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이 초기 투자받다가 망한 이야기
새로운 기회는 기계과 친한 선배의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나의 첫 스타트업 여정이 시작되었다.
선배는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었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들고 나왔고, 그중에서 진짜가 될 것 같은 것들을 골라 팀을 꾸렸다. 나는 그 팀에 합류했다. 천문우주학과가 본전공이었지만, 기계공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계과 선배와 창업팀을 꾸리는 것이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두 전공이 이런 식으로 연결될 줄은 몰랐다. 그냥 뭔가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좋았다.
우리 팀의 아이템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당시 가장 큰 사회적 이슈였던 자동차 급발진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스로틀바디였고, 다른 하나는 대학생이 원룸 자취방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소형화된 의류 건조기, 일명 스타일러였다.
*스로틀바디 : 자동차 엔진으로 유입되는 공기량을 조절해 주는 장치
두 아이템 모두 시장이 명확했다. 급발진은 온 나라가 떠들썩할 만큼 민감한 이슈였고, 소형 의류 건조기는 비싼 스타일러는 구매하기 어려운 자취생이 타겟이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들고 전국 창업경진대회를 돌아다녔다.
결과는 놀라웠다.
경진대회 상금만 2,000만 원이 넘을 정도로 상을 휩쓸었다. 대회에서 대회로, 상에서 상으로. 심사위원들은 우리 아이템의 시장성과 기술력을 인정해 줬고, 우리는 그게 곧 사업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을 때, 나는 대표님에게 말했다.
"형, 이제 경진대회 말고 진짜 창업할 때 되지 않았어요?"
"그래도 사업자를 내는 거는 좀 더 생각해 보고, 이제 정부지원사업이나 투자를 받을 기회를 얻어보자!"
형님이자 대표님은 매우 신중했다. 흥분하거나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신중함이 맞는 방향이었다. 다만, 앞으로 벌어질 일을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문제는 돈이었다.
경진대회 상금으로 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돈이 거의 바닥나고 있었다. 우리가 받아본 월급 중 가장 많은 금액이 30만 원이었다. 그마저도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버는 돈은 없었고, 쓰는 돈은 계속 있었다.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액셀러레이터의 프로그램을 찾기 시작했다.
*액셀러레이터 :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 혹은 육성하는 사람 또는 기업
스로틀바디는 시제품까지 만들었지만 실제 자동차에 적용되기까지 넘어야 할 허들이 너무 많았다. 자동차 부품이라는 게 인증부터 제조까지 학생 창업팀이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결국 의류 건조기를 주력 아이템으로 정했다. 그리고 의류 건조기는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수출을 연계해 주는 프로그램을 찾았다.
그렇게 찾은 것이 해외 대기업 A사에서 후원하고 국내 액셀러레이터가 주관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지원했다. 그리고 최종 선정되었다.
아직 사업자도 없는 예비창업자로서는 프로그램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팀이었다. 경진대회 상금과는 다른 종류의 인정이었다. 실제 투자자와 기업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었으니까.
며칠 뒤, 액셀러레이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저희가 엔젤투자하겠습니다."
대표님이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을 기억한다.
평소에 항상 진중하고 웬만해서는 잘 웃지 않던 대표님이, 전화를 끊자마자 우리에게 뛰어왔다. 얼굴이 활짝 펴져 있었다. 그 표정을 본 순간,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알았다.
"얘들아! 우리 투자받는다!!"
그날만큼은 축제 분위기였다. 경진대회 상금이 바닥나가던 팀이, 드디어 투자를 받게 되는 순간이었다. 월급 30만 원으로 주말을 포함해서 매일 야근하며 버티던 날들이 끝날 것 같았다.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계약서가 왔다.
솔직히 처음엔 잘 몰랐다. 두껍고 어려운 용어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지만, 그냥 좋았다. 투자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컸다. 제대로 읽어볼 생각도 잘 안 했다. 어서 사인하고 싶었다.
그때 대표님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일단 더 읽어보자."
변호사에게 물어봤다
대표님은 지인의 지인을 수소문했다. 스타트업을 잘 아는 변호사였다. 계약서를 들고 찾아가서 하나씩 물어봤다.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투자조건의 핵심은 이랬다.
[투자조건]
10% 지분
1,000만 원
상환전환우선주 + 의결권
10% 지분에 1,000만 원. 대학생이었던 우리가 봤을 때는 1000만 원은 큰돈이었고, 돈 밖에 안보였다. 하지만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조건은 우리 회사의 기업가치를 1억으로 본다는 뜻이었다. *Seed 단계의 스타트업에게 이 조건은 비상장기업 투자업계에서 상상도 못 할 수준으로 나쁜 조건이었다. 이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후속 투자를 받을 때 기업가치 협상이 극도로 불리해지고, 상환전환우선주와 의결권 조항으로 인해 경영 자율성도 크게 제한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1,000만 원을 받는 순간 우리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통째로 넘겨주는 계약서에 사인하는 셈이었다.
*Seed 단계 : (일반적으로) 창업 초기 0~3년 차 스타트업을 일컫는 말. 아직 매출이나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이 없는 초기 단계.
조금 전까지 어서 사인하고 싶었던 그 계약서가,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거절하기로 했다.
우리 팀에서 거절하기로 정하고, 대표님은 그 투자자를 만나러 갔다.
대표님은 그냥 거절하지 않았다. 혹시 모를 더 나은 조건을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이미 가족을 통한 엔젤투자가 있어서, 더 나은 조건이 아니면 투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실이 아니었다. 엔젤투자는 없었다. 거절과 더 나은 투자 조건을 위한 명분이었다.
그런데 액셀러레이터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테이블 건너편에서 느껴지는 그 무게감은 마치 심사위원이 답안지를 다시 넘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틀린 게 없는지 확인하듯이,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그럼 엔젤투자를 받으셨다면, 통장 이체내역을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 한 문장이 공기를 바꿔버렸다.
마치 블러핑을 치던 포커 게임에서 상대방이 "콜"을 외친 것 같았다. 패를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었다. 도망갈 곳이 없었다.
미팅을 마치고 돌아온 대표님이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는 방법을 논의했다.
우리 팀의 핵심엔지니어였던 팀원의 가족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잠시 돈을 빌렸다. 약 2,000만 원이 찍힌 통장 내역을 만들었다. 그렇게 당시 상황은 잠시 모면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돈을 빌려준 그 팀원의 부모님 입장에서는, 언제 갚을지도 모르는 돈을 창업팀에 빌려준 셈이 됐다. 통장 내역은 투자사에 증빙으로 보냈고, 확인이 끝나는 즉시 그 팀원에게 돈을 돌려줬다. 빌린 돈은 제때 갚았다.
하지만 그 팀원의 부모님은 애초에 창업 자체를 반대하고 계셨다.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는 그 과정을 겪으면서, 그 반대는 더 강해졌다. 핵심 엔지니어였던 그 팀원은 최대한 버텼지만, 결국 더 이상 함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리고 퇴사했다.
그날을 기억한다.
남자 넷이서 시작한 팀이었다. 서로 선후배 사이였고, 월급 3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아예 한 푼도 받지도 않은 적도 많았다. 그저 의리, 재미, 뛰는 심장으로 버티면서도 같은 방향을 보던 사람들이었다. 그 형이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 다들 눈물을 흘렸다. 남자 넷이서. 아무도 웃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대표님은 사무실에 남았고, 나머지 셋은 밖으로 나갔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냥 담배에 불을 붙였다. 10분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입에서 뿜어져 하염없이 흩어져 나가는 담배연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사무실에 남아있던 대표님이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왔다. 아무 말 없이 담배 한 개비를 손에 들었다. 불을 붙였다.
"나 사실 담배 다시 펴."
10분쯤 지나고 나서야 내가 먼저 입을 뗐다.
"형!, 그래도 수업은 빠지지 마."
실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웃음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냥 또 담배를 물었다.
그동안의 이야기들이 하나씩 나왔다. 처음 팀을 꾸리던 날, 경진대회에서 상을 받던 날, 월급 30만 원을 처음 받던 날.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20분쯤 담배 연기와 함께 정리했다.
그리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야근할 때마다 시켜 먹던 황궁쟁반짜장에 전화를 걸었다. 짜장면을 시켰다. 네 그릇.
사무실에서 다 같이 짜장면을 먹었다. 아무도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짜장면 그릇을 비우는 소리만 났다.
팀에서 한 명이 빠지면 그냥 한 명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팀원 한 명은 회사 전체의 에너지이고 방향이다. 그 형이 나간 뒤, 팀은 예전의 팀이 아니었다. 그걸 다들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님과 나도 오래 이야기했다.
거창한 결론이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여기까지 하기로 합의했다.
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시작해서 서로 힘이 되어주던 우리 팀이,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이게 우리의 첫 창업스토리의 마지막이었다.
어이없기도 하고 허무했다.
초기 스타트업이 팀이 와해되어 끝나버리는 일은 사실 흔하다. 하지만 그 와해되는 과정에 액셀러레이터가 연관된 케이스는 아주 드물다. 우리가 그 드문 케이스였다.
스타트업이 사업 초기에 어떤 AC를 만나느냐도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큰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을 통해 알게 되었다.
투자는 단순히 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과 어떤 조건으로 시작하느냐가, 그 이후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 투자를 그냥 솔직하고 담백하게 거절했으면 어땠을까?'
'그 투자를 그냥 받았으면 어땠을까?'
'투자를 거절하고, 대출이나 진짜 가족한테 투자를 받으려 해 봤으면 어땠을까?'
부질없는 후회였다.
그래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