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날의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애진 Mar 21. 2018

만 원짜리 사랑

즐겁지 못한 편지









아빠의 사랑방식은 말없이 뒷주머니에서 꺼내던 만 원짜리 몇 장이었다. 꽁무니를 잃어버린 말들과 그 사이로 삐져나오는 어색함은 천 원도, 오천 원도 아닌, 딱 만 원짜리 지폐로 간신히 무마되곤 했다. 이유도 묻지 않았고, 그 이외의 다른 말도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아빠를 찾아가서 '아빠, 나...' 하기만 하면 됐고, 아빠는 목소리를 내는 대신 호주머니를 뒤지는 몸짓으로 나의 부름에 대답했다. 그렇게 단순한 관계였다. 군더더기없이 0000으로 끝나는 액수처럼, 오천 원, 천 원, 하다못해 백 원짜리 동전 몇 개조차 오간 적 없는. 짤랑거려볼 수 있는 추억이 도무지 남아있질 않은 것이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 사랑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줄 모르는 거라고, 엄마가 이야기해준 적 있다. 참 착했는데 이리저리 치이다보니 사람이 변한 거라고, 사라진 아빠를 대변하며 누군가 내게 말해주기도 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서럽게 울었던 이유와 만 원짜리 몇 장이 맞물린다. 사소한 숫자로는 서로를 불러본 적 없는, 그래서 서로를 그렇게도 모르는 아빠와 나.








매거진의 이전글 자취방, 푸르스름한 새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