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 예전 집 앞 골목을 다시 걷는 날

- 익숙함과 낯섦이 겹쳐지는 자리에서

by SH

길을 잘못 든 것처럼,

아니 어쩌면 일부러 돌아온 것처럼,

오랜만에 예전 집이 있던 동네를 걸었다.

네비게이션도,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저 몸이 이끌리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뀌어버린 간판들 사이로

어디선가 본 듯한 벽돌색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집은 없었지만,

그 앞 골목은 아직 거기 있었다.


도로는 다시 포장되어 더 매끈해졌고,

예전의 문방구는 치킨집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 길목에서 불쑥 과거의 기온이 느껴졌다.

겨울도 아니었는데

어린 날 오후의 차가운 공기가

그대로 스며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곳은 분명 내 기억 속에서만 살던 길이었는데,

발밑의 굴곡 하나까지 그대로였다.

고개를 들어 전봇대를 보자,

낡은 전선들이 여전히 엉켜 있었다.


그 아래를 지나며

문득, 그 길을 걷던 아이의 뒷모습이 스쳤다.

학원 가기 싫어 반쯤 눈물을 머금고 걷던 오후,

비 맞으며 뛰다 넘어져 바지를 찢었던 저녁,

무심한 거리 풍경 속에 그런 장면들이

자꾸 겹쳐 보였다.


새로 생긴 카페 앞 의자에 잠시 앉았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가

예전엔 가로등 불빛 아래,

동네 아이들이 모여 이야기하던

자리였다는 걸 떠올렸다.


기억은 오래 전 것이지만,

풍경은 여전히 그 감정을 부르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온도,

지금의 나로는 다시 꺼낼 수 없는 말들.


그 골목을 걸으며 나는

지나온 시간과,

그 시간 속의 나를

같이 데리고 걷고 있었다.


익숙한 곳에서 낯선 기분이 들 때,

그건 아마 내가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들이 나를 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서기 전,

한 번 더 그 골목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길,

그러나 나에겐 말 없이 나를 불러주는 풍경.


당신에게도,

다시 걷고 싶은 골목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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