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집
그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 집주인 아주머니는 목소리가 조용한 분이었다. 위드홈 광고를 보셨다고 했다. 혹시 우리 집도 올릴 수 있냐고. 나는 바로 그러겠다고 했고, 며칠 뒤 직접 찾아갔다.
계단을 올라가면서부터 느낌이 왔다.
벽에 금이 가 있었다. 손잡이가 녹슬어 있었다. 층마다 복도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5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이 집에 들어오고 싶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방 문을 열었다.
창문이 작았다. 햇빛이 잘 들지 않았다. 벽지는 누렇게 바래있었고, 바닥 장판은 모서리가 들떠 있었다. 화장실 타일은 줄눈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월세는 주변 시세보다 3만 원 정도 쌌다.
그런데 방이 안 나가고 있었다.
아주머니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학생들이 보러 오긴 오는데, 그냥 가요. 월세도 싸게 해 뒀는데."
"부동산에서 소개는 해주나요?"
"해주죠. 근데 와서 보고 나가버려요."
잠깐 생각했다.
월세가 싸도 안 들어온다. 부동산에서 소개도 해준다. 그런데 안 나간다. 이유는 하나였다.
집 자체가 문제였다.
아무리 360도 사진으로 잘 찍어서 올려봤자, 찍히는 게 낡은 벽지고 들뜬 장판이면 소용이 없었다. 플랫폼이 문제가 아니었다. 광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집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 순간, 다른 생각이 왔다.
'집을 고쳐주면 되는 거 아닌가?'
돌아오는 길에 계산을 해봤다.
주변 원룸 인테리어 견적을 대략 알고 있었다. 방 하나 기준으로 도배, 장판, 조명, 화장실 타일 정도면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였다. 여기서 우리는 이 기본적인 구조자체를 바꿔야 했다. 비용을 혁신적으로 줄이면서도 훨씬 좋은 퀄리티가 나와야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인트를 선택했다. 페인트를 칠하는 것은 기술자가 아니어도 충분히 좋은 퀄리티를 만들 수 있었다. 벽지를 하지 않고 페인트를 벽에 칠하고, 바닥은 기존 장판을 뜯어내고 데코타일을 붙였다. 화장실은 최대한 인테리어 하지 않는 방향으로 했고, 주방은 기존 상부 하부장에 필름을 붙였다. 기존의 모든 방에는 오래된 집답게 체리몰딩, 누런 벽지, 누런 장판이었다. 기존 대학가 원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우리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고 친구들을 불러서 내 집을 자랑할 수 있을 만한 집으로 바꿔주려는 것이었다.
집주인 입장에서 가격적으로도 방 1개당 70~100만 원이면 가능했다. 집주인 입장에서 원래도 싼 월세를 조금 올리더라도 충분히 임차인이 들어오면 손해 볼 게 없는 구조였다.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테리어를 해주면 매출이 생긴다. 그 집을 위드홈 플랫폼에 올리면 성공 사례가 생긴다. 낡은 집이 인테리어 후에 방이 다 차는 걸 보여주면, 다른 집주인들한테 가장 강력한 영업 자료가 된다.
플랫폼 사업의 한계를 인테리어로 돌파하는 구조.
다음 날 아주머니께 다시 연락을 드렸다.
"아주머니, 저희가 인테리어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인테리어요?"
"네. 지금 방이 안 나가는 이유가 집 상태 때문인 것 같아요. 도배, 장판, 조명 정도만 바꿔도 달라질 거예요. 월세 3만 원만 올리셔도 6개월이면 비용이 다 회수돼요. 그리고 인테리어가 끝나면 저희가 사진 찍어서 위드홈에 올려드리고, 방 나갈 수 있도록 홍보도 같이 해드릴게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얼마예요?"
솔직히 말하면, 인테리어를 해본 적이 없었다.
관심은 많았다. 셀프 인테리어 관련 블로그도 찾아보고, 유튜브도 봤다. 그런데 직접 해본 건 아니었다. 그냥 알고는 있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 없는 확신이 있었다.
처음 천체망원경 판매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던 그 중학생처럼.
견적서를 들고 다시 찾아갔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계약서를 썼다. 방 하나였다.
그게 첫 번째 인테리어 계약이었다.
자재를 직접 샀다. 도배 풀, 벽지 롤, 장판, LED 조명. 차에 싣고 현장으로 갔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보면서 했다. 벽지를 바르다가 기포가 생겨서 다시 뜯었다. 장판을 자르다가 삐뚤게 잘렸다. 다시 했다. 화장실 줄눈은 전용 클리너로 닦고, 실리콘으로 마감했다.
하루가 꼬박 걸렸다.
끝나고 나서 방을 한 번 둘러봤다. 벽지가 하얗게 됐다. 장판이 깔끔해졌다. 조명을 바꿨더니 공간이 달라 보였다. 아까 계단 올라오면서 느꼈던 그 퀴퀴한 느낌이, 방 안에서는 사라져 있었다.
360도 카메라를 꺼냈다. 구석구석 찍었다. 위드홈에 올렸다.
일주일 뒤, 그 방에 세입자가 들어왔다.
아주머니한테 연락이 왔다.
"학생, 나머지 방들도 해줄 수 있어요?"
같은 건물 다른 방이었다. 두 개를 더 했다. 총 3개 방. 그게 시작이었다.
소문이 났다.
아주머니가 주변 집주인들한테 이야기를 하셨다. "저 학생들이 인테리어 해줬는데 방이 바로 나갔어요." 직접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영업을 나간 게 아니었다. 성공 사례가 영업을 대신했다.
부동산 플랫폼 사업을 하면서 확보해뒀던 집주인 인프라가 여기서 힘을 발휘했다. 연락처가 있었고, 관계가 있었다. 직접 찾아가서 사업을 설명하고, 방을 실측하고, 디자인과 견적서를 들고 다시 찾아갔다.
계약이 쌓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인테리어 사업의 월 매출이 3,000만 원이 됐다.
대학생 창업팀이, 자취방 거실 사무실에서, 유튜브 보면서 시작한 인테리어 사업이.
원룸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연락이 온 집주인은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방이 여러 개인 큰 집이었다. 혼자 쓰는 원룸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사는 구조. 거실과 주방은 공유하고, 각자 방은 따로 쓰는 형태였다.
원룸 인테리어랑은 규모가 달랐다.
방 하나가 아니라, 집 전체를 바꿔야 했다. 도배, 장판은 기본이고, 거실 가구 배치까지 우리가 해야 했다. 소파, 테이블, 조명, 수납장. 어떤 가구를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공간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 인테리어 잡지를 뒤적이던 게 여기서 쓸모가 생겼다.
가구를 직접 골랐다. 직접 샀다. 직접 날랐다.
IKEA 카트를 밀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런데 어쩌겠나. 해야 했다.
공사가 끝나고 나서, 이번엔 사진만 찍지 않았다.
홍보 영상을 찍었다.
집 구석구석을 카메라로 담고, 학교 후배에게 용돈을 주고 셰어하우스에서의 생활에 대한 즐거움을 담았다. 거실에 모여 맥주 한 잔 하는 장면, 깔끔하게 정돈된 주방, 장난치며 즐거운 시간 보내는 장면. 함께 영화 보는 장면 등 편집해서 영상으로 만들었다. 위드홈에 올리고, SNS에도 올렸다.
반응이 왔다.
세입자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방이 찼다.
영상을 올리고 나서, 잠깐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원룸 직거래 플랫폼으로 시작했던 게, 인테리어가 됐고, 가구 배치가 됐고, 홍보 영상까지 됐다. 우리가 하는 일의 범위가 어느 순간부터 조용히, 그런데 꽤 빠르게 넓어지고 있었다.
사업이 확장되고 있다는 게, 그때 처음으로 숫자가 아니라 감각으로 느껴졌다.
인테리어를 하고 나면 반드시 했던 게 있었다.
360도 사진을 찍어서 위드홈에 올리는 것.
인테리어 전후 사진을 나란히 올렸다. 낡은 집이 바뀐 집으로. 그 변화가 눈에 보이니까, 집을 구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도 신뢰가 생겼다. 방이 빠르게 찼다. 방이 차니까 집주인이 만족했다. 집주인이 만족하니까 주변에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 인테리어 한 집은 모든 방을 인테리어 해달라고 했다.
플랫폼과 인테리어가 서로를 밀어주는 구조가 생겼다.
앱 출시 3개월 만에 MAU가 500에서 5,000으로 올라갔다. 10배였다. 광고를 쓴 게 아니었다. 인테리어 성공 사례가 입소문이 된 것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사업 확장이란 단순히 하는 일을 늘리는 게 아니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그 해결책이 다른 문제의 답이 되는 것. 집주인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했더니, 플랫폼의 한계가 함께 풀렸다. 인테리어가 부동산 광고의 비수기를 해결하는 매출구조가 됐고, 광고가 됐고, 광고가 플랫폼을 키웠다.
스타트업의 사업 확장은, 나무가 뿌리가 뽑히지 않으려고 가지를 뻗는 것과 같다.
가지가 많을수록, 광합성이 많아지고, 나무는 더 오래 산다.
그때 우리 나무는, 막 두 번째 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사업은 우리 학교 주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가까운 다른 학교 원룸가까지. 낯선 골목을 360도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고, 새로운 집주인들을 만나고, 새로운 계약서를 썼다. 우리가 커버하는 지역이 하나에서 셋이 됐다.
숫자는 올라가고 있었다. 방향은 맞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이 속도로 계속 달릴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머릿속 한편에 조용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