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없이 피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베란다 창문을 닦다가
창틀 끝, 먼지 낀 틈 사이에서
아주 작고 연한 녹색이 올라와 있는 걸 보았다.
처음엔 먼지인가 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파리 두 장짜리 싹이었다.
언제 자란 건지 몰랐다.
화분도 아니었고, 흙도 없었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이 틈을 터 삼아 조용히 뿌리를 내린 것이다.
나는 한동안 그 싹 앞에서 말이 없었다.
물 한 방울 주지도 않았고,
빛도 변변치 않은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살아간다는 게,
반드시 누군가의 보살핌 아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 작은 존재가 알려주는 것 같았다.
손을 뻗어 만져볼까 하다가
가만두기로 했다.
괜히 건드렸다가 꺾일까 봐.
그리고 어쩐지,
말없이 존재하는 그것 앞에서
내가 괜스레 미안해지는 마음도 들었다.
나는 그날 이후
창문을 열 때마다
제일 먼저 그 싹을 확인하게 되었다.
때로는 아주 조금 자라 있고,
어떤 날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늘 거기에 있었다.
크게 자라지 않아도,
꽃을 피우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어 보였다.
나는 그걸 보며 내 마음의 상태를 가늠했다.
괜히 짜증이 나는 날엔 그 싹이 작아 보였고,
조용히 기운 날엔 유난히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 식물이 아니라,
내 감정의 거울 같았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곳에서
피어나는 것들의 강인함.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나를 살아내는 시간들.
그런 존재 앞에 섰을 때,
나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며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싹은 결국 자라지 못했다.
며칠 뒤 말라 사라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내 안엔
작고 단단한 어떤 감정이 하나 남았다.
그건 생명에 대한 감동이 아니라,
말 없이 존재하는 것들이 주는
무언의 위로였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그저,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큰 의미가 될 수 있다.
나는 그걸
창가에 피어난 작은 꽃 하나에서 배웠다.
당신 안에도, 조용히 자라고 있는 감정이 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