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옆에서 서버를 올렸다

직접 만든 서비스

by 잠손

준호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안경을 쓰고, 키는 180 언저리였던 것 같다. 말수가 많지 않았고, 처음엔 그냥 얌전한 개발자 지망생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주제만 건드리면 달라졌다. 개발 얘기. 특히 기술적인 것에 대해 살짝이라도 틀린 말이 나오거나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 갑자기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눈도 조금 커졌다. 그게 첫인상이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창업을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자기 일에 흥분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일을 해낸다는 것이다. 설명회에서 처음으로 계약서를 써주던 집주인아주머니, 아무것도 없는 서비스에 30만 원을 먼저 내주던 그분들도,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하는 걸 끝까지 듣고 믿어줬다. 준호씨도 그랬다. 처음 서비스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그 사람이, 지금 생각해 보면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게 돼야 한다는 걸.




자취방이 곧 사무실


지원사업에 선정되고 나서, 처음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사무실이 없었다.

창업동아리 시절에는 학교 공간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창업진흥원 지원사업은 얘기가 달랐다. 사업자도 있어야 했고, 사업장 주소도 있어야 했다. 지하 동아리 방 주소를 사업장으로 쓸 수는 없었다. 결국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학교 근처 투룸을 구하자. 안방은 침실로 쓰고, 거실을 사무실로 쓰면 된다.

그렇게 대학가 자취방 한 칸이 바투의 첫 번째 사무실이 됐다.

지원사업비로 모니터 두 대, 데스크톱 두대를 샀다. 그리고 자비로 4만원짜리 책상과 의자세트를 4개 샀다. 거실에 일렬로 쭉 늘어놓으니 그럴싸했다. 그런데 거실이라는 게 거실이었다. 책상 바로 옆에 냉장고가 있었다. 공유기 옆에 신발장이 있었다. 모니터 너머로 주방이 보였다. 이게 회사구나 싶었다. 조금 웃기기도 했고, 이상하게 설레기도 했다.

준호씨는 첫날 오자마자 짐을 풀고 노트북을 폈다. 냉장고 옆 책상에 앉아서, 첫마디가 이거였다.

"대표님, 서버는 AWS 쓸 거죠?"

나는 그때 AWS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서버가 뭔지도 몰랐던 대표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개발을 모른다. 천문학과에 기계공학 복수전공을 했고, 창업 공부를 했지, 내가 아는 코딩이라고는 'Hello world'출력하는 것이 다였다. 준호씨가 AWS 얘기를 꺼냈을 때 그게 뭔지 바로 물어봤다. 아마존 웹 서비스. 서버. 클라우드. 돈이 많이 드나?

"AWS 비싸지 않아요?"

준호씨가 잠깐 나를 봤다.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빛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생전 처음 개발과 관련된 공부를 시작했다. AWS EC2가 뭔지, RDS가 뭔지, 프론트엔드와 백엔드가 어떻게 나뉘는지, 데이터베이스는 어떤 구조로 짜야하는지. 직접 코딩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준호씨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싶었다. 대화가 되고 싶었다.

준호씨는 설명을 잘해줬다. 내가 이해를 못 하면, 비유를 들어 다시 설명해 줬다. EC2는 컴퓨터를 빌리는 거예요. RDS는 그 컴퓨터 안에 창고를 따로 두는 거고요. 그렇게 하나씩 쌓여갔다. 나는 개발을 배운 게 아니라, 준호씨의 언어를 배운 거였다.


같은 나이였고, 친구처럼 편한 사이였다. 밥도 같이 먹고, 가끔 치킨도 시켜 먹고, 농담도 주고받았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철저하게 지켰다. 나는 준호씨라고 불렀고, 준호씨는 나를 대표님이라고 불렀다. 어떻게 보면 웃긴 상황이지만, 그게 오히려 서로를 더 편하게 했다. 그 호칭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역할이 있었고, 그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다.




90만 원짜리 홈페이지의 수명


바투를 시작했을 때, 홈페이지는 90만 원짜리 외주 워드프레스였다.

당시로선 최선이었다. 200만 원밖에 없었고, 개발자도 없었고, 일단 뭔가 보여줄 수 있는 게 필요했다. 집주인 설명회를 열고, 매물을 올리고, 직거래 플랫폼이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그 역할을 90만 원짜리 홈페이지가 해줬다.


그런데 한계가 왔다.

매물이 50개를 넘어서면서부터였다. 360도 사진이 워드프레스 위에서 버티질 못했다. 로딩이 느렸다. 모바일에서 레이아웃이 깨졌다. 무엇보다 집주인이 직접 매물을 올리는 구조가 없었다. 우리가 일일이 올려줘야 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초반에 매물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매출도 300만 원에서 900만 원으로 늘어났다. 서비스가 커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받쳐주는 기반이 없었다.

90만 원짜리 홈페이지는 자기 할 일을 다 했다. 이제는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할 때였다. 냉장고 옆 책상에서.




바른 방


홈페이지를 새로 만들기로 했을 때, 서비스 이름도 바꿨다.

회사 이름은 바투였다. '거리가 아주 가깝다'는 뜻의 순우리말. 360도 사진으로 방 안을 아주 가까이 들여다본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런데 서비스 이름이 따로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사용자 입장에서 접속하는 앱이나 사이트에 '바투'라는 이름이 뜨는 게 어딘가 어색했다.

회의를 했다. 나와 지훈이, 준호씨. 셋이서 이름을 고르는 시간이 꽤 길었다.

조건은 명확했다. 학생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어야 하고, 부동산이라는 딱딱한 느낌 대신 가볍고 신뢰가 가는 느낌이어야 했다. 허위 매물 없이, 직접 찍은 360도 사진으로 방을 보여준다는 정체성이 담겨야 했다.

그렇게 나온 이름이 바방이었다.


바른 방. 바방. 단순했다. 그런데 그게 맞는 것 같았다. 발음도 쉬웠고, 이름만으로도 무엇을 하는 서비스인지 느낌이 왔다. 이름을 정하고 나서, 이상하게 일이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름이 생기면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360도가 연결되던 날


개발 중에서 가장 오래 걸린 건 360도 사진 플로우였다.

개념 자체는 간단했다. 방 안을 구역별로 360도 사진으로 찍고, 사진 안에 화살표나 클릭 영역을 만들어서 거실에서 클릭하면 방으로, 방에서 클릭하면 화장실로 이동하는 구조.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360도 사진 자체를 불러오는 것부터 달랐다. 일반 이미지가 아니었다. 구면 좌표계로 변환된 파일을 렌더링해야 했고, 거기에 클릭 이벤트를 얹고, 이동 트랜지션을 붙이고, 모바일에서도 터치로 돌릴 수 있어야 했다. 준호씨는 일주일이 넘도록 이것만 붙잡고 있었다.

가끔 새벽에 카톡이 왔다.

"대표님, 이거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요? 방향이 좀 이상한 것 같아서요."

나는 링크를 클릭해 봤다. 360도 사진이 돌긴 했는데, 클릭하면 튕겼다. 다음 날 또 카톡이 왔다.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시도했는데 로딩이 너무 느리다고 했다. 그다음 날은 모바일에서 화면이 뒤집힌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거실에서 각자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준호씨가 갑자기 웃음을 참는 얼굴로 나를 불렀다.

"대표님, 잠깐 이쪽으로 와보세요."

화면을 봤다. 거실 360도 사진이 있었다. 오른쪽 구석에 화살표가 있었다. 클릭했다. 부드럽게 전환됐다. 방이 나왔다. 또 클릭했다. 화장실이 나왔다. 끊기지 않았다. 로딩도 없었다. 그냥 됐다.

준호씨가 말했다.

"됐어요."

짧았다. 딱 두 글자였다. 그런데 그 두 글자에 며칠 치 새벽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냥 웃었다. 준호씨도 웃었다. 그러다가 준호씨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좀 커졌다. 눈도 좀 커졌다. 그게 준호씨였다.




밥값은 내가 낸다


창업을 시작할 때 다짐한 게 하나 있었다.

직원이 일하는 동안, 밥값은 회사에서 낸다.

돈이 없을 때도 돈을 빌리든, 신용카드를 써서라도 그 원칙은 지켰다. 준호씨와 함께 점심을 먹을 때, 배달을 시킬 때, 늦게까지 일하고 야식을 먹을 때. 항상 내가 결제했다. 준호씨가 지갑을 꺼내려하면 먼저 카드를 내밀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었다.

같은 나이였고, 친구 같은 사이였지만 준호씨는 나를 믿고 이 회사에 왔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는 서비스였다. 90만 원짜리 홈페이지에, 매물 몇 개에, 지원사업으로 겨우 굴러가는 회사였다. 그런데도 왔다. 그러니 내가 줄 수 있는 건 다 줘야 했다.

지훈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창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했던 후배. 월급다운 월급을 주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도 밥은 항상 같이 먹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게 서로에게 무언의 신호였던 것 같다. 우리는 아직 같은 팀이라는.




데드라인


개발이 시작됐지만, 문제가 있었다.

시간이었다.

우리 서비스는 사용량이 집중되는 시기가 있었다. 대학 입학이나 개강 시즌인 12월에서 3월, 그리고 6월에서 9월. 이 시기에 방을 구하는 학생들이 몰렸다. 반대로 그 외의 시간에는 조용했다.

준호는 4월에 합류했다. 지금 당장 개발에 착수해도 시간이 빠듯했다.

준호와 이야기했다. 6월 성수기 전까지 홈페이지 개발을 완료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기로 했다. 앱은 그다음, 11월까지. 혼자 개발하는 입장에서 빡빡한 일정이었다.

그래도 준호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거실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준호는 매일 출근했고, 늦게까지 코드를 짰다. 어떤 날은 새벽까지 일하다가 그냥 사무실 소파에서 잤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또 노트북을 열었다. 내 집 겸 사무실이다 보니, 그 모습을 매일 바로 옆에서 봤다.

처음엔 그냥 열정적인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게 됐다. 같은 나이, 같은 학생 신분으로,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일했다. 고맙다고 해야 할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솔직히 그 당시에는 말로 표현을 잘 못했던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야 제대로 말할 수 있다.

준호, 고마웠고, 진짜 대단했어.




6월이 됐다.


새로운 홈페이지를 올려야 하는 날이었다.

"대표님, 배포할게요."


클릭 소리가 났다.

잠깐의 정적이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에 바방 홈페이지가 떴다. 모바일에서도 레이아웃이 깨지지 않았다. 360도 사진이 부드럽게 돌아갔다. 매물을 클릭하면 거실에서 방으로, 방에서 화장실로 이동했다. AWS EC2 위에서, 우리가 직접 설계한 데이터베이스 위에서, 준호씨가 밤을 새워 짠 코드 위에서 서비스가 돌아가고 있었다.

90만 원짜리 홈페이지는 이제 없었다. 냉장고 옆 책상에서 만든 것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날 저녁에 셋이서 밥을 먹었다. 딱히 대단한 자리는 아니었다. 학교 앞 고깃집이었다. 밥값은 내가 냈다.

준호씨가 고기를 뒤집으면서 아까 배포할 때 긴장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조금 웃겼다. 그렇게 밤마다 혼자서 코딩하고, 오류가 안 잡혀서 새벽에 카톡을 보내면서도 티 하나 안 냈던 사람이 배포 순간에 긴장했다고.

"됐잖아요, 결국."

준호씨가 말했다.


고기를 먹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말했다.

"이제 좀 잘게요"

"빨리 자요, 준호 씨."

그렇게 웃었다.



홈페이지가 됐으니, 이제는 앱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부터 우리 거실이 좀 더 좁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