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장 잘 나가던 시절

핵융합 반응

by 잠손


잘 되고 있을 때가 제일 무섭다.

그걸 그때는 몰랐다.




세 개의 학교


우리 학교 주변을 넘어서기 시작한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인테리어 성공 사례가 쌓이고, 위드홈 MAU가 올라가면서 "우리 학교 근처도 해줄 수 있냐"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가까운 거리에 두 개의 학교가 더 있었다. 원룸가 구조는 비슷했다. 집주인들의 고민도 비슷했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 두 개 학교를 맡은 건 창규였다.

인테리어 팀원으로 새롭게 합류한 대학교 동기 창규는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시키는 것만 하는 스타일인가 싶었는데, 현장에 나가보니 달랐다. 페인트칠을 할 때 마감선이 깔끔했다. 바닥재를 붙일 때 이음새가 티가 나지 않았다. 손이 빠른데 꼼꼼했다. 현장에서 뭔가를 할 때 한 번 보여주면 다음엔 혼자서 했다. 가끔 실수를 하긴 했지만 어떻게 해서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해내는 스타일이었다.

그게 창규였다.

나는 창규한테 두 학교의 영업과 촬영을 맡겼다.

카메라를 들고 낯선 골목을 돌아다니는 일. 처음 보는 집주인들을 만나고, 처음 보는 건물에 들어가고, 처음 보는 방을 실측하는 일. 명함을 돌리고, 설명하고, 견적서를 들고 다시 찾아가는 일. 우리 학교 주변에서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이 했다.

창규는 군말 없이 돌아다녔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학교를 다 돌고 오기도 했다. 저녁에 사무실로 돌아와서 오늘 만난 집주인 리스트를 정리해서 올렸다. 촬영한 사진을 바로 편집해서 넘겼다. 뭔가 막히는 게 있으면 카톡으로 물어봤다. 짧게 물어보고, 답을 들으면 바로 움직였다.

하나였던 커버리지가 셋이 됐다.

일이 세 배가 됐다.

그래도 돌아갈 수 있었던 건, 창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때는 그 당연한 말의 무게를 잘 몰랐다.




하루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할 일이 쌓여있었다.

이 학교 근처 집주인한테 견적서 보내야 하고, 저 학교 근처 인테리어 현장에 자재 가져다줘야 하고, 앱에서 오류 신고가 들어왔는데 준호씨한테 전달해야 하고, 위드홈에 새로 올릴 매물 사진 편집해야 하고.

끝이 없었다.

밥을 먹다가 전화가 왔다. 심지어 면도를 하면서 운전을 하기도 했다. 자려고 누웠다가 생각이 났다. 잠들기 전에 내일 할 일 목록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다가, 어느 순간 눈을 떠보면 아침이었다.

그게 일상이 됐다.

피곤하다는 생각은 딱히 안 했다. 할 일이 있다는 건 사업이 굴러가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바쁜 게 좋았다. 바쁘면 불안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시켜야 움직이는 조직


인테리어 사업이 커지면서 팀도 커졌다.

준호씨는 개발을 맡았다. 진명씨는 인테리어 계획과 견적을 세팅하는 역할이었다. 어떤 자재를 쓸지, 공사 순서는 어떻게 할지, 견적서는 어떻게 짤지. 인테리어 경험이 있었던 진명씨가 초반 세팅을 잡아줬다. 실제 현장에서 일할 팀원도 두 명 새로 합류했다. 거기에 내 학교 후배들 몇 명을 알바로 써서 현장을 돌렸다.

처음 두세 개 현장은 나랑 진명씨가 직접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보여주면서 같이 했다. 페인트를 어떻게 바르는지, 장판, 데코타일 등을 어떻게 재단하고 붙이는지, 필름은 어떻게 붙이는지 어떤 순서로 하는지. 몸으로 보여줬다.

그다음부터는 팀원들이 알아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머지는 달랐다.

내가 "이거 해주세요"라고 말해야 움직였다. 내가 방향을 잡아주지 않으면 기다렸다. 내가 에너지를 쏟아서 하나씩 지도해야 일이 됐다.

그게 얼마나 소모적인 건지를, 어느 현장에서 제대로 느꼈다.


셰어하우스 마감 하루 전날이었다. 집주인한테 내일 입주 전에 다 끝낸다고 약속을 한 상황이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다른 견적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카톡이 왔다.

"대표님, 이 가구 어떻게 조립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IKEA 가구였다. 설명서가 있었다. 유튜브를 찾으면 조립 영상이 수십 개였다. 그런데 몇 시간째 헤매고 있다고 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자전거를 탔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구 부품들이 거실 바닥에 그대로 널려 있었다. 설명서는 펼쳐져 있었지만 아무것도 조립이 안 된 상태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앉아서 조립을 시작했다. 10분 만에 끝냈다.

돌아오는 길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또 다른 날은 공사 중에 페인트를 복도 바닥에 흘렸다는 연락이 왔다. 건물 복도였다. 집주인이 모르면 다행이고, 알면 큰일이었다.

"어떻게 해요?"

나는 편의점에 들러 네일 리무버를 여러 개 샀다. 현장으로 갔다. 복도 바닥에 굳어가는 페인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직접 닦기 시작했다. 팀원도 옆에서 같이 닦았다. 10분쯤 걸렸다.

일어서면서 생각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틀린 질문이 아니었다. 그런데 동시에 맞는 질문도 아니었다. 대표가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고, 팀원이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업의 전체를 관리해야 하는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사소한 부분까지 컨트롤하고 있다가는 더 중요한 걸 놓칠 위험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내가 없으면 멈추는 조직.

내가 있으면 굴러가는 조직.

그건 조직이 아니라, 내가 혼자 하는 일이었다.

실제 인테리어 현장 Before(좌), After(우)




졸업


그 무렵에 졸업을 했다.

주변 친구들은 취업 준비를 하거나, 대학원을 가거나, 이미 어딘가에 취직해 있었다. 졸업식 날, 학사모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부모님이 오셨다. 꽃다발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졸업이라는 게 나한테는 크게 달라지는 게 없었다. 다음 날도 똑같이 출근했다. 똑같이 견적서를 쓰고, 똑같이 현장을 다녔다. 학생이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 하루는 그대로였다.

부모님은 졸업 후 계획을 물어보셨다.

"사업 계속할 거야."

"언제까지?"

대답을 못 했다.

언제까지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주로 거주하는 부동산 월세시장을 개선하겠다는, 세상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는데 조금 관여하는 것을 목표로 그냥 계속하고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여자친구


사귄 지 꽤 됐었다.

사업을 한다는 걸 알고 만난 사람이었다. 처음엔 그게 멋있어 보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바쁜 와중에도 만나면 온전히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표현하는 게 어색한 사람이 아니었다. 같이 있는 시간이 짧아도, 그 시간만큼은 진짜였다.

여자친구도 그걸 알았다.

서운하다는 말을 할 때도 있었지만, 항상 믿어줬다. 기다려줬다. 한결같이 좋아해 줬다. 내가 힘들다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옆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더 잘해줬어야 했다.

나중에 생각하면 그랬다. 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믿어주고 있을 때, 내가 모르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그때는 꿈에도 몰랐으니까.

그건 나중 이야기다.




가장 잘 나가던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숫자는 올라가고 있었다.

세 개 학교 원룸가를 커버하고, 인테리어 매출이 나오고, 위드홈 MAU는 계속 올라갔다. 셰어하우스 홍보 영상에 반응이 왔다. 새로운 집주인들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때가 우리 사업이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가 가장 불안했다.

잘 되고 있다는 게 느껴질수록, 이게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같이 커졌다. 팀원이 늘었는데도 조직은 여전히 나 하나에 기대고 있는 구조였고, 몸은 쉬지 않았고,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천문학에서 배웠다.

별이 빛을 내는 원리는 핵융합반응이다. 수소 원자핵들이 극한의 온도와 압력 속에서 서로 충돌하고 합쳐지면서 헬륨이 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빛으로 방출된다. 별은 그 빛을 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태운다. 밝게 빛나는 별일수록, 그 안에서는 더 격렬하게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격렬하게 타오르는 별일수록, 수명이 짧다는 것을.

베텔게우스가 그렇다.

오리온자리 어깨에서 붉게 빛나는 그 별. 태양보다 수백 배 크고, 수만 배 밝다. 그런데 그 밝음의 대가로,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타오르고 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나는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로 향했다.

평소와 똑같은 출근길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