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숙함과 낯섦이 겹쳐지는 자리에서
길을 잘못 든 것처럼,
아니 어쩌면 일부러 돌아온 것처럼,
오랜만에 예전 집이 있던 동네를 걸었다.
네비게이션도,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저 몸이 이끌리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뀌어버린 간판들 사이로
어디선가 본 듯한 벽돌색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집은 없었지만,
그 앞 골목은 아직 거기 있었다.
도로는 다시 포장되어 더 매끈해졌고,
예전의 문방구는 치킨집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 길목에서 불쑥 과거의 기온이 느껴졌다.
겨울도 아니었는데
어린 날 오후의 차가운 공기가
그대로 스며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곳은 분명 내 기억 속에서만 살던 길이었는데,
발밑의 굴곡 하나까지 그대로였다.
고개를 들어 전봇대를 보자,
낡은 전선들이 여전히 엉켜 있었다.
그 아래를 지나며
문득, 그 길을 걷던 아이의 뒷모습이 스쳤다.
학원 가기 싫어 반쯤 눈물을 머금고 걷던 오후,
비 맞으며 뛰다 넘어져 바지를 찢었던 저녁,
무심한 거리 풍경 속에 그런 장면들이
자꾸 겹쳐 보였다.
새로 생긴 카페 앞 의자에 잠시 앉았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가
예전엔 가로등 불빛 아래,
동네 아이들이 모여 이야기하던
자리였다는 걸 떠올렸다.
기억은 오래 전 것이지만,
풍경은 여전히 그 감정을 부르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온도,
지금의 나로는 다시 꺼낼 수 없는 말들.
그 골목을 걸으며 나는
지나온 시간과,
그 시간 속의 나를
같이 데리고 걷고 있었다.
익숙한 곳에서 낯선 기분이 들 때,
그건 아마 내가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들이 나를 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서기 전,
한 번 더 그 골목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길,
그러나 나에겐 말 없이 나를 불러주는 풍경.
당신에게도,
다시 걷고 싶은 골목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