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이 필요 없는 식사, 조용히 나를 받아주는 저녁의 의식
해가 지고, 방 안의 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저녁을 차릴 시간이다.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누구와 함께할 약속도 없다.
식탁 위엔 나 하나만 앉는다.
냄비에 밥을 데우고,
국을 덜어내고,
김치를 한 조각 접시에 놓는다.
메뉴는 중요하지 않다.
형식도, 정성도 필요 없다.
그저 먹을 수 있는 상태,
조용히 입에 넣을 수 있는 온도면 충분하다.
혼자 먹는 저녁은 말이 없다.
수저 소리, 그릇에 부딪히는 작은 울림,
뜨거운 국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만이
하루의 고요를 채운다.
나는 그 안에서 안정을 느낀다.
누구의 시선도 없고,
대화도 없고,
기분을 맞출 필요도 없는 시간.
내가 나와 함께 앉아 있는 저녁.
오히려 그 시간만큼은
하루 중 가장 솔직하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건
고독이 아니라,
나를 받아들이는 의식에 가깝다.
속이 따뜻해지고,
마음도 조금씩 풀린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식사가
위로일 때도 있지만,
말 없는 식사는
가끔 더 깊은 위로가 된다.
나는 그릇을 비우며 생각한다.
오늘 나, 많이 수고했구나.
괜찮아, 이런 날도 있어.
그 말들을,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게 건넨다.
그건 조용하지만 분명한 다짐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무언가 거창하게 해결되진 않아도
조금 나아진다.
그것이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신다.
그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감각마저도
내가 나를 살피는 일처럼 느껴진다.
밥을 먹는 일은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살아 있다고 느끼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혼자 밥을 먹는 저녁은
말 없이 오늘을 받아들이는 가장 부드러운 방식이다.
당신은 오늘 어떤 식사로, 자신을 받아주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