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이거!
선배들에게 정보들도 모았으니 이젠 짐을 쌌어야 했다.
고등학교 3년 기숙사 생활하면서 짐 싸기엔 도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민에 가까운 국제이사 짐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국내는 박스 하나 보내는 데 당시 5000원 언저리였다면 미국으로 보내는 건 EMS는 20만 원이 넘고, 선편도 몇 만 원은 하는 데다 언제 올지 모르니 (실제로도 중간에 LA항에서 파업이 걸려서 오래 걸림) 가지고 갈 이민가방 하나, 캐리어 하나, 기내용 하나에 짐을 최대한 꼼꼼히 잘 쌌어야 했다.
하지만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내가 막 엄청 꼼꼼한 계획형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선배들한테 물어보면 “여기 다 있어. 그냥 와서 사면 돼." 라고 하시는데 그때 나는 ‘정말로...?'라고 생각했고 딸을 먼 길을 보내는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셨던 거 같다. 그래서 수저세트도 챙기고, 첫날 라면 끓여 먹을 라면과 냄비도 챙기고. 고무장갑도 챙기고. 결국 거실 바닥에 산더미처럼 짐이 쌓였다.
내가 대충 이렇게 저렇게 넣고 있으니 아빠랑 남동생이 한숨을 쉬며 나오라고 했다. 특히, 모양이 잡혀있는 캐리어는 나은데 (물론 얘도 무게중심 못 잡아서 앞으로 쓰러짐) 이민가방은 바닥부터 모양을 잘 잡아가면서 싸야 한다. 안 그러면 흐물흐물 거리 거나 무게 밸런스가 안 맞아 이동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량 때문에 포기할 수 없지)
결국 내가 싼 것들은 모두 다 해체를 당했고 아빠랑 남동생이 다시 싸주었다..... 왜 같은 짐인데 부피도 더 작고, 더 단단한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내게 없는 스킬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없을 스킬 같다.
짐을 쌀 때 내가 1번으로 챙긴 건 다름 아닌 “전기 모기채”였다. 나는 벌레를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싫어한다. 무서워하기도 하고. 한국에서 벌레가 나오면 누군가를 불러서 해결을 했는데 혼자 살아야 한다니 걱정되는 건 벌레였다. 그래서 다이소에서 창틀 물구멍 막는 거, 방충망 구멍 났을 때 메우는 것들 온갖 방충망 용품들을 가득 샀고, 제일 먼저 캐리어에 소중하게 넣은 건 전기채였다. 그것도 그릴 모양으로 설렁설렁 벌레 다 빠져나가는 거 말고 아주 촘촘한 걸로.
요새는 아마존에도 있지만, 그땐 거기엔 없었던 물품이었다. (한국에서도 아직 점점 업그레이드되던 시기였으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 해 가을 내내 50년 가까이 된 그 아파트 틈새 어디론가 들어오는 노린재들과 씨름을 했어야 했기 때문에 아주 유용했다. 치지직 하는 냄새와 동시에 노린재의 구린내... 잊지 못한다. (이젠 맡을 일 없어서 다행이다.)
요새 누군가가
뭐 가지고 나가나요?
라고 내게 물으면 1번은 주저 없이 알뜰폰 유심이다. 알뜰폰 유심을 최저금액으로 해놓고 문자만 받을 수 있으면 한국의 휴대폰인증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미국 나가면 한국 인증할 일이 뭐가 있겠어?'싶지만 생각보다 가끔 종종 필요하고 그럴 때 없으면 정말 속 터진다....
내가 유학 나갈 때만 해도 알뜰폰 초기였거나 없었을 때라 나는 070 인터넷 전화를 들고나갔었다. 친구들 가족들과는 카톡으로 전화해서 필요 없었지만 가끔 관공서나 일을 볼 때 유용하게 썼었다. 하지만 요새는 이것도 그냥 알뜰폰 로밍으로 하면 된다. 1초에 1원이던가 2원이던가. 그렇게 비싸지 않아 가끔은 급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그 외에 필요한 것? 음식에 관한 건 개인 선호에 맡기고, 그러고 나면 나머지는 좀 더 비쌀지언정 정말 미국에도 다 있다. 거기도 똑같이 사람 사는 데라.
하지만 알뜰폰은 안 들고가면 정말 후회할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