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보다 먼저 들어오는 감정이 있다
불을 다 끄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내려앉는 순간이 있다.
집 안은 어두웠다.
방 안의 소리도, 바깥의 기척도 모두 사라진 시간.
기계들이 잠들고, 사람의 기척이 줄어드는
그 아주 늦은 밤.
나는 그때야 조용히 창문 쪽으로 향한다.
그건 특별한 의미를 담은 루틴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은 동작이었다.
창을 열기 전,
손잡이를 잡는 그 짧은 망설임.
찬 공기가 들어오겠지, 하는 예감과
지금의 고요를 깨뜨릴지도 모른다는 약한 긴장감.
그리고 이내, 조용히 창을 연다.
가벼운 철제 소리.
바람이 살짝 안으로 밀려든다.
밖은 캄캄하다.
불빛 몇 개가 멀리 깜빡이고,
누군가 늦게까지 켜둔 불이 흐릿하게 반사된다.
나는 그 앞에 선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려 하지 않으며.
그런데 이상하게,
바람보다 먼저 들어오는 게 있다.
내가 낮에 밀어둔 생각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감정.
웃으며 넘겼지만 사실은 조금 마음에 남았던 말들.
그것들이 밤의 공기 틈을 타고
다시 내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그 시간에는
그 어떤 감정도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대로 두고,
바람처럼 스쳐가게 놔두면 된다.
창문 앞에 서 있다는 건
내 감정과 맞닿을 수 있는 아주 드문 자세다.
소파에 앉아 있을 땐 몰랐던 마음이,
창 앞에서는 떠오른다.
창밖에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 서 있으면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창문을 여는 일은
공기를 바꾸는 게 아니라
마음을 환기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닫힌 공간 속에서 뭉친 감정들이
밖의 차가운 기운과 부딪히며
조금씩 자리를 바꾸는 느낌.
그렇게 나는
매일 밤, 같은 시간쯤 창을 연다.
습관은 대개 설명할 수 없는 반복이다.
그러나 나는 그 반복 속에서
스스로를 정리하고 있다.
창문을 닫을 땐
아주 조용히, 천천히,
공기가 너무 빨리 사라지지 않게
단단히 붙잡지 않게
내 안의 결을 흐트러뜨리지 않게.
불이 꺼진 집 안,
닫힌 창문 앞에서 나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안에는 아직
바람처럼 남은 감정이 조용히 맴돌고 있었다.
당신은 언제, 마음에 바람을 들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