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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날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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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애진 Dec 02. 2018

나를 키운 팔할(八割)








잘 모르겠다. 시간이 기억을 싣고 간 거리가 가시거리를 넘어서고 있는 걸까. 사실 전셋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였다. 나는 왜 그렇게 나를 동정하려 안달이었을까? 엄연히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라 할 만했다, 그 볼링장은. 


초저녁 5시, 그때쯤엔 보통 손님들의 발길이 잠시 끊긴다. 그러면 엄마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저녁을 차리기 시작한다. 언제나 6시 정각을 알리며 조용한 볼링장에 울려퍼지던 배철수의 음악캠프 오프닝. 저녁을 먹고 치우면 다시 하나 둘씩 손님들이 들어섰고, 볼링공이 굴러가는 소리와 볼링핀이 쓰러지는 소리는 내게 소음이 아니라 배경의 일부였다. 언제든 얼마든지 나는 자유롭게 볼링을 칠 수도 있었다. 점수가 내뜻대로 안 될 때면 다신 볼링 치나봐라, 씩씩거리면서 까매진 손을 씻었지만, 날이 바뀌면 나는 짐짓 다 잊어버린 척 볼링화와 볼링공을 들고 빈 레인을 찾았다. 영업을 끝내고 종종 엄마, 아빠와 어른들이 야식을 시켜 술 한 잔 기울일 때, 난 그 옆에 앉아 배가 부를 때까지 젓가락을 바삐 움직이기도 했다. 후덥지근한 한여름 밤엔 또다른 재미도 있었다. 커다란 에어컨 앞에 초록색 텐트를 치는 것이다. 그 안에 요를 깔고, 이불도 펼친다. 그럴 때마다 나와 동생은 캠핑이라도 떠난 듯 들떠서 말이 많아지기 일쑤였다. 키우던 햄스터도 에어컨 앞으로 잠시 이사를 시켜두고 '너도 시원하지?' 하며 신났었다. 그래, 그랬었다.


하긴, 손님 없는 틈을 타 화장실 문을 막아 놓고 샤워할 때, 조급함과 불안함이 서러움과 뒤엉킨 적도 있었다. 사무실 안에 깔린 판넬 위 샛노란 장판을 치부로 여긴 적도 있다. 손님이 잃어버리고 간 연두색 안경을 기성복처럼 대충 콧등에 얹던 엄마가 측은했던 적도. 그렇지만 정말 그 모든 기억들이 가시거리 뒤로 넘어가버리기라도 한 건지, 이젠 정말 모르겠다. 왜 그렇게 서러워하기만 했을까.


낮엔 '볼링장 바닥'일 뿐이던 곳을 '방바닥' 삼으며 텐트 안에 누웠던 기억들일지 모른다. 새벽에 아무도 없는 아스팔트 골목길에 누워 비를 맞고픈, 또 눈이 쌓여 원래 모습을 잃어버린 곳을 보면 마트앞 주차장이든, 학교 운동장이든 가릴 것없이 벌러덩 눕고픈, 내 충동들의 이유 말이다. 그리고 진짜로 그렇게 하고서야 기어이 해방감을 느끼곤 하는 이유 말이다. 그런 지금의 나를 키워냈으니, 그곳은 정말 내 집이었던 거다. 이제는 가시거리 너머로 옅어져만 가는, 그 볼링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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