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등록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이메일 알림이었다. 발신자는 창업선도대학 운영 기관이었다. 걸어가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주변에 사람들이 지나쳤다. 다들 어딘가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클릭하기 전에 잠깐 멈췄다.
선정인지 탈락인지, 제목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지원서를 넣은 지 꽤 됐었다. 서류를 통과하면 발표평가를 거쳐야 했고, 그 발표평가도 통과해야 최종 선정이었다. 서류합격 통보를 받던 날도 설렜고, 발표평가 날도 떨렸다. 그리고 오늘, 최종 결과가 온 것이었다.
'아 몰라 그냥 눌러!'
선정됐다.
두 글자를 확인하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강의실 복도 한복판에서 혼자 소리를 질렀다.
"아!"
지나가던 학생 몇 명이 힐끔 쳐다봤다. 부끄러웠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기쁘다는 감각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잠깐 그 자리에서 숨을 골랐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운영하는 창업선도대학 지원사업이었다. 대학생 신분으로도 신청할 수 있었고, 공고문에 적힌 최대 지원금은 1억 원이었다. 나는 1억이라는 숫자를 보고 지원했다.
그런데 선정 통보 메일에 적힌 금액은 2,800만 원이었다.
'왜 이렇게 적지?'
기쁨 바로 뒤에 그 의문이 왔다. 메일을 다시 읽어봤다. 2,800만 원. 틀림없었다. 담당자에게 바로 연락했다. 왜 1억이 아니냐고. 그제야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대학생은 최대 2,800만 원이에요. 평가점수가 좋아서 그래도 높게 받으신 거예요."
공고문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분명히 없었다. 지원하기 전에 꼼꼼하게 읽었으니까.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기대치가 달랐을 텐데. 알려주지도 않고, 물어봤을 때 그제야 말해주는 게 조금은 억울했다.
그래도 2,800만 원이었다.
200만 원으로 시작한 사람에게 2,800만 원은 전혀 다른 숫자였다. 화면을 껐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아까보다 조금 빨라진 것 같았다.
선정 통보를 받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지원금 사용 규정을 읽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2,800만 원이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규정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지원금은 이렇게 작동했다. 내가 무언가를 사거나 의뢰하려면, 먼저 견적서를 받아야 했다. 그 견적서를 운영기관에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했다. 승인이 나면, 거래처에 발주를 넣고, 전자세금계산서를 받고, 거래명세서를 첨부하고, 과업지시서와 결과보고서까지 써서 다시 제출해야 했다. 그제야 운영기관에서 거래처 계좌로 직접 돈을 보내줬다.
내 통장을 거치지 않는 돈이었다.
그러다가도 서류 하나를 빠뜨리거나 숫자하나, 글자하나 실수라도 하면 반려됐다. 다시 준비해서 다시 제출했다. 처음에는 이 과정이 익숙하지 않아서 몇 번씩 반려를 받기도 했다. 사업을 하는 건지, 서류를 쓰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벽이 있었다.
부가세였다.
지원금으로 뭔가를 구매하면, 그 금액의 10%는 부가세로 붙는다. 그리고 그 부가세는 지원금으로 낼 수 없었다. 내 돈으로 내야 했다. 2,800만 원을 전부 쓰려면, 10%인 280만 원은 내가 직접 가지고 있어야 했다.
대학생한테 280만 원은 작은 돈이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조금씩 모아둔 돈이 있었다. 적금도 하나 들어놨었다. 만기가 아직 남아있었지만 깼다. 중도해지 수수료가 붙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간신히 280만 원을 마련했다.
2,800만 원짜리 지원사업에 선정됐는데, 정작 내가 한 일은 적금을 깨는 것이었다.
뭔가 순서가 이상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었다. 지원금은 있는데 내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 누군가 먼저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이것도 몸으로 부딪혀서 알게 됐다.
지원금을 받는 것과는 별개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사업자 등록이었다.
300만 원의 매출이 생겼고, 앞으로 매출이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개발자를 채용하려면 사업자가 있어야 했다. 이유는 충분했다.
노트북을 열고 홈택스에 접속했다.
개인사업자 등록 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단계를 따라가면 됐다. 그런데 업종 코드를 입력하는 칸 앞에서 잠깐 막혔다. 플랫폼 서비스는 어떤 업종 코드를 써야 하지? 한참 검색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우리 서비스는 집주인의 집을 플랫폼에 광고해 주는 거니까, 광고대행업이겠지. 그렇게 입력하고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상호명.
여기서 또 멈췄다. 이건 검색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 이름을 뭘로 할지는 사실 꽤 오래 생각해 왔던 문제였다. 영어 이름은 하고 싶지 않았다. 스타트업들이 으레 쓰는 그런 영어 이름 말고,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가장 잘 담은 이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서비스의 핵심은 뭔가.
360도 사진으로 방을 보여준다. 직접 가지 않아도, 방 안에 서 있는 것처럼. 최대한 가깝게, 최대한 생생하게.
그 느낌을 담은 순우리말이 떠올랐다.
바투.
거리나 간격이 아주 가깝게, 바짝. 사전에서 찾아보니 딱 그런 뜻이었다. 집을 직접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주겠다는 의미를 담기에 이보다 더 맞는 단어가 없었다. 거창한 영어 이름도 아니고, 멋진 로고도 없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가장 잘 담은 단어 하나였다.
상호명 칸에 '바투'라고 입력했다.
최종 제출 버튼 앞에서 잠깐 화면을 바라봤다. 이 버튼을 누르면 이건 그냥 아이디어가 아니게 된다. 머릿속에만 있던 것이, 내 이름이 걸린 사업체가 된다.
눌렀다.
클릭 한 번이었다. 그런데 그 클릭 한 번이 묘하게 무거웠다.
사업자가 생기고 나서, 드디어 개발자를 채용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웹서비스와 앱을 만들려면 개발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인건비를 줄 돈이 없었다. 그때 찾은 것이 한국장학재단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재학 중인 학생이 기업에서 일하고, 인건비는 장학금 형태로 학생에게 지급되는 구조였다. 나처럼 극초기 사업자도 직원을 뽑을 수 있고, 학생도 생활비가 되는 월급을 정당하게 받을 수 있었다.
지원한 학생 중에 같은 학교 컴퓨터공학과 4학년이 있었다. 나랑 동갑이었다. 이름은 준호였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서비스 설명보다 다른 이야기를 먼저 했다.
"준호 씨가 이 일을 하면서 뭘 얻을 수 있는지를 먼저 말씀드리고 싶어요."
대학가 원룸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설명했다. 집주인이 부동산에 내는 불법적인 수준의 복비가 결국 학생들의 월세로 전가되는 구조. 그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이 바로 준호가 만들게 될 서비스라고 했다.
"웹 기반으로 웹앱 형태로 만들 거고, 안드로이드랑 iOS 다 개발할 거예요. 지금은 우리 학교 주변 로컬 단위로 시작하지만, 전국으로 확장할 계획이에요. 준호 씨 입장에서는 실제 서비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설계하고 개발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거예요. 포트폴리오로도, 커리어로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가 진짜로 월세 가격을 떨어뜨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건 꽤 의미 있는 일 아닐까요. 회사 가치 올라가면 같이 돈도 많이 벌고요."
준호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류했다.
같은 학교, 같은 나이. 한 명은 개발자로, 한 명은 사업자로. 조금 어색한 구도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어색함보다, 이제 진짜로 만들 수 있겠다는 감각이 더 컸다.
지원사업이 선정되면서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나와 함께 사업을 시작한 후배 지훈이에게, 처음으로 인건비를 줄 수 있게 됐다. 적은 돈이었지만, 그동안 한 번도 금전적 보상을 해준 적이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힘들다고 서로 티를 낸 적은 없었다. 그냥 매일 할 일을 했다. 어떤 날은 지원금 서류를 쓰고, 어떤 날은 개발 방향을 논의하고, 어떤 날은 촬영 일정을 잡았다. 막막하다는 말을 꺼낼 틈이 없을 만큼 바빴다.
아니, 어쩌면 막막하다는 말을 꺼내지 않으려고 바쁘게 지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지훈이가 없었다면, 나 혼자 버텼을 자신이 없다.
90만 원짜리 홈페이지는 역할을 다했다. 이제는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할 때였다. 웹도, 앱도. 안드로이드도, iOS도. 처음부터.
리브랜딩도 해야 했다. 바투라는 이름에 걸맞은 서비스로, 다시.
시작은 항상 막막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막막함을 통과해 왔으니까. 이번에도 그냥 하면 됐다. 문제는, 진짜 어려운 건 지금부터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