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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날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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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애진 Mar 20. 2018

자취방, 푸르스름한 새벽

늑대개가 되어 내 울음소리를 찾아야 할 시간




2017.06.03.




공기청정기를 대여했다. 여름엔 봄철만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진 않겠지만, 봄은 곧 또다시 오니까. 내 방 공기가 쾌적할 땐 저 동그란 부분에 파란불이 들어오고, 오염도가 높아지면 연보라색, 빨간색 불이 켜진다고 한다. 머리맡에 공기청정기를 두고 불을 껐더니 방 한 구석이 푸르스름해졌다. 왠지 사진을 찍고 싶어서 찍어놓고 생각했다. 내가 이걸 왜 찍었지? 아무 이유 없이 찍고 싶진 않았을 텐데.


꽤 어릴 때였는데, 언제인지 정확히는 모른다. 자다 깨니 아빠가 내 옆에 모로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명한 색감의 만화영화였다. 아빠는 그 만화의 주인공인 듯한 늑대개를 보면서 쟤 이름이 '발토'라고, 아빠가 가져온 비디오라고 했다. 뚱뚱한 브라운관 텔레비전은 방을 푸르스름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 시각의 방은 분명 조용히 깜깜해야 하는데, 잠을 자야 하는데, 나는 눈을 뜨고 있었고 발토는 늑대 울음소리를 내면서 제 운명을 개척하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빛에 그 기억이 나서였을까. 갑자기 라디오가 듣고싶어졌다. 자취방엔 텔레비전도 없고, 있더라도 그때의 느낌과는 다를 것이었다. 귀찮음을 감수하고 어플까지 받아 라디오를 틀었지만 무슨 문제인지 자꾸 끊기기만 했다. 오기가 생겨 계속 시도한 끝에 겨우 듣기 시작한 라디오는, 뭐 별 거 없었다. 내가 스르르 일어나서 불만 켜면 사라지는 어둠엔 그때 그 발토가 다시 찾아올 일이 없는 건지. 다시 불을 끄고 누우면 머리맡은 푸르스름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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