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지 않는 성장이 원동력. 프리즘웍스의 브랜딩 이야기
도착한 상품을 열어보는 순간은 언제나 설렙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브랜드의 언박싱이라면 더욱 기분이 좋죠. 브랜드 언박싱은 우리 주위에 빛나는 브랜드를 소개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브랜드를 대하는 태도, 제품에 대한 철학 등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유한 생각을 나눕니다. 여러분의 언박싱을 더욱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브랜드 언박싱이 제안하는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멋진 브랜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패션 브랜드가 생기고 또 사라질까? 점점 더 치열해지는 이 산업에서 흔들림없이 12년간 프리즘웍스를 이끌고있는 안종혁 대표를 만났다.
작고 어설프게 브랜드를 시작했다는 그의 스토리는 사람들의 피드백을 통해 매년 성장하다 보니 완성형에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고등학생이었던 고객은 어느덧 직장인이 되었고, 프리즘웍스는 국내시장을 넘어 영국에서까지 사랑받는 브랜드로 컸다.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무리한 성장을 지양했기 때문이라는 안종혁 대표의 답변에서 브랜드의 철학이 느껴졌다. 매일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걷고있는 프리즘웍스의 이야기를 지금 바로 언박싱해보자.
강세영 작가(이하 강): 대표님 식으로 프리즘웍스(FRIZMWORKS)를 소개해 주세요.
안종혁 대표(이하 안): 프리즘웍스는 현존하는 다양한 의류들을 저희 브랜드만의 캐주얼 함으로 재해석 하는 브랜드입니다. 사람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많이 두는 편이에요. 예전엔 워크웨어(Work-Wear) 브랜드라고 소개를 했었지만, 이제는 입기 편한 캐주얼한 옷을 만드는 브랜드라는 설명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강: 프리즘웍스가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안: 그냥 딱 저였을 것 같아요.
강: 대표님의 취향이 그대로 프리즘웍스에 녹아져 있는 건가요?
안: 대학생 때 브랜드를 시작했는데요. 처음부터 브랜드를 너무 컨셉추얼하게 잡지 않았어요. 저도 제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였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제 스타일이 명확해졌고, 자연스럽게 프리즘웍스의 색깔도 뚜렷해졌어요. 그렇게 저의 성향이 브랜드에 고스란히 반영됐죠. 재미있는 건 다른 직원들도 비슷해요. 다른 업체에서 저희 직원들을 보면 ‘프리즘웍스 사람 같다’고 말해요. 차분한 느낌이 닮았나 봐요.
강: 프리즘웍스를 운영하신지 벌써 12년이나 되셨어요. 어떤 일이든 10년 넘게 한다는 건 말 그대로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특히나 패션 업계에서 12년은 ‘살아남았다' 라는 표현이 어울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안: 어쩌다 보니 시간이 지나왔어요. 다행히 저희는 크게 힘들이는 일 없이 꾸준히 상승곡선으로 성장해왔어요.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외부에서는 저희를 되게 큰 기업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직원이 열 명 정도라고 말하면 놀라더라고요. 어쩌면 너무 힘주려고 하지 않아서 오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너무 과하지 않게 해서 지속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강: 힘을 빼는 것도 기술이죠. 프리즘웍스는 내실 있게 차근차근 성장한 것 같아요
안: 한탕주의로 사업을 하시는 분들을 종종 봐요. 저희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정해두고, 그것을 잘 해내자는 주의에요. 외부 투자 제안들을 수락했다면 더 크게 사업을 확장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같지는 않았을 거예요. 프리즘웍스 성향과 다른 길이기도 하고요. 큰 돈을 버는 것보다 브랜드를 잘 만들어나가는 게 더 재미있어요.
어쩌면 너무 힘주려고 하지 않아서
오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강: 꾸준히 상승곡선이었다니, 중간에 브랜드를 그만두고 싶거나 하지는 않으셨겠어요.
안: 대학생 때 경험 삼아 시작했는데, 처음에 생각보다 너무 잘 됐던 거죠. 그 당시에는 국내 패션 브랜드도 많이 없었으니까요. 학교를 다니면서 용돈벌이처럼 계속해왔어요. 중간에 취업을 준비하려고 토익시험 준비도 했었는데, 프리즘 웍스를 그만두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학원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브랜드 사업에 집중했죠. 이때 무신사 스토어에도 입점하게 됐고, 이후로는 한 번도 브랜드를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강: 탁월한 판단을 하셨네요! 예전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안: 얻어걸린 것 같아요(웃음). 패션은 쭉 제가 관심 있었던 분야예요. 어릴 적부터 일본 스트릿 브랜드 신(Scene)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어요. 일본 패션 산업을 보면 서로 마음 맞는 동네 친구들끼리 옷을 만들고, 이게 잘 돼서 유럽 패션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하더라고요. 이런 문화를 접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저도 미대 출신이라 디자인이나 사진을 다룰 줄 아니 무턱대고 시작한 거죠.
강: 패션 브랜드 대표라서 좋은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안: 제가 하도 옷을 좋아해서 많이 사니까 주위에서 뭐라고 많이 했어요. 이제는 이게 일이니까 신발을 아무리 많이 쌓아 둬도 아무도 뭐라 안 해요. (웃음) 제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아요. 왜 그런 경우 있잖아요. 옷을 샀는데 이것만 조금 바뀌면 좋겠다 싶을 때요. 저는 그때 영감을 받거든요. 그런 게 참 재미있어요.
강: 12년을 돌아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지난 시간을 떠올리면 어떤 마음이 드세요?
안: 한 명 한 명 그동안 만났던 인연을 많이 생각해요. 저희가 바쁠 때 알바처럼 일을 도와주던 친구가 지금 직원이 돼서 8~9년간 함께 하고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부담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오래된 친구들과는 쭉 함께 가야 하고, 새로 들어온 친구들한테는 더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이요. 경험 삼아 만들었던 이 브랜드 덕에 이렇게 여럿이 모여 인연이 됐다는 게 신기하고 뿌듯합니다.
강: 프리즘웍스를 이야기할 때, 모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2010년 초반에 강한 인상의 서양인 모델과 함께 하셨다가 2018년부터 시니어 모델인 김칠두 선생님과 함께 하고 계시고요. 변화의 계기가 있었나요?
안: 결정적 계기는 2016년 즈음 스트릿 패션이 부상하면서 저희랑 비슷한 무드와 취향을 가진 브랜드들이 많이 사라지던 시기였어요. 당시 아메리칸 캐주얼을 지향하는 브랜드들이 다 없어졌죠. 망하기도 하고, 브랜드 컨셉을 바꾸기도 하고요. 점점 시장이 좁아지는 게 눈에 보였어요. 저희도 나름대로 변화를 주고자 여성 모델도 섭외해보고, 수염이 없는 깔끔한 느낌의 모델도 촬영해보고 다양한 시도를 했었어요. 점점 브랜드 고유한 색이 옅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애매모호한 것보다 저희 브랜드가 가진 느낌을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강: 프리즘웍스 주 타깃이 20~30대인데, 시니어 모델을 섭외한 결정이 놀라워요. 김칠두 선생님을 모델로 발탁하게 된 결정적 이유를 듣고 싶어요.
안: 2018년 즈음 브랜드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에 마침 막 모델로 데뷔하신 김칠두 선생님의 컴카드(*Composite Card)를 보게 되었고, 더할 나위 없이 저희 브랜드와 잘 어울리는 모델이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진행했습니다. 이제까지 함께 만든 결과물은 물론, 고객분들의 반응도 좋았고, 현재까지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색깔을 잘 보여줄 수 있다면 모델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처음 선생님과 호흡을 맞출 때도 그랬고, 현재도 선생님을 딱히 시니어 모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냥 저희 브랜드를 무드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모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Composite Card: 배우나 모델이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포트폴리오)
강: 덕분에 프리즘웍스 이미지가 견고 해졌어요.
안: 김칠두 선생님과 작업을 하면서 저희 브랜드의 색깔도 더 뚜렷해졌고, 마침 선생님의 인지도도 정말 많이 높아졌어요. 확실히 다른 모델에게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아우라가 있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렇게 쭉 윈윈(win-win) 하고 싶어요. 아, 최근에는 선생님이 무신사 라이브도 함께 해주셨어요. 역시 반응이 좋았습니다.
강: 어느덧 프리즘웍스는 무신사 스토어에서 대표적인 남성 브랜드가 되었어요. 2012년부터 함께 해오셨다고 들었는데, 그럼 거의 무신사 스토어 초창기에 입점하신 거네요?
안: 무신사와 함께 한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네요. 저희가 무신사에 입점했을 때 무신사 스토어 직원이 3명이었어요 (웃음).
강: 그 당시 무신사의 어떤 면을 보고 입점을 결정하셨나요?
안: 무신사가 규모는 작았지만, 이 쪽(패션) 씬에서 유명했어요. 입점이 까다로웠거든요. 무신사에 들어만 가도 '마니아들이 인정한 브랜드'다 라는 상징성이 있었죠. 그때 입점한 뒤로 지금까지 해오고 있네요.
강: 거의 무신사와 프리즘웍스는 동반자라고 봐도 되나요?
안: 근 몇 년 사이에 무신사가 발전을 하면서 특정 마니아들만 알았던 소규모 도메스틱 브랜드들이 대중에게 많이 다가갔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시장 환경 변화로 저희도 꾸준히 발전을 해왔어요. 그만큼 저희도 좀 더 전문화되어가고 있고, 회사로서 체계도 잡혀가는 것 같아요. 성장의 동반자로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 시즌 별로 주제를 명확하게 잡고 있어요. 2022년 S/S 주제는 마음을 엮다는 의미의 ‘위브 어 마인드(Weave a mind)’ 였죠. 슬로건 같은 메시지로 느껴지기도 하네요.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시나요?
안: 제가 정하긴 해요. 단어 하나에만 집중해서 시즌을 끌고 가는 건 아니고, 이번 시즌을 포괄할 수 있는 한 단어나 문장을 그때그때 골라요. ‘위브 어 마인드(Weave a mind)’도 이번 시즌은 저희의 생각을 엮어서 보여준다는 느낌으로 만들었어요. 이전에 브랜드 이미지를 좀 더 밝게 끌어올리고 싶었을 때는 인생의 양지라는 뜻인 ‘더 서니 사이드 오브 라이프(The sunny side of life)’라는 메시지를 쓴 적도 있어요.
강: 시즌을 준비하는 시점에 생각했던 것들이 많이 투영되겠네요.
안: 네, 맞아요. 준비하는 시기에 저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되어있죠. 시즌 슬로건을 먼저 잡고 옷을 디자인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구성을 하고 주제를 정하면 이후 디테일들을 마무리하기가 수월 해져요. 메인 컬러를 선정하는데도 도움이 되죠.
강: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을 들어보니 흥미롭더라고요. 구성원 모두가 아이디어를 내고 가장 반응이 좋은 안을 개발해 출시하신다면서요.
안: 인원이 적어서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프리즘웍스 구성원 대부분이 패션에 관심이 많아요. 직무 불문하고요. 다들 브랜드 디자인 방향에 대해 ppt를 만들어와서 발표하고 그래요. 리워드가 특별히 있진 않은데 팀원들 모두 브랜드에 애정을 갖고 의견을 제안하는 편이에요. 거기서 괜찮은 아이템들이 발견되기도 해요.
강: 팀워크가 남다른 것 같아요. 프리즘웍스의 조직 문화가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12년간 퇴사한 사람이 단 2명. 그것도 자기 브랜드를 하기 위해서라고요.
안: 네 맞아요.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친구도 있어요. 저희가 월급을 월등히 많이 주는 건 아니에요. 장점은 직급에 따른 수직적인 문화를 지양하고 있다는 점이죠. 바쁘면 다 같이 적극적으로 돕고요. 운영팀에서 배송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하면 디자인 팀에서 가서 같이 포장도 해요. 모든 게 인원이 많지 않아서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사람이 많아지면 팀이 나눠지고, 팀이 나눠지면 서로 배척하기도 하니까요.
강: 브랜드 인지도도 많이 쌓였고, 프리즘웍스 로고(logo)도 힘이 생겼어요. 이런 경우 로고 플레이를 고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니멀한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어요.
안: 원래 로고 플레이를 많이 안 해요. 마르지엘라 브랜드는 선만 봐도 마르지엘라임을 알 수 있잖아요. 로고나 라벨을 봐야 하는 게 아니라, 제품만으로도 단 번에 브랜드가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옷만 봐도 프리즘웍스라는 걸 알 수 있게 하는 게 저희의 목표예요. 많이 덜어내도 브랜드 색깔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브랜드가 지향하는 색깔을 잘 보여줄 수 있다면
모델의 나이, 로고, 라벨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옷만 봐도 프리즘웍스라는 걸 알 수 있게 하는 게 저희의 목표예요.
강: 10주년 이벤트가 굉장히 멋있었어요. Valuable Relationship이라는 주제로 10년간 관계가 두터웠던 브랜드 10곳과 함께 콜라보 제품을 만들었잖아요. 프리즘웍스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안: 저희는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걸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는데요. 그래도 10주년은 상징적인 걸 해봐야겠더라고요. 협업했던 브랜드 중 큰 브랜드는 제외하고, 작은 브랜드들이 힘을 모았어요. 10개 브랜드와 각각 1개씩, 총 10개의 제품을 만들었는데요. 모아놓고 보니 멋있더라고요.
강: 큰 브랜드와 함께하면 파급력이 더 커질 수도 있었을 텐데 작은 브랜드를 고집하신 이유가 있나요?
안: 물론 브랜드를 오래 운영하다 보니 아는 브랜드도 많아져서 왜 안 껴줬냐며 서운해했던 곳도 있었어요. (웃음) 10주년만큼은 프리즘웍스가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곳들과 하고 싶었어요. 브랜드가 잘 나가건 못 나가건 상관없이 서로 교류했던 곳들이요. 그래서 주제를 Valuable Relationship으로 잡았죠.
강: 해외 진출도 활발해요. 심지어 영국으로요. 굵직한 명품 브랜드들이 탄생한 나라에 국내 브랜드가 진출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덩달아 뿌듯해지기도 합니다. 왜 영국이었나요?
안: SNS로 연락을 나누던 영국 편집샵 대표가 한국에 왔을 때 만남을 가졌어요. 저희 제품들을 입어보고 매우 맘에 들어해서 영국에서 판매를 시작하게 됐죠. 편집샵 대표님이 SNS을 굉장히 활발히 하셔서 덕분에 입소문도 많이 났어요.(웃음) 그렇게 2년 동안 꾸준히 판매를 해오다가 작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에이전시와 계약을 했습니다. 처음에 8군데에 입점을 했는데 지금은 30곳에서 판매를 하고 있어요. 매 시즌마다 계속 해외 판매처가 늘어나서 굉장히 기뻐요.
강: 너무 큰 성과네요!
안: 영국에서도 한국 브랜드의 이미지가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여전히 일본 브랜드들이 인기가 많지만 한국 브랜드가 가격도 합리적이고, 퀄리티도 우수하다는 평가가 늘고 있죠. 사실 같은 공장에서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 옷을 만드는 곳에서 일본 유명 브랜드인 빔즈(Beams) 옷을 만들기도 하거든요. 일본도 인건비가 비싸서 해외 생산을 많이 하니까요. 예전에는 한국 브랜드는 아류로 보는 시선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점점 더 좋아질 거라 예상합니다.
강: 최근 국내 기반 패션 브랜드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요. 덕분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국내 패션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요. 패션 산업의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 같아요. 물론 동대문이라는 인프라도 큰 몫 했고요.
안: 무엇보다 선배 브랜드들 덕이 컸죠. 옛날에는 제작 수량이 적으면 공장에서 만들어 주지도 않았어요. 거절당하기 일쑤였죠. 돈을 주겠다고 말해도 보험사 직원처럼 부탁하고 그랬어요. 하지만 요즘은 소규모로 시작한 브랜드들이 커가는 모습을 많이 보셔서 그런지 공장 업체 분들과 업무 조율하기에도 훨씬 수월해졌어요.
강: 다른 곳도 진출하실 계획인가요?
안: 일본과 캐나다도 진출을 논의하고 있어요.
강: 프리즘웍스 옷들은 호불호를 타지 않으니, 다양한 나라에 진출하기 유리한 것 같아요.
안: 맞아요, 외국 편집샵들 중에는 브랜드의 화보나 이미지도 보지만 제품 자체에 더 집중해 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룩북을 보고 굉장히 멋있다고 좋아하지만 룩북을 그대로 가져다가 쓰지는 않아요. 각자의 샵 스타일대로 코디도 다시 하고 사진도 다시 찍어서 판매해요. 자기 샵 컨셉에 맞게요. 프리즘웍스의 옷들은 각 나라별로 트렌드에 맞게 스타일링해도 그 무드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요. 어디에 매치해도 조화로운 게 프리즘웍스 옷의 장점이에요.
강: 히트상품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발전시키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빈센트 피쉬테일 파카'가 있죠. 시즌마다 계속 기능을 보완하고 가격은 더 내리기도 하고요. 매 년 제품을 업그레이드시킬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안: 고객 후기는 다 봐요. 잘 팔린 상품은 후기가 몇 천 건이 쌓이기도 하는데요. 거의 다 봅니다. 시즌이 지나면 저희끼리 회고를 해요. 이번 시즌 아쉬웠던 점을 논의하며 고객들의 의견 중 의미 있는 것들은 취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발전해오니 점점 완성형에 가까워졌어요. 온라인 후기는 더 적나라해서 좋은 점도 있어요.
강: 간혹 안 좋은 후기도 있을텐데, 상처받진 않으셨어요?
안: 예전에는 상처받았어요. 얼굴이 화끈거렸던 경험도 있어요. 연예인들이 악플을 볼 때 이런 감정인가 싶었죠. 그런데 욕을 하는 것도 관심의 표현이라 생각해요.
강: 20~30대 남성 고객들 중심으로 팬층이 정말 탄탄하잖아요. 프리즘웍스가 사랑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안: 고객과 나란히 성장한 것 같아요. 10주년 때 저희한테 ‘아직까지 살아 있었어?’라고 이야기하는 분도 계셨어요. ‘학생 때 좋은 가격으로 구매했던 브랜드인데 이렇게 성장한 게 신기하다’ 고 생각하는 분도 많고요. 고객 입장에서는 프리즘웍스가 성장한 과정을 꾸준히 지켜보셨기 때문에 믿음 같은 것도 생긴 것 같아요. 해외진출을 함께 기뻐해 주시기도 했고요. 이런 스토리를 나누면서 함께 나이를 먹는 느낌이 듭니다.
강: 브랜드가 성장하면 다른 분야로 확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프리즘웍스는 뚝심 있게 옷에만 집중하고 있는 듯 보여요.
안: 제가 다른 거 하다가 잘 안된 경우를 많이 봤어요 (웃음). 그래서 법인을 설립할 때 법인명도 주식회사 가먼츠(garments, 의류 한 점)라고 지었어요. ‘진짜 딱 옷만 해야지’라는 마음으로요. 옷은 여러 사업 중에도 까다로운 종목이에요. 계절과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라 재고 부담도 크고, 마진율이 낮아 수익을 내기도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저희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건 옷이니까 옷에 쭉 집중하고 싶어요.
강: 서브라인도 나왔잖아요. 오리지널 가먼츠(ORIGINAL GARMENTS). 말 그대로 옷 실루엣 그 자체에 집중하는 라인이에요. 더욱 미니멀하고요.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되셨는지, 서브 라인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안: 디테일은 빼고 원단과 실루엣에 더 집중한 베이식 라인이에요. 베이식 라인은 보통 가격 경쟁이 심해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팀원 중 한 명이 제안서를 만들어왔고, 이게 계기가 되어 시작하게 됐어요. 가격 경쟁력이 있는 제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구매해본 분들이 퀄리티가 좋다며 재 구매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색상 별로 사시기도 하고요.
강: 제안서를 직접 쓴 구성원 분도 너무 뿌듯할 것 같아요.
안: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웃음).
고객 분들과 나란히 성장한 것 같아요.
스토리를 함께 나누며 함께 나이를 먹는 느낌이 듭니다.
강: 옷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뭔가요?
안: 디자인에 있어서 최대한 많이 덜어내도, 옷의 본질은 꼭 담아내려고 하는 편이에요. 단순히 흉내만 내려고 하지 않아요. 직접 빈티지 제품을 구해서 분해해보고 연구해요. 빈티지 제품이 가지는 고유한 정체성을 흐리고 싶지 않아서요. ‘빈센트 피쉬테일 파카'도 빈티지 제품을 어렵게 구해서 연구한 뒤 탄생했어요. 프리즘웍스만의 해석도 더해져서 오리지널보다 잘 만든 옷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본질을 너무 지키려고 하면 딥(deep)해지고, 너무 덜어내면 가벼워지더라고요.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려고 하고 있어요.
강: 이제 막 의류산업에 발을 디딘 후배가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세요?
안: 첫 번째로 옷을 좋아하는 것과 옷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란 걸 알아야 해요. 이 두 가진 천지차이거든요. 옷을 만든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두 번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1세대 브랜드들을 보면 대표가 직접 옷 만들고 모델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한 사람이 일당백을 했었어요. 본인이 그런 걸 다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파악해야 해요.
옷을 좋아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란 걸 알아야 해요.
옷을 만든다고 다 끝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강: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브랜드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안: 추구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일을 하다 보면 유혹이 참 많아요. 이렇게 하면 수익이 더 있을 것 같다 이런 거요. 단기적인 매출이나 눈앞에 보이는 성과에 휘둘리지 않고 추구하는 바를 꾸준히 하는 내실 있는 브랜드가 좋은 것 같아요.
좋은 브랜드란,
추구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브랜드
강: 10년 뒤 프리즘웍스는 어떤 브랜드가 되어있을까요?
안: 현재처럼 조용하고 차분하게 브랜드를 이끌어나가고 있을 것 같아요. 해외 판매 유통망은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 10년 뒤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프리즘웍스라는 브랜드 이름만 들어도 브랜드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브랜드가 되었으면 합니다. 확실한 건 10년 후에도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웃음)
프리즘웍스를 좋아하는 분들께도 한마디 해주세요.
고객 분들 덕분에 프리즘웍스가 지금까지 브랜드를 지켜가고 발전해올 수 있었습니다. 작게 시작한 브랜드였는데 여러분 덕분에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그만큼 저희 제품을 입는 분들이 함께 자부심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네임벨류 있는 브랜드는 뭘 만들어도 좋아 보이잖아요. 앞으로도 좋은 모습, 꾸준히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인터뷰어 강세영
9년 차 브랜드 마케터. 한국, 베트남, 일본에서 브랜드를 키우며 관리하는 일을 해왔다. 소속된 브랜드에 대한 애착만큼이나 다른 수많은 브랜드를 애정 한다. 저마다의 뚜렷한 색을 가진 브랜드들의 이야기에 쉽게 매료되고, 브랜드를 가꿔가는 사람들에게 동질감과 동경심을 동시에 느끼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