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낳은 작은 변화의 시작

살고 싶다.

by 잠손

부모님은 밤늦게 퇴근하시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초중학교 시절,

나는 하늘의 별을 보면서 그 외로움을 잊고, 위로를 얻곤 했다.




목성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천체망원경을 사고 싶었다. 용돈을 모았지만 원하는 망원경을 사기엔 아직 부족했다. 온라인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놓고, 판매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면서, 마지막에 한 줄을 덧붙였다.

최대한 공손하게, 최대한 절실해 보이게. 별을 보고 싶은 이유, 미래의 꿈까지 구구절절 이메일에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줄을 덧붙였다.

"좀 깎아주실 수 있나요?"

감사하게도 25만 원짜리 80mm 굴절 천체망원경을 19만 원에 살 수 있었다.

택배가 도착한 날, 바로 조립했다. 설명서를 보고 또 보면서, 손이 떨렸다. 처음으로 보려고 했던 것은 우리 집 안방 창문 밖에 떠있는 밝은 목성이었다. 접안렌즈에 눈을 갖다 댔을 때, 시야 안에 뭔가 동그랗고 밝은 것이 들어왔다.

목성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 안방에서, 창문을 열고, 혼자 목성을 봤다.

흐릿하게나마 줄무늬가 보였다. 그리고 목성 주변에 작은 점 몇 개가 보였다. 목성의 4대 위성이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400년 전에 이것을 보고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것을, 그때 나는 책에서 읽어서 알고 있었다.

나는 매일 밤 목성을 봤다.

그리고 매일 밤 그림으로 기록했다. 목성 주변에 위성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날마다 노트에 그려 넣었다. 며칠이 지나자, 위성들의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실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책에서 읽은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었다.


그 순간의 감각을 지금도 기억한다.

창문 너머로 차가운 밤공기가 들어오고, 안방에는 아무도 없고, 나 혼자 접안렌즈에 눈을 대고 있던 그 순간. 목성이 움직인다는 것을, 위성이 돈다는 것을, 우주가 살아있다는 것을. 혼자 발견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처럼.

그 순간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우주는 아무도 없는 집보다 훨씬 넓었고, 나는 그 안에 있었다.

별을 보고 알아가다 보면, 현재의 나를 잊고 외로움도 잊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혼자만 있는 현실에서 숨어버리고,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에 깊게 몰입하다 보면 모든 것을 잊고 그 몰입하는 대상과 물아일체가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때 나에게 목성은 단순한 행성이 아니었다.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별보다 반짝이는 눈


그렇게 나는 정해진 수순처럼 대학교를 천문우주학과에 입학했다. 도서관에서 읽은 책 덕분에 공부를 많이 안 해도 성적이 잘 나왔고, 그 덕에 외부 재단의 장학생이 되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장학생을 유지하려면 교육봉사를 해야 했다.

솔직히 처음엔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었다.


봉사를 나가던 어느 날, 나는 천체망원경을 챙겨 갔다. 중학교 때부터 쓰던 그 80mm 굴절 천체망원경을. 망원경 가방에 넣어서 초등학교 운동장에 설치했다.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한 명씩 접안렌즈에 눈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우와!" "진짜 보여요?" "저도요, 저도요!"


그 표정들을 보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뛰듯 좋았다.

나도 저랬었다. 처음 목성을 봤을 때, 위성이 움직인다는 것을 혼자 발견했을 때. 그 감각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떤 순간에 눈이 반짝이는지도 알고 있었다. 내가 먼저 경험했으니까.

그건 단순히 내가 제공하는 교육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교육을 통한 성장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소속감, 교육이라는 긍정적 에너지를 함께 만들기 위한 노력에서 오는 즐거움이었다.

이 교육봉사라는 것이,

표현 못 할 정도로 재미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직접 교육봉사 동아리를 만들었다.

어느새 나의 봉사시간은 500시간을 넘어갔고, 내가 만든 교육봉사 동아리는 여러 단체로부터 상을 받기 시작했다.

어쩌면... 천문학, 별 말고도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있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재민아, 너 근데 봉사를 왜 해?"

문득 친구가 이런 질문을 할 때면,

"그냥 봉사시간 필요해서."라고 성의 없이 대답하곤 했다.

사실 그게 처음의 이유이긴 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내가 왜 이게 좋은지, 왜 이걸 계속하는지. 그냥 좋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생각 난 나의 대답은 이거였다.

봉사하는 내 모습이 좋다.

그게 전부였다.




관계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아니, 해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낮에 집에서 바퀴벌레를 봤다고 상상해 보자.

분명히 봤다. 그런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잡지도 못했고,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든다. 눈을 감는다. 그런데 자꾸 생각난다. 어디 있는 걸까. 침대 밑인가, 옷장 뒤인가. 분명히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내 불안감이 딱 그랬다.

분명히 있었다. 어딘가에.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 낮에는 바쁘게 움직이면 잠깐 잊히는 것 같았다. 봉사도 하고, 공부도 하고, 동아리도 운영하고. 뭔가를 계속 채워 넣으면 그 빈 공간이 메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메워지지 않았다.

조용해지는 순간, 어김없이 찾아왔다.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이게 맞는 걸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불안감을 잊기 위해 항상 바쁘게 생활하면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어렴풋한 소리와 상상 속에서 이따금씩 떠오른다.

결국에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살고 싶은 것이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느껴졌다.

'아, 나는 사람들과 함께 관계하면서 공통된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긍정적 에너지가 나오고, 그러면서 성과를 내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그렇다면, 더 이상 나에게 천문학은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그것을 통해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성장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어진 것이다.

별을 보며 외로움을 잊으려 했던 아이가, 이제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외로움이 나를 별로 이끌었고, 별이 나를 관계로 이끌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