나를 보내놓고 울 엄마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 그래서 그런가, 이제는 괜찮아질 법도 하련만. 7년 반 미국 생활 마지막까지 미국 가는 비행기를 타는 공항은 슬펐다.


아직도 기억나는 2016년 7월 23일, 나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시차가 13시간, 비행기도 13시간이라 한국에서 출발한 시간에 미국 땅에 도착했던 날. '이득이잖아?'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 시간은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때 잃는 건데 말이다.

인터넷에서 온갖 안 좋은 후기는 다 읽어서 입국한 공항에서 괜히 잘못되지는 않을까, 서류뭉치를 들고 조마조마했던 입국 심사를 거쳤다. 파일에 서류가 한 가득이었다. 쭈뼛쭈뼛 긴장된 마음으로 과 선배 언니와 카톡을 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정작 입국 심사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래도 여차저차 무사히 통과한 뒤, 내 기억에 남는 건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짧은 환승 비행기와 도착한 공항이었다. 일단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 좌석 배열이 1-2였다.

'네...? 우등버스도 아니고. 이렇게 작은 비행기라니.'

안전하긴 할까, 생각을 하며 밖을 봤다. 짧은 비행인 만큼 높게 날지 않아 땅 위의 풍경이 잘 보였다. 7월의 미시간은 아주 푸르르다. 서울에서 살았고, 유럽여행을 하며 봤던 빽빽한 건물들에 익숙했던 내게는 아주 낯선 풍경이었다. 그런 풍경이 신기해 내내 밖을 쳐다보면서 최종 목적지로 향했다.



최종 목적지 공항에는 선배들 두 분이 나와계셨다. 한 분은 한국에서 미리 봤던 분이고, 한 분은 초면이었다. 처음 본 선배가 공항을 떠나 아파트로 데려다주시는 길에, 운전석에서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미국은 처음이에요?"

"네!"

"그럼 미국 첫인상은 어때요?"

"......... 초록 밖에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공항을 나서는 길에도 온통 초록이었다. 조금, 걱정도 되고 심란했던 날이었다.


P.S. 도착한 공항도 꽤나 충격이었다. 서울 센트럴 호남선 터미널보다도, 광주의 고속버스 터미널보다도 작아 보이는 공항이었다. 공항이라곤, 김포, 인천, 제주 공항이나 유럽의 허브 공항만 보았던 내게는 너무도 낯설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렇게 게이트가 공항 내부로 연결되는 공항이면 양반이고- 그마저도 없어서 공항과 외부의 경계가 울타리 하나인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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