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설명회
결심은 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니 막막했다. 창업을 하겠다는 건 분명했는데, 그다음 한 발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몰랐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았다.
학교 창업동아리였다.
사업계획서라는 것을 처음 써봤다.
창업동아리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발표 평가를 거쳐야 했다. 처음 써보는 사업계획서는 어설프고 내용도 부실했다. 시장분석이라고 쓴 것은 인터넷에서 찾은 통계 몇 개를 붙여놓은 수준이었고, 수익 모델이라고 쓴 것도 지금 생각하면 정리가 덜 된 낙서에 가까웠다.
발표는 4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5분 동안 어떤 사업인지 짧게 발표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5분 만에 다 말하지?' 해서 발표하는 중간에 끊겨서 당황하기도 했다. 그래도 꼭 말해야 하는 것은 다 말했다 생각했고, 부가적인 설명은 추가 5분간 질의응답 시간에 답 할 수 있었다.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 분들은 나를 선정해 주셨다.
나중에 심사위원이셨던 교수님과 상담할 일이 있어서 여쭤보니, 심사위원 분들이 그 사업계획서에서 본 것은 완성도가 아니었다고 하셨다. 학생이 직접 집주인아주머니와 대화하며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고민해서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려 한다는 그 열정과, 어떻게든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이 보였다고 해주셨다.
"완벽한 계획보다,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가 더 강할 때가 있다."
그렇게 200만 원이 생겼다.
정확히는 내 통장에 들어온 돈이 아니라 창업동아리 팀이 쓸 수 있는 한도였다. 그리고 이 돈은 엄밀히 말하면 학교에서 나온 돈, 즉 내가 매 학기 내는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지원금이었다. 시제품 개발, 광고비, 운영비. 이 모든 것을 200만 원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넉넉하지 않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무엇보다 이 돈은 단순한 지원금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나의 가능성에 베팅을 해준 것이었다. 그 무게가 생각보다 묵직했다.
돈이 생기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빠르게 만들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생각한 것을 시작해보고 싶었다.
외주 개발사를 찾아 베타 버전의 웹페이지 개발을 맡겼다. 개발사 대표님에게 구구절절 학생인 점과 사정 등을 말씀드리며 네고하는 과정을 거쳐 처음 200만 원의 견적에서 90만 원까지 깎았다. 창업동아리 지원금 200만 원의 절반도 안 되는 돈으로 만든 홈페이지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봐도, 90만 원짜리 웹페이지가 얼마나 조악했을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그래도 그것은 분명히 내가 머릿속에서만 그리던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웹서비스라는 프로덕트의 형태가 된 것이었다. 처음으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직거래 부동산 플랫폼. 360도로 방을 볼 수 있고, 집주인에게 바로 연결되고, 학생이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고 방을 구할 수 있는 서비스. 조악하든 뭐든, 그건 실제로 내 머릿속에서는 작동하고 있었다.
이제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시장에 내놓느냐였다.
플랫폼이 작동하려면 일단 콘텐츠가 있어야 하니 집주인들의 방이 업로드되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용하는 집을 구하는 학생들이 이용해야 한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가장 첫 번째 관문, 이른바 *콜드 스타트 문제였다.
*콜드 스타트 : 플랫폼에 공급자와 수요자가 모두 없는 초기 상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방이 없으면 학생이 안 오고, 학생이 없으면 집주인이 방을 올리지 않는 상황.
나는 공급자인 집주인을 먼저 확보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더 고민했다. 집주인이 직접 사진을 찍어서 방을 올리는 구조로는 한계가 있었다. 사진 퀄리티도 제각각일 것이고, 집주인들 대부분이 중년 이후의 분들이 많아 플랫폼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많을 것이었다. 의도하지 않게 허위매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다. 우리가 직접 집으로 찾아가서 360도 카메라로 허위 없이 정확하게 촬영하고, 플랫폼에 직접 올렸다. 당시 한창 유행이었던 VR(Virtual Reality)의 핵심 데이터인 360도 데이터를 사진으로 촬영해서 업로드한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 플랫폼만의 차별성이 되기도 하고, 직접 방을 보지 않아도 플랫폼 상에서 최대한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계약서에 사인 한 번, 1년 치 광고비인 30만 원 한 번이면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다 해주는 구조였다. 기존에 공인중개사에게 매물 건당 30~100만 원의 수수료로 내던 것을 생각하면, 연간 30만 원에 건물 별로 가지고 있는 방의 수에 제한 없이 직거래된다는 조건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집주인이 거절할 이유가 없는 조건을 만들고 싶었다.
직접 나섰다. 학교 주변 건물에 붙어있는 집주인의 전화번호를 수집하고, 건물에 포스터를 붙이고, 집주인들에게 직접 문자를 보냈다. 내용은 단순했다.
"공인중개사 수수료 없이, 연 30만 원으로 촬영부터 광고까지 전부 해드립니다. 설명회에 오시면 자세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반응이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무시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왔다.
첫 번째 설명회, 두 번째 설명회. 총 두 차례에 걸쳐 학교 주변의 집주인 분들 약 50명이 모였다.
설명회 전날, 나는 거의 밤을 새웠다.
PT 자료를 수십 번 고치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혼자 중얼거리며 연습했다. 긴장이 됐다. 경진대회나 교수님 앞에서 하는 발표가 아니었다. 실제로 돈을 낼 수도 있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만든 것을 팔아야 하는 자리였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학교에 있는 세미나실을 빌려서, 미리 준비한 기념품과 팸플릿을 세팅한 자리에 집주인 분들이 하나둘 앉기 시작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도 계셨고, 젊은 분들도 계셨다. 나는 그분들 앞에서, 내가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서비스를 만든 재민입니다."
목소리가 떨렸는지 안 떨렸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기억난다. 일단 입을 열고 나니, 그다음은 그냥 나왔다는 것이다. 내가 왜 이 서비스를 만들었는지, 이 구조가 왜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직접 보고, 듣고, 화가 났던, 공감하는 이야기였으니까.
발표가 끝나고 질문이 쏟아졌다.
"그래서 학생들이 실제로 이 앱 써요?" "플랫폼이라는 게 믿을 만해요?" "30만 원 내고 방이 안 나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날카로운 질문들이었다. 솔직하게 답했다. 아직 베타 버전이라는 것도, 나도 이 학교 학생이고, 지금 학생 유저를 모으고 있다는 것도. 포장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들이 생겼다.
그리고 현장에서 계약서를 작성하는 분들이 생겼다.
무려 자리에 있던 50명의 집주인 중에서 10명이 현장에서 계약을 해주셨다.
그 자리에서 300만 원의 매출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작은 숫자일지 모르나, 그 300만 원은 내가 만든 것을, 내 말로 설명하고, 처음으로 누군가가 돈을 내고 선택해 준 결과였다. 그것은 숫자 이상의 의미였다.
그리고 나는 그 계약서에 서명해 주신 분들에게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분들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대학생의 서비스에 믿음을 실어준 사람들이었다. 그 믿음이 가볍지 않았다. 계약하신 집주인 분들의 방을 직접 찾아가 360도 카메라로 구석구석 촬영하고, 플랫폼에 올라간 결과물을 직접 확인해 드렸다. 단순히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첫 고객은 단순한 매출이 아니다. 그건 아무것도 없을 때의 나를 믿어준 사람이다."
이 경험을 통해 하나를 더 알게 되었다.
사업은 결국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도, 아무리 잘 만든 플랫폼도, 결국 누군가가 그것을 믿고 써줘야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화려한 피칭 덱도, 멋진 사무실도 필요하지 않았다. 직접 포스터를 들고나가고, 문자를 보내고, 밤새 준비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300만 원의 매출과 베타 서비스의 실제 운영 데이터. 이 두 가지를 들고, 나는 더 큰 사업의 성장을 위해 자금확보의 문을 두드렸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운영하는 창업지원사업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지원서를 제출했다. 이번엔 사업계획서가 낙서 수준은 아니었다고, 스스로 자평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