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혼자 밥을 먹는 어느 저녁

- 말이 필요 없는 식사, 조용히 나를 받아주는 저녁의 의식

by SH

해가 지고, 방 안의 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저녁을 차릴 시간이다.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누구와 함께할 약속도 없다.

식탁 위엔 나 하나만 앉는다.

냄비에 밥을 데우고,

국을 덜어내고,

김치를 한 조각 접시에 놓는다.

메뉴는 중요하지 않다.

형식도, 정성도 필요 없다.

그저 먹을 수 있는 상태,

조용히 입에 넣을 수 있는 온도면 충분하다.

혼자 먹는 저녁은 말이 없다.

수저 소리, 그릇에 부딪히는 작은 울림,

뜨거운 국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만이

하루의 고요를 채운다.

나는 그 안에서 안정을 느낀다.

누구의 시선도 없고,

대화도 없고,

기분을 맞출 필요도 없는 시간.

내가 나와 함께 앉아 있는 저녁.

오히려 그 시간만큼은

하루 중 가장 솔직하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건

고독이 아니라,

나를 받아들이는 의식에 가깝다.

속이 따뜻해지고,

마음도 조금씩 풀린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식사가

위로일 때도 있지만,

말 없는 식사는

가끔 더 깊은 위로가 된다.

나는 그릇을 비우며 생각한다.

오늘 나, 많이 수고했구나.

괜찮아, 이런 날도 있어.

그 말들을,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게 건넨다.

그건 조용하지만 분명한 다짐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무언가 거창하게 해결되진 않아도

조금 나아진다.

그것이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신다.

그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감각마저도

내가 나를 살피는 일처럼 느껴진다.

밥을 먹는 일은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살아 있다고 느끼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혼자 밥을 먹는 저녁은

말 없이 오늘을 받아들이는 가장 부드러운 방식이다.


당신은 오늘 어떤 식사로, 자신을 받아주었나요?

이전 08화08 | 늦은 밤 창문을 여는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