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과의 외로운 전쟁

사람

by 잠손


사람을 잘못 보는 것도 능력이라면, 나는 그 능력이 꽤 뛰어난 편이었다.




지훈이


지훈이를 처음 만난 건 개강총회 과모임이었다.

첫 창업팀이 와해되고 나서, 나는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수업 듣고, 봉사 나가고, 학생회 일 하고. 몸은 바빴지만 머릿속 어딘가에는 항상 그 생각이 있었다. '언젠가는 다시 해야지.' 언제, 뭘, 어떻게 할지는 몰랐다. 그냥 막연하게. 바퀴벌레처럼.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어딘가에 있는.

그 무렵에 과모임에서 후배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갓 전역한 복학생 2학년 후배였다. 나보다 한 살 어렸다. 그런데 말하는 게 달랐다. 다들 학점 이야기, 알바 이야기를 할 때, 그 후배는 자기가 사업을 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고향 친구랑 같이 시작했다고 했다. 돈도 꽤 벌었다고 했다. 심지어 나이 많은 트럭기사님을 채용하는 면접을 직접 봤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나는 귀가 쫑긋했다.

대학교 1학년이 트럭기사 면접을 봤다고?

사기인지 진짜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흥미가 생겼다. 내가 아직 두 번째 창업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그 후배는 이미 뭔가를 해봤다는 느낌이 났다. 나는 그냥 유심히 지켜봤다.

나는 따로 같이 밥도 먹기도 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자연스럽게 늘었다.

"나 이런이런 사업하고 있는데, 너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

나의 제안에 지훈이는 흔쾌히 팀에 합류했다.

나는 그때 지훈이가 분명히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판단이 나중에 완전히 뒤집힌다는 걸, 그땐 몰랐다.




거실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홈페이지 배포 이후, 우리 거실에 변화가 생겼다.

원래도 좁았다. 냉장고 옆 책상, 신발장 옆 공유기,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주방. 자취방 거실을 회사 사무실로 쓰는 구조였으니까 태생적으로 좁았다. 그런데 홈페이지가 배포되고 나서부터는 진짜로 좁아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늘었다.

지훈이가 친구를 데려왔다. 고향 친구였다. 그리고 그 친구가 또 한 명을 데려왔다. 갑자기 두 명이 팀에 합류했다. 준호씨까지 포함하면 어느새 네 명이 그 거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360도 카메라 본체, 삼각대, 여분 배터리, 케이블들. 사람이 늘면서 장비도 늘었다. 어떤 날은 삼각대를 접어놓은 것을 밟고 넘어질 뻔했다. 준호씨가 그걸 보고 말했다.

"대표님, 창고라도 하나 빌려요."

"아직은 괜찮아요."

괜찮지 않았다. 그냥 돈이 없었다...




위드홈


새로운 사람이 합류하면서 팀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훈이는 영업을 맡았다. 집주인들을 직접 찾아가 계약을 따내는 역할이었다. 지훈이의 친구는 기획과 운영 전반을 함께 했다. 사업 확장 계획을 세우고, 방향을 함께 논의했다.

그리고 회의를 하면서 이야기가 나왔다.

"사업을 더 키우려면 브랜드 이름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바방. 바른 방. 처음엔 그 이름이 딱 맞다고 생각했다. 단순하고 명확했다. 그런데 서비스를 확장하다 보면 대학가 원룸 직거래 그 이상을 해야 할 수 있었다. 그걸 담기엔 '바방'이라는 이름이 너무 작았다. 솔직히 말하면, 뭔가 유치해 보이기도 했다.

긴 회의 끝에 이름이 나왔다.

위드홈(WithHome).

집과 함께한다는 의미였다. 원룸 직거래를 넘어서, 주거 전반을 함께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었다. 그 확장 범위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이름이기도 했다.

이름이 바뀌면서 디자인도 전부 바꿨다. 앱 UI, 웹 디자인, 로고까지. 준호씨는 홈페이지 개발로 겨우 숨 좀 돌리나 싶었는데, 다시 작업 목록이 쌓이기 시작했다.

"대표님, 앱 개발이랑 동시에 리브랜딩도 해야 하는 거죠?"

"네, 동시에 가야 해요."

준호씨는 말없이 노트북을 열었다.

그게 준호씨였다.




우리 앱이 생겼다.


앱은 홈페이지와 달랐다.

홈페이지는 브라우저에서 열리면 됐다. 앱은 스토어에 올라가야 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 심사를 통과해야 했고, 거절당하면 수정해서 다시 올려야 했다.

우리가 선택한 방식은 웹앱이었다. 웹 기반으로 만들어서 안드로이드와 iOS 버전을 동시에 개발하는 구조. 속도를 위한 선택이었다. 네이티브앱을 따로 만들면 시간이 두 배였다. 우리에게 그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조건이 하나 더 있었다.

개발자가 아닌 사람도 360도 사진을 올릴 수 있어야 했다. 나도, 지훈이도, 누구든 현장에서 직접 촬영하고 바로 플랫폼에 올릴 수 있어야 했다. 복잡한 과정 없이. 버튼 몇 번이면 되도록.

그걸 만드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360도 사진은 일반 이미지가 아니었다. 구면 좌표계로 변환된 파일을 처리해야 했고, 모바일 환경에서 업로드 속도도 잡아야 했다. 홈페이지에서 그 고생을 했는데, 앱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고생이 시작됐다.

냉장고 옆 불이 다시 꺼지지 않았다.

준호씨는 매일 출근했다. 새벽까지 코드를 짜다가 소파에서 잠들고,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열었다. 홈페이지를 만들 때와 똑같은 패턴이었다. 새벽에 카톡이 왔다.

"대표님, iOS에서 360도 업로드할 때 자꾸 튕기는데, 방법을 좀 더 찾아볼게요."

"넵 그런데 자고 내일 해요..."

나는 그 카톡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는 고맙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강요한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저렇게 하고 있다는 게. 그때 나는 그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부동산의 반응


앱 개발이 한창이던 그 무렵,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주인 분들에게 전화가 왔다.

처음엔 한 분이었다. 다음 날엔 두 분. 내용은 비슷했다.

"학생,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어요. 위드홈에서 매물 내리지 않으면 거래 안 해준다고 하던데."

잠깐 멈췄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나야... 뭐 모르겠어. 그냥 말씀드리는 거예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집주인이 직접 광고를 내는 건 불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법정 한도의 다섯 배가 넘는 복비를 받아온 쪽이 어딘데. 논리적으로는 우리가 맞았다.

그런데 논리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부동산들은 집주인들과 오랜 관계가 있었다. 지역 내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연결돼 있었다. 어떤 부동산은 "위드홈 매물 올린 건물은 소개 안 해준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어떤 곳은 조용히 압박을 넣었다.

집주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됐다.

위드홈에 광고를 올려서 아끼는 복비가 연 수백만 원이다. 그런데 지역 부동산 전체와 사이가 나빠지면? 1년에 수백, 수천만 원씩 내던 복비보다 더 큰 손해가 생길 수 있었다. 관계가 끊기면 부동산 채널로 들어오는 세입자도 끊긴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우리가 맞는 말을 하는 건 알지만, 선택하기가 어려웠던 거다.

위드홈으로 한해 매물을 모두 뺄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것도 아니었다.

법이나 논리보다 관행이 더 강했다.




혼자였다


집주인 분들이 하나둘 연락을 끊기 시작했다.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데도 광고를 내리고 싶다는 분들이 생겼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학생, 우리는 계속할게요"라고 말씀해 주신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한테는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 남아있다.

그래도 상황은 점점 불리해졌다.

준호씨는 앱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훈이는 새로운 집주인을 찾아 영업을 다니고 있었다. 나는 혼자 기존 집주인들한테 전화를 돌렸다. 설득하고, 상황을 설명하고, 버텨달라고 부탁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스무 통이 넘는 전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나면, 조용했다.

냉장고 옆에 혼자 앉아서, 다음 전화를 누를 생각을 하면서.

그게 제일 외로웠다.




거짓말


일을 마치고 밤에 오랜만에 다 같이 피자를 시켜 먹었다. 나는 하와이안피자를 좋아했지만 팀원들은 극구 말리며, 포테이토피자를 시켰다.

피자를 먹으며 지훈이가 나에게 말했다.

"형 저 이제 퇴사할게요."

"왜! 이유가 뭔데?"

마음속으로는 정말 고생했다고 그냥 보내주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유는 알고 싶었다.

"그냥 이제 공부도 좀 하고 학생회도 하려고요"

그랬다. 내가 학생회장 임기가 끝나고 다음 학생회 임원으로 지훈이가 준비하고 있었다.

섭섭했지만 붙잡을 이유가 없었다. 사람이 가고 싶다고 하는데 막을 수는 없었다.


지훈이는 갔지만 지훈이가 데려온 친구와 나는 일하는 스타일이 더 잘 맞고 매일 새벽까지 회의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 더욱 가까워졌었다.

그러다가 매일같이 모두가 퇴근하고 둘이 사무실에 남아 대화할 때 지훈이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서야 지훈이한테 들었던 이야기를 그 친구에게 했다.

"지훈이랑 같이 사업했다면서요? 뭐 어떤 할아버지 면접도 보시고 했다던데 그때는 어떤 사업했어요?"

"네? 저 걔랑 그런 적 없는데?..."

잠깐 뭐라고?

지훈이의 친구 이름은 진명.

진명씨는 그때부터 지훈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고등학생 때 왕따 당하던 지훈이를 구해준 이야기, 지훈이 집에 놀러 가서 부모님한테 혼나는 지훈이를 본 이야기 등...

생각해 보니 내가 지훈이와의 관계에 대해서 물어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도 지훈이와 대화한 내용들에 대해서 진명씨에게 이야기하니, 그가 이야기했던 90퍼센트 이상이 다 거짓말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랬다. 지훈이가 개강총회에서 사람들에게 했던 말에서 친구와 사업을 했다는 것이 그 친구가 나랑 대화하고 있는 이 친구였고, 같이 사업했다는 친구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화가 났는데 그 화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지훈이한테? 그 친구한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나한테?

결국 나한테였다.

과모임에서 처음 봤을 때 귀가 쫑긋했던 그 순간. 1학년 후배가 트럭기사 면접을 봤다는 말에 흥미가 생겼던 그 순간. 나는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냥 믿었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내가 우리 팀에 합류해 달라며 제안하기까지 했던 것이었다.

그게 내 실수였다.

사람을 잘못 보는 것도 능력이라면, 나는 그 능력이 꽤 뛰어난 편이었다.




됐어요!


그래도 앱은 나왔다.

"대표님, 배포 신청했어요."

준호씨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뷰 기간이 걸렸다. 통보가 왔다.

통과됐다.

혼자 그 알림을 봤다. 준호씨한테 바로 카톡을 보냈다.

"준호씨, 통과됐어요."

답장이 빠르게 왔다.

"ㅋㅋ 됐군요."

그게 다였다.

그런데 그게 다여도 충분했다. 그 짧은 두 글자에 몇 달치 새벽이 담겨 있었으니까. 홈페이지 때도, 앱 때도. 매번 새벽에 카톡을 보내고, 오류를 잡고, 소파에서 자고 일어나서 또 코드를 짜고. 그 사람이 '됐군요' 한 마디를 보내는 데 얼마나 많은 밤이 있었는지를 나는 옆에서 봤다.

지훈이가 나에게 했던 말의 90%가 거짓이었다면, 준호씨가 만들어낸 것들의 100%는 진짜였다.

그 차이가 그때 생각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부동산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훈이는 갔고, 팀은 다시 줄었다. 위드홈이라는 새 이름을 달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관행의 벽은 여전히 높았고, 우리는 여전히 자취방 거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람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아예 저버려도 안된다. 잘못 볼 수 있다는 걸 배웠고, 진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조금은 알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가지는 여전히 분명했다.

앱이 살아있었다. 서비스가 살아있었다. 냉장고 옆에서, 새벽에 불 켜진 거실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지금도 돌아가고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일단은.


그러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저 집주인인데요. 혹시 저희 집도 광고할 수 있나요?"

나는 바로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집을 보러 갔다.

그 집을 본 순간,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그 감각이 왔다.

처음 목성을 봤을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